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리얼트립의 코로나 이후 1년 회고
5월 초가 되었고, 어느새 여행업계 전체가 코로나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지 1년이 넘게 흘렀다. 지금도 완전히 코로나가 종식된 건 아니고 여전히 고군분투중이지만 하반기부터는 제한적이나마 해외여행 가능성이 점쳐지는만큼,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정리해보고자 한다.
작년 1월말, 멜버른 출장을 다녀왔다. (그게 내 마지막 해외 출장이 될 줄이야..) 그때만 하더라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해 중국에 국한된 전염병이라 생각을 했었고 실제로 판데믹 선언이 된건 그로부터 좀 지나서이다. 2월만 하더라도 아직 유럽과 미국은 괜찮으니깐 상황이 크게 나쁜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다가 3월부터 상황이 정말 심각해졌다. 4월이 되니 매출이 -99%까지 급감하게 되었는데 업계의 한 대표님께서는 이러한 숫자는 전시상황에서도 나오기 힘든,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숫자라고 비유한 바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매우 중요했던 것 같다. 코로나 상황 자체는 모두에게 똑같이 일어난 상황이었으나 인식 자체는 회사들마다 모두 달랐던 것 같다.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였고 언제쯤 상황이 끝날 것인가에 대해서 예측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매우 낙관적인 예측부터 비관적인 예측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어떤 곳에선 날씨가 따뜻해지는 여름이면 코로나가 종식되고 다시 여행이 돌아올 것이라 말했고 다른 어떤 곳에선 이제 ‘여행’ 이라는 단어는 역사책이나 사전에서니 찾아볼 수 있게 될거라 말했다. 이 와중에 마리트는 어떠한 스탠스를 취할것인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에 관해 나 역시 혼란스러워했던 시기가 3월이었던거 같고, 3월 내내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던것 같다.
상황의 인식
작년 2월만 해도 나 역시 상황을 낙관적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창업자 특유의 낙관적인 성향까지 더해지니 보수적인 스탠스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더라. 그런데 3월이 되니 회사에 이상신호가 너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빠른 현금 유출이 일어났고, 파트너 분들에게 지급해야 할 미지급금을 차감하고 순현금을 보니 마리트의 runway(현금이 다 떨어질때까지 버틸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인식하자마자, 결론은 하나에 도달했다. “자금을 유치해야 하며 + 자금 유치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므로 runway 를 더욱 늘려야 한다.”
문제의 정의
얼핏보면 사방팔방이 문제였다. 떨어지는 매출, 내부 인력의 동요, 현금의 고갈, 지표의 하락 등등.. 근데 분명한건 여러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풀어야 할 문제를 시급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렬하고, 상위의 문제에 집중하는게 중요했다. 당시 정의한 문제는 지나치게 빠른 현금의 유출이었고, 이를 막는 방법은 매우 단순했다. 매출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고 비용을 줄여야 하는것. 그리고 곳간을 더 채워넣는 것이었다.
1) 매출 늘리기
해외여행 매출이 99%를 차지했었는데, 수요와 고객이 완전히 실종된 상황이었다. 고객과 시장을 새롭게 정의해야했고, 자연스럽게 국내여행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새로 진입하는 입장에서 ‘국내여행’ 이라는 시장도 지나치게 넓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전선이 넓으면 실무 입장에서 역량을 집중하기 매우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된게 제주도라는 지역이다.
[제주도의 매력]
1300만 명의 연간 내국인 방문자 : 2019년 총 출국자수가 2800만명이었는데 제주도는 전체 해외여행 출국자의 절반 정도 숫자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거대한 시장임
전세계에서 가장 바쁜 노선 : GMP-CJU 항공 노선은 전세계 노선중 가장 바쁜 단일 노선 — 공급이 충분
마리트의 기존 슈퍼앱 전략이 적용 가능함 : 최저가 항공권을 통해 여행자를 acquisition 하고, 숙박이나 T&A 로 교차판매하는 기존의 마리트 해외여행 슈퍼앱 전략이 그대로 적용 가능한 지역
코로나 이후 해외여행의 대체제로서 고려됨 : 고객들이 높은 지불의사를 갖고 있음
제주도에 집중하기로 하고, 가장 먼저 좋은 여행 상품(Selection) 들을 확보하는데 노력했다. 좋은 셀렉션을 확보하고, 후기를 쌓는데 반년 가까운 시간이 들어갔던 것 같다. 해외와 달리 제주도는 접근성이 좋았기 때문에 해외 셀렉션을 소싱할때와는 다른 전략들을 많이 가져갈 수 있었다. 직접 방문이라든지, 지사를 세우고 상주 인력을 두는 등의 방법들 등 다양한 방법을 쓸 수 있었고, 지금도 계속해 노력중이다.
2) 비용 줄이기
이런 상황에서 비용을 줄여야하는건 당연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는데 해가 되서는 안되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이미 큰 투자를 집행하고 있던 제품(웹,앱 등) 담당 구성원에 한정해서는 주5일 정상 근무를 하기로 하고 사업/마케팅 부분에서는 주3일 단축근무를 시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부분 휴업을 하게되면 정부지원금이 나오게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복지도 축소되었으며 상위 직급자들은 연봉이 일시 삭감되었다. 수요에 따라 변동비적 성격을 띄는 마케팅 및 프로모션 비는 자연스럽게 크게 축소되었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현금흐름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보다 사정이 낫다 판단되는 회사들 대상으로는 회사의 상황을 설명하고 대금 지급일등을 늦췄는데 다들 상황을 이해해주고 협조해주었다. (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
채용 활동도 일시적으로 (3개월간) 는 홀드했다. 어렵게 쌓아놓은 채용 파이프라인이 무너져서 매우 안타까웠지만 상황이 매우 엄중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채용 확정이 되었더도 코로나 상황때문에 입사를 거부하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채용 활동을 공격적으로 지속하는게 큰 의미가 없다 판단되기도 했다.
3) 새로운 자금 유치
4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투자유치 과정에 나섰다. 보통 뒷단계 투자일수록 회사의 지표를 바탕으로 투자를 받는것이 일반적인데 우린 보여줄 수 있는 지표라는 것이 사라진 상황이었다.
다행히 그간 마리트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면 신뢰가 쌓인 기존 주주들이 모집액의 50%정도를 신규로 투자하겠다고 빠른 결정을 내려주었다. 이 빠른 결정이 없었다면 펀드레이징이 엄청난 난항을 겪었을 것이다. 돌아보면, 기존에 구축한 신뢰관계가 큰 도움이 되었다. 많은 주요 주주들이 최대 5번씩 follow on 투자를 집행하며 마리트를 오랫동안 지켜봐왔었고 여행업 회복과 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 위기 한복판에서도 투자 집행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VC 관계자들과 미팅을 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작년 4–5월이 제일 코로나가 심각했기 때문에 아예 일을 쉬는 VC들도 많았다. 여행이라면 난색을 표하면서 미팅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고, 산업 자체에 관해 굉장히 회의적인 코멘트를 듣기도 했다.
그 와중에 생각치도 못하게 해외에서 마리트를 긍정적으로 봐주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백신도 없는 상황에서, 한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코로나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 수요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큰 곳이었던 것이다. 해외 VC들은 지금이 여행회사에 투자하기 좋은 적기라 판단하고 있었고, 특히나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에 주목을 하고 있었다. 기존 주주였던 알토스 벤처스가 적극적으로 해외 투자자를 소개했고 그 중 몇 곳과 연을 맺게 되었다.
해외 쪽 투자가 확정되고, 코로나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서 국내 VC 몇몇 곳과도 이야기가 진행되어다 . 최종적으로는 432억의 돈이 모이게 되었다. 사실 이것보다 조금 모으려 했는데, 이사회에서 상황 인식을 보수적으로 하길 조언했고 생각보다 더 많이 모으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잘한 결정이다.
매출을 늘렸고, 비용을 줄였고, 새로운 자금을 유치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단순한 것들인데.. 제대로 실행하긴 정말 어려운 것들이다. 여기서 내가 배웠던 것들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배운 것들
1) 빠르고, 올바른 상황 인식이 필요하다
처음 겪는 상황이다 보니 당연히 얼떨떨하다. 하지만 얼떨떨해하는 동안에도 빠르게 현금과 자원은 소진되고 있으므로, 어떤 의사결정이든 내려져야 한다. 최악의 의사결정은 틀린 의사 결정이 아니라 아무런 의사결정도 내리지 않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 실감했다. 상황을 인식하게 되면, 상황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한다. 우린 모두 어른이자 프로페셔널이고, 따라서 상황에 대해서 포장하거나 과장하기보단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게 중요했다. 특히나 마리트는 정보에 대한 접근 수준이나 구성원들의 데이터 활용능력이 매우 높은 편이라 이미 대부분의 데이터 및 지표는 구성원 개개인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따라서 애써 사실을 감추거나 상황을 포장하기보단 회사가 생각하는 상황인식에 대해 정확하게 공유하고 to do 에 대해 제시하는게 훨씬 중요했다.
2) 단순한 목표가 필요하다
아무리 140명이 넘는 팀원이 있다하더라도,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절대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 아주아주 단순하고 분명한 목표 ( ‘제주도’ ) 를 만들고 전원이 그 목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목표가 단순하지 않으면 자꾸 일을 벌리게 되고 우선순위가 엉키게 된다. 국내여행을 하는데 있어 부산도 있고, 여수도 있고 여타 다른 인기 지역들도 많지만 위기 상황에선 아주 단순하고 명료한 최우선순위가 중요하다. ‘나머진 안중요해’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3) 현재의 위기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을 선명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구성원도, 투자자들도 결국은 ‘이 위기를 버티고 나면 어떤 미래가 펼쳐지는가’ 에 관해 궁금해했고 설명받길 원했다. 단순한 목표를 설정해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나가는데 총력을 기울이되, 너무 현재에 매몰되지 않고 코로나 이후의 기회와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에 관해 끊임없이 설득해야 한다. 코로나 기간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이 부분이지 않았나 싶다. 마리트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분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회사의 성장과 자신의 성장을 일치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회사가 -99% 후퇴를 했으니 이런 부분에서 큰 좌절과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재택근무를 기본적인 근무형태로 쓰다보니 물리적 한계가 있는 상태에서 회사의 비전과 성장 잠재력에 대해 설득하기 여간 어려웠던 것이 아니다. 다행히 마리트가 국내 여행에서 성과를 내고, 백신이 나오고, 상황이 괜찮아지면서 이런 부분에선 큰 개선이 있었다.
그래서 마리트는 어떠한 미래를 그리는가?
마리트의 일일 예약건수는 코로나 전 최고점 대비 80% 수준까지 회복한 상황이다. 고무적인건 실종되었던 해외 여행 수요가 돌아와 회복한게 아니라 0에 가까웠던 국내 여행에 집중하여 이정도 수준의 회복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여기에 해외여행 수요까지 회복이 된다면, 정말 폭발적인 성장 ( 내부적으로는 보복적 성장 Revenge Growth 라고 표현 ) 이 가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마리트의 기본적인 전략은 변함이 없다. 해외여행이든, 국내여행이든 마리트 앱 하나면 여행 준비를 완벽하게 끝낼 수 있는 슈퍼앱이 되는 것이 목표이다. 이를 위해 더욱 기술적 투자를 강화하고 있고 다양한 포지션에서 훌륭한 동료들을 모시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꿈꾸고 있는 미래에 관해선 추후 계속해 소개드릴 예정이다.
돌아보면 엄청난 1년이었고, 힘든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9년차 창업가로서 가장 기대했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업계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순간이란 생각이 든다. 앞으로 마리트가 마주하게 될 기회에 흥분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경영진으로서 내려야 할 의사결정에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1년을 함께 헤쳐온 마리트의 동료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1년의 회고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우리 구성원들의 ‘공동의 목표에 대한 헌신’ 이 없었다면 이렇게 회고할 기회도 갖지 못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