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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디허니 Jan 09. 2018

안 되는 건 없다

내 무의식 속의 바리케이드 무너뜨리기

 우리 모두는 일상생활에서 '안돼'라는 말을 큰 자각 없이 쓰며 살아간다.

'안돼'라는 말은 다소 까탈스럽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채 살아가는 나 역시도, 어느샌가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입버릇처럼 쓰는 데 익숙해진 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제로 글을 쓰는 주제넘은 짓을 하는 이유는, 음악뿐 아니라 살면서 겪는 모든 일에 있어 저 무의식 속의 바리케이드를 무너뜨리는 것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은 경험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아가며 처음으로 '안돼'라는 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 계기는 군 입대 후 자대로 배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등병 때의 경험을 통해서였다. 당시 내가 생활하던 부대 막사 바로 옆에는 난방용 기름을 보관하는 유류탱크가 있었고, 그 둘레에는 철조망이 정사각형의 형태로 사람 키보다 높게 쳐져 있었다. 하루는 주말을 맞아 부대원들 몇몇이 모여 막사 근처 연병장에서 야구를 하던 중, 배트에 맞은 테니스공이 하필이면 유류탱크 철조망을 넘어 안쪽으로 떨어져 버렸다. 당시 유류탱크 출입 통제를 위해 걸어놓은 자물쇠 키는 행정보급관이 가지고 있었고, 마침 그 날은 행정보급관이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었다!


 그리고 철조망 안쪽에 떨어진 공을 회수하는 임무는 당시 부대원 중 가장 막내였던 나에게 주어졌고, 내 나름대로는 철조망 틈새에 억지로 두꺼운 손을 밀어 넣어 공을 주우려 해 보았으나, 공은 철조망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몇 분 정도 낑낑댄 다음에 임무 완수에 실패한 채, 선임병에게 돌아가 공을 꺼낼 수가 '없다'고 보고했더니 그 선임병이 나를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잠깐 지은 후, 어디선가 기다란 각목 하나를 가져와서는 철조망 틈새로 쑥 밀어 넣고 공을 살살 굴려 철조망 가까이로 움직인 다음 격자 모양의 틈새로 끄집어냈다. 그 모습을 보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나에게 그 선임병이 해준 말은 이러했다. 


 "안 되는 게 어딨어. 어떻게든 해내려고 머리를 굴리고 기를 써야지."


이등병 시절의 그 경험은 내가 군 생활에 임하는 마음가짐 자체를 보다 능동적으로 바꿀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많은 영향을 미쳤다. 




 전역 이후 대학교에 복학을 했을 때에는 정확히 이등병 시절과 정 반대의 상황을 겪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그 선임병의 역할이 되었다. 4학년 때 전공장이라는 직함의 학과 학생대표가 된 나는 매년 5월쯤 치러지는 학과의 정기 공연을 총괄하게 되었고, 나머지 학년 대표들과 함께 준비할 일들을 분담하기로 하였다. 


 당시 학과에는 가수로 활동 중이던 연예인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때 3학년 대표가 맡은 임무는 이들에게 축전 영상을 받아, 공연장 조정실의 프로젝터를 노트북과 연결하여 공연 시작과 함께 무대가 암전 되면 영상을 재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연 시작 10분 전, 3학년 대표가 연결 방법을 모르겠다고 전화를 하여 조정실에 가보니 노트북을 프로젝터에 연결하는 디스플레이 연결 케이블이 없는 게 아닌가. 그 후배가 평소 디지털 장비와 친숙하지 않은 탓이었겠지만, 순간 오싹하여 등에 식은땀이 났다. 


 "어떡하죠? 기껏 영상을 준비해놨는데 못 틀게 생겼네요..."


 라며 쭈뼛거리는 후배를 뒤로 한 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부리나케 뛰어 단과대학 행정실로 달려갔다. 당장 근처에 디스플레이 연결 케이블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단과대학 행정실밖에 없었는데, 보통 대학의 행정실은 오후 5시 30분쯤이면 업무를 마감한다. 공연 시작은 오후 7시였고, 당시 시각은 6시 50분이었다. 다행히 그날은 그 시간까지도 밀린 업무를 보는 직원들이 있었다. 정상적인 절차라면 비품 사용대장을 작성하고 비품을 수령했어야 하지만, 너무 마음이 급한 나머지 내가 직접 비품함에서 케이블을 챙기고 구두로 사정을 설명한 다음, 책임지고 내일 오전에 반납하겠다고 한 뒤 다시 조정실로 달려가 무사히 연결을 마쳤다. 


 우여곡절 끝에 공연은 준비한 대로 무사히 끝났고, 마음 한편으로는 공연 시작 직전까지도 막연하게 어쩔 줄 모르고 있던 후배에 대한 답답함도 남아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안될 수도 있었던 일을 되게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후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게 되면서도 이와 관련된 질문을 여러 번 받게 되었는데, 어린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질문하는 내용들을 요약해보면 주로 아래와 같았다.


1. 제가(제 아이가) 타고난 재능도 없는 것 같은데, 과연 음악을 잘할 수 있을까요?

2. 실용음악과 입시 경쟁률이 만만찮던데, 과연 제가(제 아이가) 그걸 이겨낼 수 있을까요?

3. 제가(제 아이를) 음악을 계속해도 될지(시켜도 될지) 모르겠어요.


 물론 위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는 다양한 상황 설정과 함께 현실적인 부분을 반영하여 충분한 설명을 하게 되지만, 이러한 질문들을 받았을 때 내가 개인적으로 하는 생각은, 저 질문들은 가능과 불가능, 지속과 중단에 대한 물음이라기보다는 그 일을 어떻게든 이뤄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합리화일 뿐이라는 것이다.


 어릴 때 아버지의 책장에서 별생각 없이 꺼내 읽었던 책 중에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었다.


해본다는 것은 없으며, 최선을 다 한다는 것도 없다.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지금 집이 불타고 있는데 당신은 뜸을 들이고 있다.
-크리슈나무르티-


 위에 언급한 질문들은 나 또한 음악을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또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본 질문이기도 하기에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나 역시도 이 말을 행동으로 온전히 실천하는 것은 아직까지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안 되는 건 없다. 되도록 노력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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