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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Oct 22. 2020

좋니

나의 라디오 스타


누구나 각자의 방법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또 내일을 맞는다.  경계를 노트북 끄기,

책 덮기, 기도하기, 캔맥주 마시기, 반신욕

달리기, 요가, 일기, 명상, 청소, 멍 때리기 등

여러 개 중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을 텐데

과거에도 지금도 노래가 가장 편안하고 가깝다.

어릴 적엔 오늘과 어제, 내일에 선을 긋지 않고

매일 이어지는 하루를 꿈꾸기도 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고

밤이 밤이 아닌  것. 밤에 여분의 시간이 주어지고

그게 끝없이 이어져서 그 시간 동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냥 하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가 라디오를 듣는 일이었다.

새벽 3시경 애국가가 흐르고 조정시간이 지난 뒤

다시 방송이 시작됐다.

잠시 송출 공백이 있던 것.

그리고 또 듣다 보면 쉽사리 6시가 되고

그러다 7시가 되면 학교에 가야 한다.

교실에 일찍 도착한 친구들끼리

을 까먹고

쉬는 시간만 되면 간밤에 들은 라디오 얘기며

그때 읽은 온갖 잡동사니 이야기를

나눈다.

그 중 라디오 듣는 친구들끼린 과제가 있었는데

어젯밤 들은 그 라디오 프로그램의 끝곡은?

디제이 마지막 멘트는?

이런  질문으로 매점 과자내기를 하곤 했다.

그리고 각자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으면

그걸 나머지 사람들이 들어주고 품평을 하는 것이다.

하교 후 또 수다가 남아서

마을버스를 타고 뒷자리에서

남은 소재 떠들 때도 있다.

스기사님이 너희 언제 내리냐

대체 몇 바퀴 돌 거냐고 얘기하시면 그제 정류장에

내린다. 그 기억의 언덕에 오르막길이 있다.

버스가 그 즈음을 통과할 때면

이제 또 반을 돌았구나, 아쉬움 마음이 생기고 마는데

어느 공간,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조바심날 때면

그 노선, 좁은 골목의 강변역 오르막길 기분이 떠오른다.

잠보다 수다가, 낮보다 밤이 그리고 새벽에

중독되었던 시간들. 어른이 된 후로는

잠이 모자랐던 결과인지

두통이 습관화되고 억지로 잠을 자야 하는

상황에 처했지만 다시 돌아가도

그때의 라디오와

디제이들,

그 새벽에 만난 노래와 책들은 포기 못할 것 같다.

밤의 라디오는 십대의 출구였다.


하루일과 후 집으로 가는 길,

이젠 어릴 적 주파수 라디오 대신

스마트폰 멜론 어플을 쓴다.

그날 특히 듣고 싶은 음악이 생긴다거나

입안에 맴도는 노래가 있으면

그게 일종의 무의식으로 이유가 있는 듯 느껴져

검색해 듣는다.

그러다 직접 고르기보다 남이 골라주길 바랄 때

혹은 무기력한 날,

비슷한 곡으로 자동으로 추천받는 리스트를 듣거나

최신 발매곡이나 드라마 오에스티를

랜덤으로 듣곤 한다.

오늘은 어플이 골라주는 기능을 눌러봤다.

기계가 대체한 선택 심리는 마침

시월의 가을밤 <좋니>였다. 어릴 적 그 밤새 듣던 라디오에 살던 귀한 분의 곡.

성당이나 교회 혹은 대학의 과방에

재치있고 자상하게 앉아 있는

선배의 모습으로, 끝없이 수다를  나눠도

하나도 지루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의 가수.

(실제로 나는 가수의 가끔 보이는,

특히 안경 벗을 때 보이는 고독한 이미지를 더 좋아했지만)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농담도 잘하고 심지어 노래까지 잘해서

말주변으로 끌어놓고 결국 음악으로 마음 뺏는 가수.

2017년 이즈음 <좋니>는

마음 설레는 나이, 사랑이 중요한 시기의

사람들을 홀렸다. 대학가 축제를 휩쓸었고

기숙사에서  노래방에서

좋니를

너무 목놓아 부른다는

제보가 속출했다.

카페마다 통신대리점마다 라디오마다

발 닿는 곳마다 울리던 곡.

사실 어디에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즈음 좋니가 나오는

길가에 서서 가게 간판 사진을 찍곤 했다.

좋아하는 가수 노래가 쉴 틈 없이 나오는 게

신기해서 여름즈음부터 놀라 찍기 시작했는데

가을에 이르러서는 대폭발. 사진찍는 게 무의미해졌다.

거의 정점을 찍을 듯 올라갔다.

어플 순위 장기간 매주 1위!

그순간도 즐거워 캡처, 캡처, 또 캡처.

그러다 쇼미더머니 우원재로 순위가 뒤집힐 땐

그 래퍼의 어둔 음색이 끌리긴 했지만

너무나 속상했다. 언젠가 내려올 순위이긴 하더라도

그 정점의 순간, 1위에 왜 집착한 것인지.

내가 윤종신을 좋아한 건 그런 매체의 순위라든가,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이라고

너무 당연스레

여겼는데, 그건 '알량한 자존심'였단 말이니,

어느새인가 좋니 1위에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인가, 그때는 팬으로서 온전히

그 노래를 감상하지 못하고 좋니 대중적 인기에

붕 떠 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뒤늦게 다시 좋니가 좋다.

아프다,는 아프지 않아,라 들리고

이젠 소식조차 들리지 않는 사람을

노래를 들으며 잠시 떠올렸다 접고

좋니가 거리에 흐를 때 윤종신 노래를

좋아하던 나를 떠올렸을까 옹색히 생각도 해본다.

노래란 내  어딘가 얼마든지 좁쌀처럼 박혀있는

그 알량함을 빼내어 주는 것 같다.

십대처럼 노래에 대해 떠들 무리는 사라졌어도

노래는 더 많아져서 이젠 어플까지

계절 속 내 맘을 알아주니 고맙다고 해야 할까

오늘 하루의 마무리는 <좋니>,

번뇌가 생기면 <배를 채워>

지금 내곁에 <그대 없이는 못 살아>할 만한 사람들에게 잘해. 그래야 해피엔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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