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물처럼 흐른다
"선생님! 제발, 우리 집사람 손을 다시 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정공은 병원 수술실로 가는 의사를 붙잡고 애원했다.
정공이 다리골절로 고생한 이후, 3년 만에 아내가 손을 다치는 중상을 당했던 것이다.
일하다가 장갑이 기계에 딸려 들어가면서 손가락도 전부 으스러지는 참담한 사고를 겪었다.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에 돌아왔지만, 마취가 아직 풀리지 않았는지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손가락을 전부 봉합하는 대수술이었기에, 시간도 오래 걸렸었다.
"엄마 수술은 잘 되었어?"
아이들도 대기실에서 잔뜩 긴장된 소리로 아빠에게 물었다.
"아직, 몰라........."
정공은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고 위로하며 아내를 계속 지켜보고만 있었다.
정말이지, 가정에서 가장으로서 아빠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엄마의 자리는 거의 절대적이다.
엄마의 자리는 그야말로 가족 사랑과 행복을 원천적으로 솟아 내는 샘물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정공은 제발 수술이 잘되었기를 바라며 말없이 기도를 했다.
"수술은 잘 되었나요?"
"일단, 봉합 수술은 잘 되었는데........."
"그럼, 손을 쓸 가능성이 있습니까?"
"앞으로 상황을 지켜봅시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정공은 정말 의사 선생님이 하늘처럼 보였다. 계속 부탁하고 애원하였다.
"그건 그렇고, 참으로 묘한 인연이군요. 부부가 저한테 똑같이 수술을 받기는 처음입니다."
"선생님이 저를 잘 치료해 주셨기에~ 아내도 그렇게 잘 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두고 봅시다. 잘 되지 않겠어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들이 병실에서 나가자, 정공은 아내에게 다가갔다.
아내가 너무 가여워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이 모든 게 못난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좀더 능력있는 남편이 되었으면 이런 슬픈 일은 없을 것이라고......
"울기는 왜 울어, 바보같이.,..."
아내는 눈을 뜨고, 고통스러운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도 아파? 약기운이 없어졌나 보네, 약 먹어야지........"
"괜찮아~ 주사를 맞았고, 약도 먹었어."
손에 붕대를 칭칭 감은 것을 보고 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이들은 잘 돌보고 있겠지, 엄마는 집에 왔어? 언니랑........."
아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장모와 처형이 집에 와서 살림을 돌봐주고 있었다.
"장모님! 우리 막둥이와 함께 놀러 가요."
"어디 갈 건데........"
장모님이 장기간 우리 집에서 기거하며 살림을 도와주었기에, 고맙고 노고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리고 장모님은 장인어른 돌아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정공이 모시고 마이산에도 다녀왔었다.
여하튼 장모님은 바다이든 산이든 산책이나 외출을 좋아하셔서 정공과 소풍을 자주 다녔다.
"야~아! 바다다~ 아빠, 할머니 바다 좋지?"
"그래, 좋네~ 좋아!"
장모님은 가슴이 탁 트여 좋은지, 흐뭇한 모습으로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원래 말없이 조용한 분이라, 마음 표현을 잘하지 않는다.
바다 곳곳을 둘러보고 횟집에 가서 회거리와 식사를 하고 나니 하루가 저물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정공은 장인어른도 같이 모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공을 가장 좋아했던 장인어른이었다.
장인어른은 항상 정공을 지지해 주었고 격려하기에, 장인어른을 뵙고 나면 용기와 희망이 늘 샘솟듯 했다.
일찍 돌아가셨지만, 무엇보다 그때는 승용차가 없었고 지금 승용차도 아내가 다친 후에 샀다.
아내가 퇴원하고 재활치료를 하면서부터 승용차를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신형 승용차를 샀는데, 이름을 황소라고 지었다. 엄청난 산고 끝에 얻은 귀하고 귀한 자가용이었고 앞으로
우리 집 재산목록 1호가 될 것이고, 외관이 황소처럼 늠름하고 준수하였기에 그렇게 불렀다.
그래서 신형 승용차로 장모를 모시게 되었고, 자주 처가 식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녔다.
옛날 속담에 '처갓집과 화장실은 멀수록 좋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처갓집이 가까우니 정말 좋다.
'처가 좋으면 처갓집 말뚝 보고 절한다'는 말이 있지만, 처가야 말로 나를 살리는 은혜로운 가문이다.
"이서방! 술 한 잔 하게..........."
정공은 잠깐 어리둥절했다. 왜냐하면 첫 만남이고, 그것도 직장동료집에서 만남을 주선한 자리에서 돌발적인 상황에 그러했다.
처음에 만났는데, 이서방? 이럴 때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정공은 독백을 하는 듯, 말을 더듬거리며 겨우 대답했다.
"아! 예~에!"
엉겁결에 받아 마셨지만, 술이 무슨 맛인지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몰랐다.
어쨌든 기분은 공중에 붕~ 뜬 것처럼 황홀했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웬 아가씨가 꾸벅 인사를 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불러, 맞선 자리에 나온 모양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이른바 소개팅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소개팅에 아가씨의 부친이 나오셨는 것이 오늘 소개팅의 특별한 점이다.
그냥 말없이 서로 보기만 하고, 아가씨의 아버지 말씀만 계속되었다.
아가씨도 무덤덤하게 자신의 아버지 말씀을 잘 듣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서 부친은 자리에서 일어나가고, 정공은 자리를 옮겨 아가씨와 근처 다방에 들어갔다.
간단한 통성명을 하고 가족, 고향 등 의례적인 문답을 서로 하고는 이내 헤어졌다.
특별히 할 말이 없었고, 오로지 그녀의 아버지가 오늘 이야기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도시철도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가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공은 오늘, 아가씨보다 아가씨의 아버지를 먼저 만난 것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아가씨보다 아버지가 반색을 하며 정공에게 다가왔기에 더 혼란스러웠다.
원래, 이곳 관습인지 풍습인지 그런지..........
어쨌든 아가씨와는 다음 주말에 또 만나기로 언약을 하고 총총걸음으로 역 안으로 들어갔다.
인연이 물처럼 내게 새롭게 흘러 왔다.
정공은 이 모든 게 인연이 되면 이루어질 것이고, 인연에 순응하는 것이 이치라는 평소 자신의 견해이다.
그리고 기회와 인연이 주어지면 포착하여, 새로운 인연을 창조할 것이다.
그러나 주어지지 않는다면 무리하게 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