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7일) 아침, 8,300달러에 이르던 비트코인 가격이 7,800달러로 하락했다. 2시간 반 동안 시총 약 7.8조 원이 감소한 것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US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이하 “SEC”)가 비트코인 ETF 승인을 기각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로써 윙클보스 형제는 비트코인 ETF 재검토 요청까지 기각당한 것이다.
윙클보스 형제는 영화 ⟪소셜 네트워크(2010)⟫에서 마크 주커버그가 그들의 아이디어를 도용해 페이스북을 만들었다는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형제는 주커버그로부터 받은 합의금을 비트코인에 투자했다[2]. 이어 2013년에는 비트코인 결제 시스템인 비트인스턴트에 투자를 했고, 2015년에는 비트코인 거래소인 제미니(Gemini)를 설립했다. 이렇듯 ‘비트코인 전도사’로 활발한 활동을 해온 윙클보스 형제는 2016년 ‘윙클보스 비트코인 신탁(Winklevoss Bitcoin Trust)’이라는 이름으로 SEC에 비트코인의 ETF 승인을 요청했으나 작년 3월 기각되었다.
이후 올해 5월 암호화폐 상장지수상품(Exchange Traded Product, 이하 “ETP”) 특허를 받은 뒤[3] 추가 자료를 덧붙여 SEC에 재검토를 요청했다. SEC는 해당 승인 요청을 전면 재검토했고, 그 결과를 발표한 것이 27일 아침 우리에게 전달된 뉴스다.
ETP란 시장에서 거래되는 각종 상품에 분산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투자상품의 일종이며, 거래소에서 거래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가장 흔한 형태의 ETP가 이번에 이슈가 되고 있는 ETF(상장지수펀드; Exchange Traded Fund)인데, 이는 특정 지수 및 특정 자산의 가격 변동과 수익률이 연동되도록 설계된 펀드다. 마찬가지로 거래소에 상장되어 주식처럼 거래되기 때문에 매매가 편리하고 거래비용이 낮은 특성이 있다[4].
현재 제도권 금융시장의 자금은 암호자산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제도권 금융시장은 타인의 자금을 운영하는 기관들로 이루어져 있어, 선관주의의무에 귀속되어 매우 강력한 규제 하에 제한된 투자 활동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완전히 규제의 틀 안에 들어오지 못한 암호자산에 대한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비트코인을 기초상품으로 한 ETF 거래가 인정되고 제도화된다면, 월스트리트를 필두로 한 제도권 투자자들이 규제에 따라 합법적으로 암호자산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곧 엄청난 규모의 자금 수혈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업계 전반의 발전 속도가 한층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윙클보스 ETF는 ‘윙클보스 비트코인 신탁’을 상품에 기반한 신탁으로 상장하고 거래할 수 있도록 제안했다. 여기에서 ‘상품’은 비트코인만을 의미하며, 윙클보스 형제의 ‘제미니 신탁 회사’를 수탁사로 한다. 참여자, 총자산가치의 결정 방식, 실시간지표가치 등 윙클보스 형제가 구성한 ETF의 보다 자세한 내용은 기각 명령에서 요약된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검토 시 중점이 되는 조항은 “사기와 조작 행위 및 관행을 막고 투자자와 대중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미국 증권거래법 6조(b)(5)이었다. 우선 SEC는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시장이 사기와 조작 행위 및 관행에 저항성을 갖고 있는지 검토했다. 그러나 “비트코인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장 시스템임을 감안하더라도, 증권거래법과 관행법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사기∙조작행위에 취약하다고 판단했다.
SEC는 비트코인 시장이 사기∙조작행위에 취약하다면, 그런 행위나 시도를 감지하고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은 잘 마련되어 있는지에 대해 검토했다. 비트코인 ETF를 상장하고 거래하는 거래소가 ▲기초상품 또는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주요 시장들과 상호 감독 계약을 체결했는지 ▲시장이 규제되고 있는지를 살폈다. 이 또한 미흡하다고 판단한 위원회는 최종적으로 기각을 선고했다[5]. 지난번 기각을 선고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유였다. 비트코인 시장이 아직 규제되지 않았으며, 비트코인 주요 거래소 간 상호 감독 계약이 없다는 것이다[6].
총 다섯 명의 SEC 위원 중 올해 새로 임명된 헤스터 피어스(Hester M. Peirce)는 이 날 위원회의 결정에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자신은 SEC의 판단과는 반대로 윙클보스가 SEC에 제안한 규정 변경이 증권거래법 6조(b)(5)을 충족한다고 판단하며, ETF 기각 명령이 비트코인 시장의 제도화와 혁신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었다[7].
"비트코인은 새로운 현상이며, 장기적인 생존 가능성은 불확실합니다.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원회는 비트코인 혹은 다른 어떤 자산의 결과를 평가하라고 만들어진 곳이 아닙니다. 많은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에 관심을 표현해왔고, 그중 일부는 비트코인을 직접 소유하지 않고도 비트코인에 노출되길 원합니다. 여기서 이슈가 되고 있는 제안을 승인한다면, 투자자들은 규제된 증권 시장 내에서 ETF를 구매할지, 구매하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위원회의 결정은 투자자들의 선택권을 박탈했습니다. 우리는 혁신의 발목을 잡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을 거부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투자자를 보호하고, 자본 형성을 촉진하며,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 헤스터 피어스
지금까지 다양한 종류의 비트코인 ETF가 제안되었다. 디렉시온, CBOE, NYSE Arca가 신청한 비트코인 ETF의 검토 결과가 기간을 두고 올해, 내년 중으로 발표될 것이다. 이런 ETF 제안들은 같은 비트코인을 두고 조금씩 다르게 상품 설계를 하고 있다. 예컨대, 2016년 7월 제출된 ‘솔리드엑스 비트코인 트러스트’는 해킹 시 최대 1억 2,500만 달러를 배상해줌으로써 신탁 보험을 강조하는 식이다.
예외로, 〈암호자산 가치 평가〉로 유명한 크리스 버니스크(Chris Burniske)가 소속되어 있던 ARK 투자매니지먼트가 이미 2015년에 비트코인과 관련된 두 종류의 ETF(ARKW, ARKK)를 승인받았다. 하지만 이는 비트코인 자체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비트코인 투자 신탁 GBTC에 투자하는 것이다[8]. 그나마도 최근 ARK 투자매니지먼트는 비트코인 투자로 인한 소득세가 어떻게 될지 불확실한 상태라고 밝혔으며 때문에 기존에 10% 내외였던 포트폴리오 중 비트코인의 비중을 올해 1% 미만으로 줄였다고 한다[9][10].
윙클보스의 ETF 제안이 처음 기각된 작년 3월, 비트코인의 가격은 일시적으로 30% 가량 떨어졌었다[11]. 이번 기각 소식에도 시장에 충격이 있긴 했지만 10% 미만으로, 이전보다 그 하락폭이 작았다. 시장 내에 기관 투자자들이 많아졌고, 투자자들도 수많은 ETF 제안 중 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더 성숙해졌다는 의미로 보인다. 또한 SEC의 주요 기각 사유가 ‘암호화폐 가격의 조작 가능성’이 아니라 ‘조작을 감지하고 방지할 수 있는 정책의 부족’인 점, 소속 위원이 공식적으로 기각 결정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제도권의 규제 상황 또한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인 금융 시장의 자금은 이미 조금씩 암호자산으로 유입되고 있다. SEC 입장에서도 암호자산이 언젠가 제도화되었을 때 내심 자신들이 시장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에서 암호자산을 제도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규제에 대해 검토하고 있는 추세다. 국제적인 합의를 위해 G20 재무장관회의 등에서도 이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유효한 국제 기준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매우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결국 누가 먼저 유의미한 제도를 만드느냐의 국가 간 경쟁이 될 것이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나라가 현재 산재되어 있는 암호자산 관련 프로젝트의 선두에 서고 부를 거머쥐게 될 것이다.
지난 2월 미국 의회에서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SEC의 청문회가 열렸다. 지안카를로 의장은 암호화폐 관련 규제의 원칙을 “Do No Harm(해를 끼치지 말라)”로 제시했다. 새로운 기술에 대응하는 규제안을 내놓더라도, 기술의 발전과 혁신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12]. IT 기술이 발달하고 국민 대부분이 암호화폐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 유의미한 제도화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1] Christopher, C., Prichard, S. (Producer), & Christopher, C. (Director). (2016). Banking on Bitcoin [Motion Picture]. United States: Gravitas Ventures.
[2] Nathaniel, P. (2017, December 19). How the Winklevoss Twins Found Vindication in a Bitcoin Fortune. The New York Times, Retrieved from https://www.nytimes.com/2017/12/19/technology/bitcoin-winklevoss-twins.html
[3] Rahul, N. (2018, May 9). Winklevoss Twins Secure Patent for Cryptocurrency ETP Exchange. CCN, Retrieved from https://www.ccn.com/winklevoss-twins-secure-patent-for-cryptocurrency-etp-exchange/
[4] http://open.krx.co.kr/contents/OPN/01/01030201/OPN01030201.jsp#e1de86074f474610c75bc28daee7828e=1
[5] Self-Regulatory Organizations; Bats BZX Exchange, Inc.; Order Setting Aside Action by Delegated Authority and Disapproving a Proposed Rule Change, as Modified by Amendments №1 and 2, to List and Trade Shares of the Winklevoss Bitcoin Trust. (2018, July 26). Retrieved from https://www.sec.gov/rules/other/2018/34-83723.pdf
[6] Chris, B., Jack, T. (2017). Cryptoassets : The Innovative Investor’s Guide to Bitcoin and Beyond. New York, NY: McGraw-Hill.
[7] Hester, P. (2018, July 26). Dissent of Commissioner Hester M. Peirce to Release №34–83723; File No. SR-BatsBZX-2016–30. Retrieved from https://www.sec.gov/news/public-statement/peirce-dissent-34-83723
[8] ARK ETF Trust Statement of Additional Information. (2017, November 30). Retrieved from https://cdn2.hubspot.net/hubfs/533155/1_Download_Files_ETF_Website/Performance-and-Other/ARK_ETFs_SAI.pdf, p.32
[9] Cinthia, M. (2018, May 17). Barely Any Bitcoin Left in ARK ETFs. ETF.com, Retreived from http://www.etf.com/sections/features-and-news/barely-any-bitcoin-left-ark-etfs?nopaging=1
[10] ARK ETF Trust: ARK Innovation ETF(ARKK), ARK Web x.0 ETF(ARKW). (2018, January 10). Retrieved from https://etfs.ark-funds.com/hubfs/1_Download_Files_ETF_Website/Prospectuses/Supplement_Prospectus%20Sticker.pdf
[11] 美 증권위, 윙클보스ETF 승인 거부…비트코인 30% 추락. (2017, March). Retrieved from https://coinone.co.kr/talk/clip/detail/168?page=1
[12] 고란, (2018, February 8). 중국이 닫은 암호화폐 관뚜껑 美 금융당국이 다시 열었다. 중앙일보, Retrieved from https://news.joins.com/article/22354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