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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아프레스 Oct 27. 2020

도시인

그냥 뚫고 갑시다

아침에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사면서 도시인 노랫말이 떠올랐다. '디스 이즈 더 시티 라이프!'

도시 풍경을 묘사하던 1992년 넥스트 홈 앨범 속 가사는

2020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쫓기는 사람처럼 시곗바늘 보면서'

타인의 회색빛 얼굴들에 섞인 나의 회색빛 얼굴에도 그렇게

그때의 가사들이 박혀 있다.

'두통아 사라져라'라는 제목을 지은 카드로

테이크아웃을 주문하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 사이로 

음료를 들고서 걷는데 도시인 노래가 맴돌았다.

하루를 힘차게 시작해보려는 의지를

도시인 가사에 섞어

'아무런 말없이 어디로 가는가,

다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이란 정서에 쓸려 보낸다.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멍하니 차림새 엇비슷한 인파를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아침 곳곳에 그런 앵글이 잡힌다.

특히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지하철 환승 통로에는

미리 안내판 다음 열차 시각을 확인하고

사람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뛰어간다.

우르르 달려오는 사람들 사이로,

또 한편의 우르르 달려가는 사람이 되어,

지하철 환승 통로에

우레탄이라도 깔렸으면 좋겠단 바람도 든다.

준비 운동 없이 바로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이들의 무릎 보호를 위해서 말이다.

버스를 타면 기사님은 격전의 현장으로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전사처럼 운전한다.

아무도 타격 없이 어딘가로

안전히 데려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 중이듯,

운전에 집중하고

그 와중에도

반대편에서 오는 같은 회사 번호 차량을 지나칠 땐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넨다.


대중교통 속 한차례 밀치기 전쟁이  끝나

'자동차 경적소리'를 뒤로 하면

또다시 반복되는 하루.

도시인이 유행하던 구십년대 초노래를 을 때는,

'아침엔 우유 한 잔, 점심엔 패스트푸드'

패스트푸드라는 단어 자체도 이국적이고

지극히 세련된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이 떠오르고

여의도 빌딩의  바삐 움직이는 화이트 컬러들이

그려지는 노래였다. 외롭지만 성장해가는 이들.

그런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이 노래는

처연하고 어떤 땐 서글프게 다가온.

학생 때만 무거운 가방에 어깨를 늘어뜨릴 줄 알았는데

입시가 끝나도 그 늘어진 어깨를 질질 끌고

행복을 느끼려는 순간 다시

입사 시험에 시달리고 또 회사에 합격해 축하를

받으면 그때의 영광은 잠시, 고생의 시작이고,

그 안에서 또다른 책임들이 등장한다.

인생의 이 막, 삼 막을 그리며 도전하고 또 넘어지고

예상 못한 갈등의 돌부리들에 연이어 부딪힌다.

오히려 이전의 무거움이 가벼움으로 기억되고

또 다른 막중한 무게감이 삶을 짓누른다.

가끔 성취감도 느끼지만

그걸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채

다시 경쟁에 내몰리고 거기서 도피 혹은 도전할라치면

내적 육체적 고통은 계속된다.

도시인은 스스로뿐만 아니라 환경과

끝없이 다퉈야 하는 현장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끝없이 고통을 극복할 방법을 찾는 게

도시인의 미션. 

'어디로 가는가' 계속 질문하는 와중엔

언젠가는 답을 마주할 테지.

1992년의 노래가 내게 들려준 해답.

인생의 무게를 누군가는 예술로 풀기도 하고,

종교로 운동으로 풀기도 하고,

더한 도전을 하거나 혹은 내려놓거나

저마다 방법은 다를 것이다.

각종 통로를 다른 방식으로

통과하며 삶의 무게를 가볍게 줄이길 원한다.


나는 무엇으로 찾지, 노래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게 꼭 명료한 해답을 얻지 못할지라도

스스로에게, 타인에게 묻는 그 자체로도

어쩌면 도시인의 비애를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위안하며.

아직 답은 찾는 중이다.


최근 신해철의 옛 인터뷰와 노래들을 통해 그를 추억하는 프로를 보면서,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그의 대답에 위로받고 있었다.


흔들리는 영혼에게 그가 건넨 말은 진심,

진리였다.

맘에 남는 그의 언사를 티브이 화면에 대고

찍다 보니 어느새 

프로그램 거의 전 장면을 찍고 있었다.


마왕 신해철의 위로 같지 않은, 더한 위로.


"이건 앞으로 절대 나아지지 않는다!

가시밭길이 끝나면 이상한 덤불길이 하나 나오고요.

진흙탕 길이 그다음에 꼭 나와요.

진흙탕 길인데 친구랑 데굴데굴하면서...

포기하면 편하잖아요.

그냥 뚫고 갑시다!"


참 그리운 가수, 언변가, 디제이, 필자,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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