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송뽀송 내면일기 2
이번이 두 번째였다. '추함'을 못 견디는 나를 마주하게 된 것이. 처음으로 각인된 강렬한 기억은 작년이었다. 작년 초여름, 할머니가 우리집에 잠깐 머물다 가셨다. 오랜만에 뵌 할머니는, 그 '오랜'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길었던가 싶을 정도로 많이 늙고 쇠약해진 모습이었다. 거동도 예전 같지 않으시고, 몸을 움직이는 시간보다 땅에 뿌리를 박은 나무처럼, 소파나 의자에 앉아 계시는 시간이 더 길었다. 할머니는 그냥 누워 있는 게 더 편하다고 하셨다.
식사를 하던 날이었다. 점심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식탁을 모두 셋팅하고, 방에서 주무시고 계셨던 할머니를 깨워 동생과 같이 밥을 먹었다. 그런데 방금 일어나, 할머니 머리가 많이 부스스했다. 가닥가닥 뭉친 머리카락이 제 부끄러움도 모르고 하늘 위로 높이 솟구쳐 있었다. 유난히 그날따라 할머니의 얼굴이며 행색이 어딘가 우습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볼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를 쳐다보는 게 이상하게 힘이 들고, '거북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할머니를 보면서 밥을 먹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쳤다.
두 번째 대상은 아빠였다. 똑같이 식탁에서였다. 아빠는 전날 과음을 하고 식탁에 와 앉았다. 머리카락은 떡져있었고, 얼굴은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평소 넉살 있게 잘생긴 아빠의 얼굴이 그날따라 유독 못생기고 추해 보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화 같은 감정도 얕게 일어났다. 그런 아빠의 모습이 보기가 싫어서, 그만 밥그릇을 챙겨 내 방으로 와 남은 밥을 먹었다. 아빠한텐 미안한 일이지만,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두 번의 경험을 겪고, 나는 '추함'을 혐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부분이 그렇게 싫고, 밉고, 견디기 힘든 건지. 더 못해드린 것에 대한 '못난 나의 모습'인지, '늙어감'에 대한 강한 저항과 거부감인 건지. 자기관리가 안 된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말인즉슨, 내가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똑같이 그렇다는 것.
이 발견을 애써 해피엔딩으로 강제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언젠가, 내가 '혐오'를 느끼던 그 모습까지 사랑으로 포개 안아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나는 나의 추함을 사랑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