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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의 일

by Dahl Lee달리


“세상에 노는 법을 모르는 아이가 있을까요?”

“없을 거예요.”

“노는 법을 잊어버린 아이는 있을까요?”

“아마 있을지도요.”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놀이를 시작한다. 태어나서 얼마 안 되는 아기들은 자기 몸부터 가지고 노는 법을 배운다. 자기 손이나 발을 가지고 놀다가 이윽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방법을 터득한다. 이 모든 과정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이어진다. 재미를 추구하는 성향은 인간에게 내재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놀이터는 있다,라고 미미는 생각한다. 물론 그 놀이터가 꼭 우리가 생각하는 그 놀이터만은 아니다. 순수한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공간과 그 공간이 잠긴 시간까지 아우른 곳일 테다.


어릴 적 친구가 없던 미미에게는 놀이터는 늘 책으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서점이나 도서관, 혹은 책이 많은 조용한 공간이라면 어디든 놀이터가 되었다.


미미는 엄마를 생각한다. 동그랗게 닳고 닳아 부드럽게 마모된 엄마의 손을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의 놀이터를 생각한다. 엄마의 놀이터는 어디일까? 엄마는 교회 가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엄마가 거기서 얻고 있는 것이 재미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엄마는 교회에서 자주 울었다. 놀이터에서 우는 사람은 없다. 엄마를 생각하니 미미는 조금 울적해졌다. 기분을 달래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


사실은 요리라고 부를 수도 없는, 재료 다듬기에 가까운 일이다. 오늘은 셀러리 한 단을 사 왔다. 삼천 원. 커다란 보울에 담그고 물을 그냥 틀어놓는다. 대충 물기를 제거하고 큰 칼로 셀러리를 작게 조각낸다. 서걱. 서걱. 서걱. 삼천 원짜리 셀러리는 작게 조각이 날수록 더 커다란 산처럼 쌓인다. 투명한 타파웨어 세 개에 가득 담기고도 남는다. 남은 셀러리를 커다랗고 오목한 핑크색 접시에 가득 쌓는다. 얇게 썬 양파와 조각낸 샤인머스캣 서너 알을 위에 얹는다. 호두로 만든 고소한 드레싱을 뿌린다. 입에 가득 밀어 넣고 씹는 셀러리의 맛은 오묘하다. 쓴 것 같기도 하고 아린 것 같기도 하다. 압도당할 만큼 강한 향에 울적한 기분이 씻겨나간다. 가끔 씹히는 샤인머스켓의 달콤한 맛은 아주 가끔 만나는 선물 같은 좋은 날 같다. 미미에게는 자주 오지 않는 날이다.

셀러리를 먹으며 미미는 오늘의 일과를 생각한다. 미미는 오늘 3시부터 9시까지 약속이 있다. 상대는 오늘 처음 보는 남자. 미미는 그 남자의 사진과 간단한 자기소개가 담긴 프로필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것은 미미의 ‘일’이다. 셀러리를 사고, 전기세와 방값을 내게 해주는 수단.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 ‘시간제 경청자’, 미미는 자신의 일을 이렇게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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