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뉴스레터였다. 친구가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뉴스레터가 있는데, 애독자로서 몇 번 답장을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나라는 게 답장에서 너무 티가 난다고 생각해서 바로 들킬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자의식 과잉이었다. 친구에게 그동안 서너 번 답장을 남겼다고 고백하자, 친구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서 내 답장을 찾는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ㅋㅋㅋㅋㅋ
친구는 뉴스레터에 담긴 여러 답장을 들여다보곤, 하나씩 단서를 떠올리며 수사망을 좁혀나갔다. 익명으로 보냈다고 했으니, 닉네임이 있는 것은 아닐테고… 또, 너는 ‘마음공부’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
‘마음공부’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는 말. 어라, 싶었다. 아주 결정적인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마음공부’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친구는 바로 그걸 눈치채고 있었다. 추격전은 다소 시시하게 끝이 났다. 친구는 예리한 눈썰미로 많은 답장들 사이에서 내 답장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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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했다. 친구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마음공부’라는 말을 수납하는 편이었다. 그건, 단어를 쓰는 이와 안 쓰는 이 사이에 어떤 차별점을 두고자 하는 구분짓기, 독자적인 영역 구축, 의도적인 배제시키기… 같은 게 전혀 아니다. 나한테는 오히려 일종의 실험에 가까운 것이었다. ‘마음공부’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쓰지 않고도, ‘마음공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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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테지만, 개인적으로 ‘마음공부’, 이 넉글자에 고정적인 이미지와 뿌리 깊은 오해가 얽혀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공부’라고 하는 것은 애초에 아량이 넓고, 선량한(?) 사람들, 또는 다소 몽상적이고, 신비한 것, 종교 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각자가 생각하고 있는 어떤 ‘자격’과 ‘조건’을 갖춘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
마음공부나 명상 같은 건 차분하고 성숙한 사람들이 하는 전유물이라는 생각에 쉬이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완전 천방지축에 우당탕탕인데 이런 내가 마음공부를? 명상을? 내가 무슨 마음공부야, 명상이야. 나랑은 어울리지 않아…. 마음공부를 할 수 있는 성격이라던가 조건, 환경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님에도,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의 선이 나뉘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마음공부’라는 단어에 의심과 장벽을 갖고 있었던 때도 있었다. 마음공부가 뭐야? ‘마음’을 어떻게 공부한다는 거야? 사이비들이 하는 거 아니야? 실제로 나는 ‘마음공부’라는 말로 포교를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나름 합리적인 근거를 갖추고 있었다. ‘마음을 공부한다’는 것은 사실, 있는 그대로 보면 어떠한 얼룩 없는 말이지만, 도를 아십니까 같이 어떤 의도를 가진 이해관계로 인해, 사람들에게 구전될 때 그 단어가 분명히 남용되고 오용되는 측면이 있었다.
지금이야 ‘마음공부’야말로, 모든 문제의 근원과 맞닿아 있어서 이걸 제대로 공부하고 알아내야만 내 삶을 보다 수월하게 살 수 있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참으로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온갖 오해와 고정관념을 뚫고 내 일상으로 들여오게 된 ‘마음공부’.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꼭 ‘마음공부’라는 말을 내세우고, 써 붙이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이 공부에 마음을 붙이고, 접근할 수 있었으면 했다. 이게 바로 내가 ‘마음공부’라는 단어를 애써 삼가려 했던 이유였다. ‘마음공부’에 얽힌 여러 오해와 이미지들로 인해 이 지혜를 찾아 헤매는 시간을 누군가는 조금이라도 줄였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편으로는, 이 영역을 확실히 명명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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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고, 언젠가 만들고 싶은 세상의 모습이자 하고 싶은 일은, 이 지혜에 누구나 거리낌 없이, 거부감 없이 손을 뻗어 영감을 얻고, 마음을 공부하는 일이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일상이 되는 것이다.
‘마음공부’, ‘내면’의 관점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영역이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부터 시작해서 삶, 사랑, 돈 버는 것, 심지어 사업까지도. 나는 여기에 징검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고 싶고, 그걸 위해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