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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y Jun 25. 2021

[작문연습157] 배달

- 배달의 민족이라는 신화

 2011년 피자헛이 30분 배달제를 폐지했다. 당시 피자업체들은 속도경쟁으로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배달 기사들의 잦은 사고와 교통법규 위반으로 사회적 지탄이 쏟아졌고, 결국 30분 배달제 폐지 운동까지 불거졌다. 그로부터 10년 뒤 우후죽순 등장한 배달업체들이 또다시 속도 경쟁에 뛰어든 양상이다. 10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에 비해 자성의 목소리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2021년의 배달 경쟁은 빅데이터에 기반한 알고리즘이 더 정교한 방식으로 배달 기사들의 속도 경쟁을 부추긴다. 이제 배달 시간은 30분 이내로 한정되지 않는다. 20분과 10분대 배달 가능 메뉴도 나타났다. 배달앱의 알고리즘은 산 넘고 건물을 뚫어야 하는 직선거리를 배달 기사에게 제시하며 할당된 시간 내에 배달을 마치기를 강제한다. 알고리즘의 거리 및 속도 계산 방식에 부합하지 못하는 배달기사는 고장 난 기계로, 배달 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는다.


 당일 배송을 넘어 새벽 배송까지 책임진다는 택배업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배달앱·택배사들의 과당 경쟁 덕분에 소비자 편의는 급증했다.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시간대의 배달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됐다. 기업 간 경쟁 속에서 소비자 편익이 증가하는 건강한 자본주의의 표본과 같은 상황 속에서 배달기사들의 안전문제는 지적은 될지언정, 고쳐지지는 않는다. 한번 맛본 편의를 쉽게 포기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불과 10년 전 30분 배달제를 없앴던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은 이제 낡은 것이 돼버렸다. 기술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인권감수성은 몇 걸음 후퇴하는듯하다. 배달앱과 택배사의 광고에 나오는 젊은 남녀의 환한 웃음은 더없이 인위적인데,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촉박한 시간에 맞춰 배달하기 위해 땀과 피곤에 쩌들어 가는 노동자는 광고판 뒤에 가려져있다.


 1920년대 대공황에 허덕이던 미국 경제를 구제할 아이디어를 제공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미래 기술발전이 사람들을 덜 일하고 더 쉬게끔 도울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 세기 지나 그의 예언은 절반만 현실이 됐다. 일부 사람들은 케인즈가 말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일부에 들지 못한 이들은 일부의 안락한 삶을 지탱하기 위해 열악한 노동으로 밀려나고 있다.


 배달의 민족이라는 신화 속에서 빠르고 어디든 가는 배달 문화는 국가 인프라의 하나로 자랑거리 삼아 얘기되곤 한다. 하지만 혁신적인 기술이 아닌 인간의 안전을 연료 삼아 이룩한 배달 문화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어야 한다. 10년 전 우리 사회가 30분 배달제를 퇴출한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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