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를 찾는다는 것
목소리가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목소리가 바뀌면 인생이 달라진다."라는 책이 있을 정도로 목소리는 사람의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 주는 것 같다. 단지 첫인상이 좋아지고 설득력이 있고 하는 것 이상으로. 목소리가 바뀌면 99% 인생이 바뀐다고도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버트 메러비언은 메시지를 전달할 때 목소리가 차지하는 비율이 38%나 차지한다고 했다. 표정 태도는 35%, 신체적 표현이 20%, 전달하는 내용은 7%라고 했다. 아주 의외이다.
처음 이 내용을 들었을 때 배신감마저 들었다. 나는 내용을 잘 준비하는 사람이지 그 나머지에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말할 때 논리력은 괜찮은데, 말할 때 목소리가 늘 고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말을 거의 속삭이다 시 피해서이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 나면, 소개팅을 나가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상대는 거의 없는 정도. 한 번은 너무 반갑게도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너무 신기해서 "제가 하는 말 어떻게 들으셨어요?" 물었다. 그의 답은 예상외였다. "입모양 보고요."... 아...
처음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을 때, 아이들은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안 들려요." "네?" "선생님 안 들려요."라고 늘 말했다. 어떻게 해도 내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결국은 다들 내 코앞에 와서 말을 전달해 듣고 다시 제자리로 가기도 했다. 오래 가르치니 이렇게 조용한 목소리로도 수업을 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다. 그렇게 되자 이제는 속삭이듯 말을 해도 아이들을 조용히 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수업은 주로 조용히 진행이 되었다. 아이들은 고맙게도 나의 소리에 집중해서 들어주었고, 나의 목소리는 여전히 속삭이는 듯했다.
이런 내 목소리에 대한 고민은 이미 오래되어서, 묵혀 두었었다. 그러다 우연히 스피치 학원에 상담을 하러 가게 되었다. 상담한 날은 감동도 받고, 또 여러모로 고민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고민 끝에 학원을 등록하고 첫 수업 날. 빨간색 원피스에 아담한 체구의 선생님이 날 기다리고 계셨다. 그런데 이 분이 "안녕하세요" 하는 순간. "와우" 그분의 목소리에 반해 버린 것이다. 그 목소리에 갑자기 그 선생님의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굉장히 따듯한데, 카리스마 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그 순간부터는 그분이 '아담 한 체구'가 아니라 심지어 키도 커 보였고, 무엇을 설명해도 그 이야기들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이후 그 선생님의 수업은 그다음부터 정말이지 수업 내용이고 뭐고 그 목소리 때문에 너무 그 수업이 재미있었고, 나는 그 수업만 가면 집중이 그렇게 잘 되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이럴 수가 있었다.
목소리가 갖는 힘, 목소리가 갖는 매력 나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목소리의 최고의 상태를 만나고 싶다는 욕심도 들었고, 궁금함도 생겼다. 그렇게 나의 목소리 찾기의 여정은 시작이 되었다.
이렇게 여름 내내 목소리를 찾겠다고 받은 목소리 트레이닝 수업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 3가지를 주었다.
예상했던 대로 나의 수업은 "발성"에 많이 초점이 맞추어졌다. 스피치에 논리력과 말을 잘하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으니 기본을 챙겨야 했다. 매번 내 목소리를 녹음해서 숙제로 보내야 했는데, 이때 처음 진지하게 내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소리를 낸다는 것이 이렇게 복잡했나? 다른 사람보다 현저히 진도는 떨어졌고, 대체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연습해도 성대는 피곤했고, 소리가 잠기기 일수였다.
나의 선생님, 그 목소리 좋으신 선생님은 "기본"을 많이 지키게 하셨다. 그래서, 목소리를 예쁘게 내려고 꾸미거나 만들려고 하는 것을 못하게 하셨고, 내가 갖은소리 중에서 소리를 찾아내도록 지도해 주셨다.(지금도 혼자 발성 연습을 할 때, 이 것을 기억한다. 급하면 만들고도 싶은데, 그게 아니고 정말 나한테서 소리가 나와야 오래 쓸 수 있고,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여하튼 나는 평소라면 하지도 않을 일, 녹음하고 나의 목소리를 주의 깊게 듣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첫째, 내가 갖은소리로 꾸밈없이 소리를 내야 했고, 둘째, 막힘없이 소리를 내야 했다. 숙제 하나를 내려면 여러 번 반복해야 겨우 하나 건질까 말까였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내가 내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어느 소리가 내가 잘 내는 소리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 과정은 '내가 나한테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있나?' 하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말, 나의 소리, 나의 생각에 많은 부분들을 나는 무심코 지나오지 않았나? 때로 수업시간에 나보다 선생님이 내 소리에 집중해 주실 때면, 나 스스로 더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내 소리를 잘 들어주었나?
목소리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나는 그 어느 때 보다 '내 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듣는 것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내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내 소리를 바꾸기도 가꾸기도 하는 것 같다. 꼭 이 과정이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과정과 유사해서 참 마음에 든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이. 내 목소리에 좋은 톤이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실 때는 "뭐... 톤이 좀 낮아서 그걸 말씀하시려나?" 생각을 했다.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좋은 소리를 사실 가지고 계세요, 맑은 소리를 가지고 계시는데, 소리를 벹지 않아서 그래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다...
선생님이 나로부터 들은 그 좋은 소리는 뭘까? 나는 아직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저분은 들은 건데, 나는 안 들리고, 분명 내게 맑은 소리가 있다는데, 나는 꺼내질 못하고 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내 목소리에 좋은 점이 있구나.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나에게 맑은 소리가 있긴 있는가 보구나.' 생각을 했다. 자꾸 그런 말을 들으니 내 목소리에 대한 믿음도 좀 생겼다.
아주 희한하게도 억지를 쓰면, 그 "맑다는"소리는 나오지 않고 목으로 쓰는 소리가 나오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정신줄을 놓으면 "정답"입니다 하시니 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정신을 좀 놓아야 소리가 나오는 것일까? 그런 것 같았다. 내가 억지 쓰지 않는 상태, 내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나오는 소리가 나의 소리인 것은 아닐까? 나의 인생도 그렇게 자연스러운 상태여야 나 답지 않을까? 목소리를 연습하다 말고 난 또다시 나의 삶의 이야기에 머무르 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내가 좋은 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웅얼거리게 말하는 버릇은 버려라 한다는 점 정도는 확실히 알았다. 지금도 내가 연습할 때 기억하는 부분이다.
3. 내가 나 스스로를 좋아하는 만큼 좋은 목소리가 나오는 경험.
정말 평균의 다른 사람보다 수업을 받아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 나는 실은 실망스러웠다. '어쩌라고... 이제'
더 노력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내 주변에 사람들은 거의 내가 이 목소리 연습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그냥 마이크 써."
"그게 아니라고!" 나는 정말 들었을 때 내가 갖은 최고의 목소리로 내 생각들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가능성은 점점 보이지 않았다. 마음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긴 여행 계획도 있어서 스피치 학원을 한동안 쉬겠다고 말씀드리고 몇 줄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수업을 받으러 갈 즈음. 나의 마음 상태는 이전과 달랐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내 기준에 내가 맞더 맞지 않던 "아 이제 다 모르겠다." 이런, 뭔가를 놓아버린 상태였다. 그 상태가 뭘 버린 상태라기보다는 "다 모르겠으니, 나라도 날 받아 주자." 이런 상태였다. 내가 할 것도 다 해봤으니, 소리가 나오고 안 나오고를 떠나서 그냥 내가 내 소리를 받아주자. 이 런심 정? 내가 날 평가해 봤자 마음에 힘만 빠지니까, 어떤 소리를 내가 내더라도 나는 나한테 좋은 점수를 주자는 마음으로 수업에 갔다. 이런 마음이 되니까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
다시 스피치 수업을 들어갔고, 선생님은 조금 놀라셨다. 왜냐, 내 목소리가 달라져서가 아니었다. 실은 기대만큼 목소리가 안 나와서였다. 나의 반응은 "아, 선생님. 저 많이 좋아진 거 같아요. 소리도 더 좋아졌고요." 나는 그때 내 마음이 괜찮아졌고, 내가 내 소리를 좋아하기로 작정한 상태였다. 그래서 말도 안 되게 이렇게 말한 거다. 선생님은 좀 의아해하셨다. 약간 곤란해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정말 내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숙제를 보내자 "코멘트할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소리가 좋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지금도 피곤한 날, 연습을 게을리 한 날은 소리가 뒤로 간다. 긴장한 날도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원래 소리로 종종 돌아간다. 그럼, 어떻게 한다? 다시 연습하면 된다.
내 뻔뻔한 마음의 여유는 티브이를 보며 더해진다.
발성을 배운 이후로는 텔레비전을 볼 때 소리를 잘 내는 사람들을 유심히 본다. 주로 연극무대에 섰던 사람들을 보면 발성이 참 좋다. 그들은 오랜 세월 저 소리를 내려고 연습했겠지. 무대가 아닌 곳에서 저 무대를 생각하며 긴 시간 소리를 쌓아왔을 것이다. 좋은 소리는 선천적으로도 타고나지만, 좋은 소리는 연습의 양과 비례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처럼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이 아직 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헤매는 것 괜찮지 싶다.
내 소리를 잘 들어주고, 나의 좋은 소리를 찾아주고, 나의 소리를 좋아해 주는 경험은 앞으로의 나의 소리를 더 견고하게 해 주겠지. 그런 기대로 오늘도 젓가락을 입에 물고 소리를 내 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