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치구이 덕분에 세상에 태어난 'VTEC'
자동차 역사에서 기술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있다.
비록 도요타의 그림자에 가려져 늘 '2인자' 소리를 듣고 있지만,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의 도전정신이 만들어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엔진 기술력으로 엔진 달린 물건은 모두 만든다는 일본의 기업 '혼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급된 운송수단인 '혼다 커브'부터 슈퍼카의 패러다임을 바꾼 '혼다 NSX'까지,
혼다는 특정한 자동차나 바이크를 콕 집어 소개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굳이 한 가지를 골라야 한다면, 혼다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기술을 하나 꼽을 수 있다.
1985년, 혼다는 새로운 엔진을 세상에 공개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배기량에서 높은 토크와 고출력을 과급기 없이 자연흡기만으로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혼다는 저회전 영역과 고회전 영역의 흡기량을 다르게 하여 저회전에서의 토크와 고회전에서의 파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내며, 그야말로 신통방통하고 기적과도 같은 기술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도 여러 번의 진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VTEC'의 탄생이었다.
VTEC은 Variable Valve Timing & Lift Electronic Control(가변 밸브 타이밍 및 리프트 전자 제어 시스템)이라는 굉장히 어렵고 머리 아픈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말로는 이 기술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사실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설명이 가능한데,
사실 VTEC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해프닝에서 떠오른 작은 아이디어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꼬치구이집에서, 또는 직접 꼬치를 만들어서 구워 본 적이 있다면,
헐겁게 끼워져서 헛돌고 있는 야채나 고기 조각 때문에 불편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쪽 방향은 타고 한쪽 방향은 익지 않고 있으니 좀 뒤집고 싶은데,
꼬치는 내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고 계속 헛돌고 있으니, 고기와 함께 마음속도 타들어가는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혼다의 기술진들은 달랐다.
만약 느리게 돌리면 헛도는 꼬치를 빠르게 돌린다면 어떻게 될까?
꼬치를 점점 빠르게 돌리다 보면, 어느 순간 헛돌던 고기 조각은 같이 돌고 있을 것이다.
"느리게 돌리면 꼬치에서 헛도는 고기 조각처럼 밸브의 일부분만 열어서 적은 양을 흡기시키다가, 고회전 영역에서는 헛돌던 고기 조각이 힘을 받아 같이 도는 것처럼 밸브를 더 크게 열어서 흡기량을 늘리면 어떨까?"
'저배기량에서 높은 토크와 고출력을 가진 자연흡기 엔진'을 만들어야 했던 그들은
술자리에서 헛도는 꼬치구이를 보고 이 어려운 난제를 해결할 '가변 밸브' 아이디어를 얻게 되고,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만들어진 엔진 기술이 바로 'VTEC'이었다.
1985년 혼다는 1세대'혼다 인테그라'에 VTEC기술이 적용된 엔진을 장착하여 출시한다.
VTEC기술이 담긴 직렬 4기통 1600cc 엔진을 가지고 있었던 인테그라는,
당시로서는 말도 안 되는 성능을 뽑아냈다.
요즘 최신 기술력의 1600cc 엔진이 120마력 정도의 출력을 내는데
인테그라는 1985년 당시 1600cc 엔진으로 무려 130마력을 내는 괴물 같은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VTEC기술 덕분에 모터스포츠 부분에서 날개를 달은 혼다는 그야말로 적토마를 얻은 관우나 다름없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3세대 시빅으로 스카이라인과 BMW 같은 차량들을 능가하며 명성을 떨치던 혼다는
VTEC기술의 엔진이라는 무기를 쥔 4세대 시빅으로 모터스포츠를 압도하기 시작했고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모터스포츠를 그야말로 지배하는 업적을 만들어낸다.
특히나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고 사랑받는 시빅으로 혼다 본사 로비에 전시되어 있는 5세대 시빅은
지금도 혼다의 가장 상징적이고 성공적인 레이싱 시빅으로서의 그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물론 당시 VTEC처럼 가변 밸브 기술을 가진 기업이 혼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요타의 VVT와 미쯔비시의 MiVEC 등등 여러 기업이 가변 밸브 기술을 연구하고 도입하였지만,
혼다 VTEC의 기술력은 80~90년대 기준으로 경쟁상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뛰어났고
혼다의 전설적인 슈퍼카 'NSX'와 수많은 마니아를 보유한 'S2000' 등등
마치 꼬치구이처럼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혼다의 손에서 다양한 메뉴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왜 굳이 'VTEC 엔진'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굳이 'VTEC기술의 엔진'이라고 말하는 걸까?
혹시나 필자가 글의 볼륨을 늘리기 위해 허튼수작을 부리는 것일까?
VTEC은 엔진의 이름이 아니다.
시빅에 탑재되었던 B16A엔진, D15B엔진이나
S2000에 탑재된 F20C엔진,
슈퍼카 NSX의 V6 3200cc 엔진 등등
VTEC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엔진의 종류만 수십여 가지에 이른다.
말 그대로 VTEC은 혼다라는 이름을 가진 조리사의 손에서 고객의 입맛에 맞는 꼬치를 꿰어 제공할 때 꼬치구이를 만들 수 있게 존재하는 꼬챙이 같은 기술이다.
2019년 르노 메간 타입R 때문에 비록 기록이 깨져버렸지만,
뉘르부르크링에서 '7분 43초 8'이라는 기록으로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륜구동으로서 이름을 날린 10세대 '혼다 시빅 타입R'은
1997년부터 이어진 혼다 시빅 타입R의 명성과 VTEC기술력의 발전을 상징하는 증표라고 볼 수 있다.
자동차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VTEC도 i-VTEC이라는 이름으로 진화하였다.
과거에는 그저 '저배기량에서 높은 토크와 고출력을 가진 자연흡기 엔진'을 만들기 위했던 VTEC 기술,
이제는 높은 연비효율과 환경을 생각하는 엔진으로
지구의 환경과 성능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내는 혼다의 새로운 미래전략인 '어스드림즈 테크놀로지'의 중요 친환경기술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혼다만이 i-VTEC으로 가변 밸브 기술의 친환경적 진화를 이룩한 것은 아니다.
현대기아자동차도 2019년 CVVD라는 새로운 가변 밸브 기술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며
기존의 CVVL 가변 밸브 기술보다 친환경적인 진화를 이뤄나가고 있다.
마치 35년 전통을 자랑하던 꼬치구이집의 노하우를 이집 저집 따라하는 것처럼
혼다의 상징이 되어버린 가변 밸브 기술 VTEC은 이제 대부분의 기업들의 필수 덕목 중 하나가 되었고,
원조를 뛰어넘는 기술력과 원조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하는 기술은
마치 서로 비슷비슷한 메뉴와 모습으로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외식업계를 보는 듯하다.
자동차의 친환경시대를 위해 전기자동차와 수소자동차 등등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들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라'
(チャレンジして失敗することを恐れるより、何もしないことを恐れろ。)
혼다자동차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의 말처럼, 새로운 기술적 도전에서 시작된
가변 밸브 기술의 진화가 있는 한, 고성능의 내연기관 자동차는 그리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FIN-
글쓴이-쉐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