기획에서 가설을 세우는 AI 활용법

기획의 시작점을 바꾸는 법

by 어팀공

"이번 프로젝트, 방향이 뭐야?"

팀장이 물었을 때, 머릿속이 하얘진 적 있는가.


자료는 잔뜩 모았는데, 정작 '그래서 뭘 하자는 건데?'에 답이 안 나오는 순간.

그게 바로 가설이 없는 기획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기획서를 쓰다 보면, 대부분 '리서치'부터 시작한다. 시장 조사하고, 경쟁사 분석하고, 데이터 뽑고.

그런데 그 많은 자료를 모아놓고도 결론이 안 나올 때가 있다.


왜 그런 걸까.

조사를 안 해서가 아니다.

질문이 없어서다.


리서치는 답을 찾는 과정이다.

그런데 질문이 없으면, 답을 찾아도 그게 답인 줄 모른다.

기획에서 그 질문의 역할을 하는 게 바로 '가설'이다.


가설이 없는 기획이 실패하는 이유

"20~30대 여성 타깃으로 건강식 시장에 진출하려고 합니다."

이건 기획 방향이 아니다.

그냥 범위 설정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야 기획이 된다.


"20~30대 여성은 맛보다 '간편함'을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건강식 시장에서 재구매율이 낮은 이유는 맛이 아니라 포장 단위일 것이다."

이런 게 가설이다.


가설이 있으면 기획의 방향이 생긴다. 리서치도 효율적이 된다.

"간편함이 정말 핵심인지 확인하자"처럼, 무엇을 검증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지니까.


가설이 없으면?

시장 규모도 보고, 트렌드도 보고, 경쟁사도 보고, 소비자 인터뷰도 하고.

다 하는데 결론은 안 나온다.

보고서 분량만 늘어나고, 팀장은 "그래서?"를 반복한다.


나도 주니어 때 이 함정에 빠졌다.

조사를 많이 할수록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경험이 쌓일수록 깨달았다.

좋은 기획자는 조사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먼저 세우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그 '좋은 질문을 빠르게 세우는 일'에 AI가 놀라울 정도로 잘 맞는다.


AI로 가설을 '발산'하는 법

가설을 세우는 건 두 단계로 나뉜다. 먼저 가능한 많이 만들어보는 '발산' 단계, 그다음 쓸 만한 것만 추리는 '수렴' 단계.


대부분은 발산 단계에서 막힌다.

내 경험과 지식의 범위 안에서만 생각하다 보니, 비슷한 가설만 반복된다.


여기서 AI가 빛을 발한다.

내가 실제로 쓰는 방식은 이렇다.


상황을 먼저 설명하고, "가설을 10개 만들어줘"라고 요청한다.

프롬프트 예시
나는 건강식 배달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어.
타깃은 서울에 거주하는 25~35세 직장인 여성이야.
기존 건강식 배달 서비스의 재구매율이 30% 미만인 원인을 파악하려고 해.


이 상황에서 가능한 가설을 10개 만들어줘.

각 가설은 "~일 것이다" 형태로 써주고, 검증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줘.


이렇게 하면 AI는 다양한 각도에서 가설을 쏟아낸다.

맛 문제, 가격 문제, 배송 시간 문제, 메뉴 다양성 문제, 포장 문제, 구독 피로도 문제. 내가 혼자 생각했으면 3~4개에서 멈췄을 것들이, 10개 이상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건, AI가 만든 가설을 그대로 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10개 중에 "아, 이건 생각 못 했는데?" 싶은 게 1~2개 있다.

그게 핵심이다.

내 사고의 범위를 넓혀주는 트리거로 AI를 쓰는 거다.


실제로 내가 물류 쪽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도 이 방식을 썼다. "화물차 운전자가 탄소 배출 데이터를 신경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가설을 발산시켰더니, '데이터를 모르는 게 아니라 데이터가 자기 행동과 연결되지 않아서'라는 가설이 나왔다.


혼자 생각했으면 "관심이 없어서"에서 끝났을 텐데, AI 덕분에 한 층 더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가설의 '질'을 높이는 프롬프트 기법

그런데 그냥 "가설 만들어줘"라고만 하면, 뻔한 것들만 나올 때가 있다.

"가격이 비싸서일 것이다", "맛이 없어서일 것이다" 같은.

이건 가설이라기보다 상식에 가깝다.


가설의 질을 높이려면 두 가지를 프롬프트에 추가해야 한다.


첫째, 제약 조건을 넣는다.

"가격과 맛 문제는 이미 파악했어. 그 외의 요인으로 가설을 세워줘."

이렇게 하면 AI가 뻔한 답을 피하고, 다른 각도를 찾는다. UX 문제, 심리적 저항, 사회적 요인, 습관 형성 실패 같은 방향이 나온다.


둘째, 관점을 지정한다.

같은 문제라도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가설이 달라진다.

"이 문제를 소비자 심리학 관점에서 봤을 때 가능한 가설을 만들어줘."

"이 문제를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분석하면 어떤 가설이 가능할까?"

"이 문제를 물류 운영 담당자의 시선에서 보면 어떤 가설이 나올까?"


관점을 바꾸면 같은 현상에서도 전혀 다른 원인이 도출된다.

소비자 심리학으로 보면 "선택지가 많으면 오히려 구매를 미룬다"는 가설이 나오고, 행동경제학으로 보면 "기본값이 구독 해지로 설정돼 있어서 이탈한다"는 가설이 나온다.


이렇게 관점을 2~3개 돌리면, 가설 후보가 20~30개까지 나온다.

그중에서 진짜 검증해볼 만한 것만 추리면 된다.


AI로 가설을 '검증 설계'하는 법

가설이 발산됐으면, 이제 검증 설계를 해야 한다.

여기서 많이 하는 실수가 하나 있다.

"이 가설이 맞는지 확인해줘."


이렇게 AI한테 시키면, AI는 그 가설을 '지지하는 근거'를 찾아서 보여준다.

10화에서도 다뤘지만, AI는 기본적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답하려는 경향이 있다.


가설 검증을 AI한테 맡기면, 내가 듣고 싶은 답만 돌아오는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진다.

그래서 AI한테 시켜야 할 건, 검증 '결과'가 아니라 검증 '방법'이다.

프롬프트 예시

가설 : "건강식 배달 서비스의 재구매율이 낮은 이유는 1인분 포장이 아니라 2~3인분 단위로만 판매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방법을 3가지 제안해줘.
각 방법별로 필요한 데이터, 예상 소요 시간, 비용 수준도 알려줘. 그리고 이 가설이 틀렸을 경우, 어떤 대안 가설을 세워야 하는지도 함께 알려줘.


이렇게 요청하면 AI는 이런 식으로 답한다.

A/B 테스트 : 1인분 포장 옵션 추가 후 재구매율 변화 측정 (2~4주, 포장 비용 발생)

설문 조사 : 기존 고객 대상 포장 단위 만족도 조사 (1주, 저비용)

이탈 고객 인터뷰 : 재구매하지 않은 고객 5~10명 대상 심층 인터뷰 (2주, 중간 비용)


그리고 대안 가설까지 함께 나온다.

"포장 단위가 아니라 배송 주기가 문제일 수 있다", "1인분이 있어도 가격 대비 양이 적다고 느끼는 게 문제일 수 있다" 같은 것들.


이게 왜 중요하냐면, 기획서에 '검증 계획'이 있으면 설득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가설을 세웠고, 이렇게 검증할 계획입니다."


이 한 문장이 들어가면, 팀장 입장에서는 "아, 이 사람이 그냥 감으로 말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신뢰가 생긴다.


가설 → 기획서 구조로 바꾸는 흐름

가설이 세워지고, 검증 방법까지 정리됐으면, 이제 기획서 뼈대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나는 보통 이런 흐름으로 AI한테 구조화를 시킨다.

프롬프트 예시

아래 내용을 기획서 구조로 정리해줘.

배경 : 건강식 배달 서비스 재구매율 30% 미만
핵심 가설 : 포장 단위가 재구매를 막는 핵심 요인이다
검증 방법 : A/B 테스트, 설문, 이탈 고객 인터뷰
기대 효과 : 1인분 포장 도입 시 재구매율 15%p 상승 예상


목차와 각 섹션의 핵심 메시지를 정리해줘.


그러면 AI가 기획서의 뼈대를 잡아준다.

24화에서 다뤘던 보고서 구조 잡기와도 연결되는데, 이번에는 '가설'이라는 중심축이 있으니 구조가 훨씬 단단해진다.


가설이 중심에 있는 기획서는 읽는 사람 입장에서도 명확하다.

"이 기획이 왜 이 방향인지"가 가설 하나로 설명이 되니까.


반대로 가설 없이 조사 결과만 나열한 기획서는, 읽는 사람이 스스로 '그래서 뭐?'를 찾아야 해서 피곤하다.


실전에서 가설을 관리하는 팁

가설은 한 번 세우고 끝이 아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계속 수정되고, 폐기되고, 새로 만들어진다.


나는 프로젝트별로 '가설 로그'를 따로 관리한다.

거창한 문서가 아니다.

노션이나 메모장에 이 정도만 적어둔다.


가설 : 포장 단위가 핵심 이탈 요인이다

상태 : 검증 중

검증 방법 : A/B 테스트

결과 : 배송 시간이 만족도에 영향을 준다 / 3개월 시점 이탈률 2배


이걸 AI한테 주면서 "현재 상태를 기준으로 기획 방향을 재정리해줘"라고 하면, AI가 확인된 가설 중심으로 기획서를 업데이트해준다.


15화에서 'AI 대화를 저장하지 않으면 손해'라고 했던 것의 연장선이다.

가설도 대화와 마찬가지로, 기록하지 않으면 흩어진다.

그리고 흩어진 가설은 기획의 방향을 잃게 만든다.


가설은 답이 아니라, 방향이다

한 가지 꼭 기억했으면 하는 게 있다.

가설은 맞추기 위해 세우는 게 아니다.

방향을 잡기 위해 세우는 거다.


가설이 틀려도 괜찮다.

오히려 틀린 가설이 기획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이건 아니다"가 확인되면, 남은 선택지가 좁아지면서 진짜 답에 가까워지니까.


AI를 쓰면, 이 과정이 빨라진다.

혼자 머리 싸매고 3일 걸릴 가설 발산이, AI와 30분이면 끝난다.

검증 설계까지 포함하면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AI가 아무리 빨리 가설을 만들어줘도, "이 중에서 뭘 검증해야 하는지" 고르는 건 결국 기획자의 몫이다.


현장을 아는 사람, 맥락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판단이다.


AI는 선택지를 넓혀주고, 구조를 잡아주고, 속도를 올려준다. 하지만 '이 가설이 우리 비즈니스에 정말 중요한가?'는 사람이 결정한다.


내일 기획 회의가 있다면, 회의 전에 5분만 시간을 내보자.

AI한테 "이 프로젝트에서 가능한 가설 10개 만들어줘"라고 한 번만 시켜보자.

그 10개 중에 하나가, 회의에서 팀장을 끄덕이게 만드는 한 마디가 될 수도 있다.


다음 글에서는 회의가 끝난 뒤 얘기를 해보려 한다. 회의록, AI한테 맡기면 뭐가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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