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윤 Jul 06. 2021

공황장애수기 #1

안녕하세요, 저는 공황장애와 우울증 등을 건너고 있는 이학윤이라고 합니다. 종종 핸드폰으로 일기 비슷하게 끄적이곤하는데, 카페 창업을 꿈꾸면서 다른 분들과 제 생각을 공유하고자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을 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글이라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

아무래도 카페 창업까지는 먼 길을 가야 할 것 같아서 제목을 바꿨습니다.

---

어렵게 A카페까지 왔다. 계속 공황이 뇌를 때렸다. 바닥이 푹푹 꺼지고 왼발이 오른발을 끌고 갔다. 마스크 안에 이산화탄소가

고였다.

숨 쉬기 힘들고 걷기 어렵다. 두 세번 벤치에 앉는다. 아파트 현관 근처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한다.

왜 공황이 오는 지 이유를 생각한다. 분명 스위치가 있긴 할 것이다. 뭘까. 머릿속에 자리잡은 큰 키워드들. 카페. 로스팅. 자리선정. 두려움. 시작이 두려움. 홀로. 두려움. 고독. 공포. 나는 할 수 없다. 불가능. 두려움. 두려움. 두려움. 그리고 두려움.


스타벅스에 간 히키고모리. 우울증 환자가 카페에 감으로써 안정감을 갖고 사회성을 키운다는 내용의 책. 나도 그런 카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든다. 동시에 전혀 실현가능성이 없게 느껴진다. 내가? 카페를? 홀로? 두려워. 두려워.

그러나 한켠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이성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린다. 나를 지지해줄 동생, 아버지, 어머니. 거대한 파도같은 세상에 내편이 셋이나된다.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내 몸의 컨디션. 개업해도 공황은 온갖 이유를 대며 계속 올 것이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누가? 아니다. 이건 너무 앞서갔다. 설마 대체근무할 바리스타 한 명 못 구할까.


어둡지 않게.

너무 밝지도 않게.

A카페 조명을 참고해서.

테이블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게.

적당히 간격을 두고 배치하기.

콘센트는?

음악은 더블베이스 연주곡을 잔잔하게.

독립서점 컨셉?

D카페 같은 책장?

드로잉카페?

배달?

나만의 컨셉? 좋은 길목에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커피. 에스프레소 머신. 로스팅. 쉬기에 좋음. 그렇다고 나처럼 죽치고 앉아 있을 정도는 아님. 인근배달도 가능.


메뉴는 아메리카노 핫.아이스, 라떼 핫.아이스, 바닐라 라떼 핫.아이스.

선택 가능 원두 3개. 산미 혹은 바디감 위주. 디캡 원두도.

로스팅 가능한 건물이어야 함.


S카페 기억해보자. 작은 1층. 테이블도 적고 로스팅 머신이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함. 2층으로 가자니 계단이 좁고 불편함. 불이 꺼져 있는 경우도 많았음. 서빙하기 불편. 알바를 쓰던데 사장님 부부 둘이 하기에 과도할 정도의 업무가 있었나? 사장님 한 분이 몸이 안좋았음. 이유는 모르지만 경영 악화로 이어져 결국 문 닫을 지경이 됨. 배달 없었음. 커피 외에 메뉴가 너무 많음. 단팥을 직접 만드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고 했음. 카페인데 이래서야 본말전도. 거리에 퍼지는 로스팅 향기가 내 발을 붙잡았지만,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도. A카페는 한적한 곳에 있으니 괜찮음.


A카페. 한적한 곳에 위치. 넓음. 40평? 주변에 대형 교회 두 개 위치. 아파트 단지에서 10분 정도 거리. 앞에는 논밭. 내부는 화이트톤으로 밝고 심플. 깨끗하다는 느낌. 그런데 화장실이 실망스러움. 뽑아쓰는 티슈가 통이 아니라 휴지만 놓여져 있어 불편함. 냄새도 남. 청소를 잘 안하는 듯. 원래는 남녀공용 화장실이었는데 여자들이 되게 불편했을듯. 청소도구도 변기 옆에 있어서 기분나쁨. 두세달 전에 스태프화장실을 여성용으로 바꿈. 안에 비데나 아기 기저귀 갈이를 위한 테이블, 수유를 위한 설비가 있나?


...있을 필요가 있나? 애초에 여성, 유아동반부모, 장애인을 신경써야 할 필요가 있나?

있다.

배려하는 영역이 확장될 수록 나같이 소외된 사람에게까지 충실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다시 A카페. 사용하는 원두는 현재 4가지. 작년에 오픈해서 두  바뀌었다. 사장님 취향이 매우매우 강하게 반영된 카페. 산미가 진한 커피 원두가 2개, 바디감 강한 대중적인 원두 1개, 디캪 1개. 핸드드립으로. 그것도 원두마다 다른 기법으로. 라떼 종류는 바디감위주 원두를 에스프레소머신으로 내려서 만듦. 많은 사람들이 바디감있는 원두 선호. 산미 강한 원두2개는 사장님의 강한 취향. 이 원두들은 향은 꽃밭에 있는 것 같은데 맛은 가벼워서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커피의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 좋게 말하면 개성이 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갑툭튀.

테이블. 왼쪽 벽에 4인용 4개, 오른쪽벽에 2인용4개, 중앙에 6인용, 유리창 따라서 1인용 4개, 커피 머신과 개수대, 그라인더 등이 있는 바bar를 따라 1인용 좌석이 8개.

한적한 곳이라서 가능한 테이블 수와 배치. 애매하게 죽은 공간이 많다. 사장님이 직접 인테리어했다고 한다.

테이블 가운데엔 생화가 있었는데 관리가 되지 않았다. 현재는 조화가 있는데 별로 보기 좋지 않다. 노트북 등의 작업을 하기에 방해가 된다. 없는 것보다 못하다.


위치 선정. 내가 출퇴근하기 편해야함. 현재 사는 집은 2년은 더 살게 될 것 같으니 이 근처로. 동생의 가이드대로 배달어플에서 좋은 리뷰 많이 달린 카페들의 위치를 추려서. 어떤 길목이 좋은 길목인지 공통점 산출. 보증금과 월세 계산. 하루 몇 잔 팔아야 한달치 비용이 충당되나. 거기에 배달이 더해지면 순익은 어떻게 되나.

이런 계산 없이 카페에 대한 로망으로 시작하면 폭망하겠지. 가족들에게 피해만 주고. 물론 그렇게 되지 않도록 계속 도움을 받겠지만.

천천히. 급할 이유가 전혀 없음.

체함.

작가의 이전글 mindscape #2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