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아프레스 Oct 28. 2020

나에게  쓰는 편지

변하지 않는 시간

코로나 시기  집콕 시간에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며

친한 친구에게 편지가 왔다.

이메일로  사적 편지도 좀처럼 쓰지 않는 시대에

친구의 손 편지가 집으로 도착했다.

낯설지만 한편으로 낯익은 오래된 감정이 떠올랐다.

누군가 편지는 종이 위의 퍼포먼스라는데,

친구는 자신이 현재 좋아하는 것들과

요사이 심경  변화를 적어 보냈다.

내가 마지막으로 편지를 써본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희미했다. 계속 세상은 심하게 변해가

주변에 간절히 품었던 마음들이 사라지기도 하면서,

편지를 쓰는 것이 쉽게 되지 않았다.

한번 말로 떠들고 나면 책임이 덜하다고 느낀 탓인지, 

얼굴을 보고 말해도 

편지 글자는 남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 갔다.

친구에게 답장을 쓰려다 차일피일 미루며,

나는 지금 무엇에 쏠려 있나, 무엇을 좋아하나

친구의 편지 덕분에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아끼던 디브이디를 답신과 보내려 포장을 했다.

시차를 두고 나누는 독백에, 나를 찾는다.


음악도 편지와 마찬가지다. 시간차를 두고 불쑥불쑥

내게 또 지금 무얼 소중히 여기느냐 묻는다.  

시월이면 신해철 음악을 반복해 듣는다.

아끼는 곡을 한 두 곡 뽑기 곤란할 정도로,

거의 전 곡을 좋아해 불쑥불쑥

떠오르는 곡을 자주 플레이한다.

 친구에게 편지를 쓰려는 마음을 갖고선

 ‘나에게 쓰는 편지’가 떠올랐다.

그 노래 안에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라는 구절이 있다.

편지를 쓸 수 있는 대상이란, 이런 말을 건넬 수 있는 상대가 아닐까.

편지 속 친구는 언젠가에도 힘든 때 힘든 것을 솔직히

말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렇게 타인에게 자기 감정을 풀어낼 수 있을 때가

건강히 필요한 시간이라고 공감했다.

오히려  에게 얘기하지 못할 정도로 꾹 눌러두고

힘들 때가

그야말로 불안하고 두려운 때 같다.


어릴 적 연애를 시작했을 때 상대는 내게 왜 힘든 때 자신에게 말하지 않고 도움을 바라지 않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걸 굉장히 서운해 했고,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다음 연애는 모든 걸 다 털어놓다 실패했다. 그 다음에는 또 반 정도 말하지 않게 됐고 

그 거리 조절을  가슴이 아닌 머리로 해보려 했다.

이상한 반복을 경험하며

어느 정도 중용을 찾아가는  것 같다 착각했을 땐

이미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친구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다시 편지 쓰는 여유,

정확히는 쉽사리 힘들다 토로할 수 있는

꾸밈없던 시절의 시간을

조금

갖고 싶었다.

그런데 여전히 감정을 여과없이 토로하는 어떤 상대들은 부담스럽다. 감정의 시소에서

어느 정도 서로 적응이 된 관계가 오래 가지만

적정선의 거리가 몇 미터인지 여전히 알 수 없다.

너무 줄어들면 부담스럽고 너무 벌어지면 외로운,

그 이상한 거리. 자연스레 내버려둘 수밖엔 없다.

어쩌면 그런 간극 때문에 노래나 영화를

보며 타인의 시선으로 다른 차원의 위로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얼마든지, 훌륭한 예술품이 세상에 넘쳐나더라도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라고

나를 내려놓는 시간을, 손편지로 찾아 보고 싶다.

코로나 19로 편지 쓸 시간이 생긴 친구의 정서적 여유가, 나에게 물들 수 있어 다행이다.  

20  여름 장마 시절. 애청곡 '기도' by 노땐스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