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시작되다
"형수님! 오랜만에 나오셨군요."
"응, 오랜만이네........"
정공이 동네 올레길에 운동하면서 형수님을 만났다.
형수는 늘 올레길에 운동 다녔었는데, 작년 겨울부터 발걸음이 뚝 끊어졌다.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고, 곧 수술을 했다고 한다.
"이제는 좀 괜찮으세요? 걷는데 무리가 없으신지요."
"응, 의사가 살살 움직이며 운동해야 한다고 하네........"
"형님은 뭐 하세요?"
"그 양반은 늘 밭에서 일하고 있지."
형수는 별 아무 생각이 없는 듯, 무심하게 말한다.
형수가 일 년 가까이 걸음도 제대로 못 걷고 실내에서 갇혀 살았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공은 형수가 저렇게 고생한 것에 대해서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고 나름대로 추정했다.
그리고 지난날 형수가 고생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세월이다.
"어~이, 여기 웬일인가.........."
"어이구~ 형님! 그리고 형수님, 고생이 많으시네요."
연탄을 잔뜩 싣고, 리어카 앞에는 형님이 끌고 뒤에는 형수가 땀을 뻘뻘 흘리며 밀고 있었다.
"형님! 우리가 도와 드릴게요."
"괜찮아, 이제 거의 배달이 다 끝나가......."
친구와 함께 윗도리를 벗고 리어카를 밀며 도왔다.
동네 슈퍼가 보였다.
"형님! 저기에서 목 좀 축이고 쉬었다 하세요."
"그래, 그러자~ 여보! 저 슈퍼 안에 가서 마실 음료수 좀 사 와."
"아니에요, 제가 가서 사 올게요."
정공은 비호처럼 달려가서 마실 음료수를 사 왔다.
"어디~ 다녀오는 길이야?"
"네~에, 산성에 동기들 모임이 있었어요."
모임이 끝나고 산에서 내려오며 형님 동네를 지나치다 형님을 보게 되었다고 했다.
형님은 원래 정공과 함께 한 직장에서 같이 근무를 했었다.
지금은 먼저 퇴직을 했고, 정공도 역시 퇴직을 한 상태였다.
열심히 사시는 형님부부를 보면서 한 때, 옛날 사원아파트에서 살았던 생각이 났다.
"빨리 들어가! 온 아파트 사람들 다 깨우겠어, 제발........"
"그래도 당신이 힘들잖아, 뭐라도 거들어줘야지.........."
"가만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빨리 들어가서 아이들 봐~ 혹시나 깨어났는지."
정공은 새벽 4시경에 아파트 베란다 통로에서 신문 선전지 등을 정리하고 있는 아내를 도와주러 나왔다.
그러나 사원 아파트 주변에는 저수지가 있어 안개가 자욱해, 정공은 그 안개로 인해 호흡 장애가 일어났다.
콜록콜록거리며 아내를 도왔지만, 그 소리에 아파트 주민들이 새벽잠을 깨울 수도 있었다.
원래 비염,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이 있는데, 안개는 그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던 것이었다.
바쁘게 신문을 정리해서 배달 가는 아내를 뒤로 한채, 정공은 집안으로 들어와야만 했다.
그때, 아내가 왜 그리 안쓰러웠는지 모르겠다.
쥐꼬리만 한 남편 월급으로 삼 남매를 키우는데 버거워, 전력을 다해 아내는 틈틈이 돈 되는 알바를 했었다.
새벽엔 신문 돌리고, 남편 출근과 아이들 등교시키고 나서 공장에도 나갔고, 감수확철에는 감 따러도 갔다.
그렇게 해서라도 취업 전선에 나가 부업을 해야 미래대비, 온 가족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었기에, 아내는 그야말로 억 척 네 여장부였다.
어떻게 보면 형님과 형수님 생활이 우리 부부에게 영향을 많이 끼쳤다.
형님이 늘 하는 말이 있었다.
"평생 남의 집에서 살림살이할 것인가?
자기 집도 빨리 마련도 해야 하고, 자동차도 구입해야 할 것이 아니겠어."
이러한 조언과 충고는 만날 때마다 의례히 하는 18번이었다.
"형님부부가 새 아파트 분양받아 들어간다고 하네, 이번 기회에 우리도 가자."
갑자기 이사를 해야겠다고 아내가 말했다.
물론 언젠가 내 집 마련이 되면 사원 아파트에서 나올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좀 당황스러웠다.
"직장 출퇴근 문제, 아이들 전학 문제, 그리고 친구들도 헤어져야 하고.........."
"지금 우리 사는 문제가 더 시급한 상황에 친구가 대수야?"
아내는 단호하게 정공을 몰아붙이며 결심을 단단히 했는 모양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는 말을 들어 보았지만, 형님부부 따라 강남 간다는 것은 처음이다.
직장에서 형님을 만나자마자 물었다.
"형님! 이사 간 다면서요."
"그래, 안 그래도 자네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형님은 이와 관련하여 상세히 말했다.
주공 신축아파트 분양을 받고 올해 연말쯤에 입주예정이고, 지금도 분양 중이라고 했다.
그러니 우리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신청을 하라고 한다.
"형님 말씀은 질 알겠지만,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서........"
"돈이 있어 집을 산다면 평생 못 살 것이야, 나도 은행에 대출을 냈거든........"
정공은 형님의 말에 선뜻 동의는 하질 않았지만, 수긍가는 듯이 잠자코 들었다.
꿈에도 그리던 내 집이 생겼다.
너무나도 기뻤다.
물론 은행에 대출을 받아 마련한 아파트이지만, 우리 가족이 앞으로 살 아늑한 둥지가 생겼다.
N 가수의 가사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한 백 년 살고 싶어~'라는 노래로 흥을 거렸다.
가슴은 벅차고 마음은 푸른 하늘처럼 청아해지며 발걸음도 가볍게 출근길에 나섰다.
아내도 바쁘게 출근길에 나섰는데, 새로운 직장도 구해내는~ 정말 재주가 좋고 능력 있는 우먼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새로운 학교에 등교하여 새로운 친구를 만날 것이다.
집들이가 시작되었다.
형님부부를 비롯한 직장 동료들이 선물 등을 한 보따리 사들고 찾아왔다.
"축하해! 잘 살고 부자 되어 우리 못 본 체하기 없기~ ㅎㅎㅎ"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본가에 어머님과 형제들, 그리고 처가식구들도 합류했다.
모두들 한결같이 축하해 주고 덕담과 칭찬 속에 무한행복감에 도취되었다.
고사성어에 인생을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
무한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고, 좋은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나쁜 일도 일어나는 것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동기들과 축구를 하다가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다.
그날도 항상 아빠를 따르는 막내딸이 지켜보며 응원하는 가운데 일어났다.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면서, 골절의 통증보다 아빠를 따라오며~ 막내 울음소리가 더 고통스러웠다.
이제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여 다니는 막내에게 큰 슬픔을 보여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