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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ing Note
by Harugraphy Feb 04. 2018

종묘∙宗廟 / 겨울∙冬

JONGMYO SHRINE / WINTER



모바일 디바이스라는

새로운 레시피로

브런치를 요리하다



 


 지난 1월 30일, 화요일 저녁부터 서울에 눈이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수요일이었다. 그냥 수요일이 아닌 1월의 마지막 수요일. 매달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가 있는 날'로서 전국의 주요 문화시설을 할인된 가격 또는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서울의 4대 궁과 조선왕릉, 그리고 종묘도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그런데 문화가 있는 날이 좋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종묘의 경우 토요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유관람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종묘에 눈이 쌓였을 때 자유관람을 할 수 있는 이런 기회는 정말 흔치 않다.  


 작년 1월 20일, 눈 내린 종묘를 처음 보았다. 아름다운 순백의 풍경이 주는 감동은 대단했고 그 순간을 기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브런치에 종묘의 설경을 주제로 포스팅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로부터 1년 하고도 10일이 더 지났다. 1년 만에 다시 한번 하얀 옷을 입은 종묘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번엔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그러나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지난 11월 잘못 넘어지는 바람에 새끼발가락 뼈가 부러졌고 최근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다. 아직도 뼈가 다 붙지 않아 발에 깁스를 하고 있는 상태여서 작년 1월처럼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 종묘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기란 불가능한 상황. 결국 한참을 고민하다 욕심을 버리고 우선 몸을 챙기기로 했다. DSLR은 잠시 내려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아침 일찍 종묘를 산책하기로 결심한 순간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 '기왕 이렇게 된 거 전부 아이폰으로 해볼까?'


 그리하여 이번 작업은 단 한 가지 과정을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작업이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이루어졌다. 지난달 새로 산 아이폰 8+ 로 사진을 찍고, 커피숍에 앉아 미팅을 기다리는 동안 틈틈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후보정 작업을 하고 글도 브런치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작성했다.


기존의 내가 작업하던 레시피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요리된 브런치는 과연 어떤 맛일까.


요리를 하는 나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폰 카메라

항상 휴대하며 일상을 기록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작년 12월 일본에서 메이지신궁을 아이폰 6S+ 로 담았을 때도 생각보다 괜찮은 퀄리티에 만족했는데 아이폰 8+ 는 확실히 기존 모델보다 카메라가 많이 업그레이드된 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조리개 값 F1.8로 기존보다 밝은 렌즈가 탑재되고 광학 이미지 흔들림 보정(OIS)이 들어가서 그런지, 해가 아직 높게 뜨지 않아 광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예전보다 훨씬 덜 흔들렸고 노이즈도 많이 개선되었다. 만약 삼각대를 사용해서 좀 더 수동으로 컨트롤해가면서 찍는다면 더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뽑아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다가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 마음에 드는 풍경을 담는다는 것은 기존에 내가 DSLR로 하던 작업과 많이 달랐다. 거창한 작품 사진을 찍겠다기보다는 오늘 마주친 순간을 추억으로 기록한다는 의미가 더 강했다.  










 후보정을 위해 JPG가 아닌 RAW 포맷으로 촬영 가능한 Adobe Lightroom CC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했다.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도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클라우드 스토리지를 통해 동기화가 가능해 폰으로 촬영 즉시 아이패드에서 결과물을 확인하고 맥북의 라이트룸 클래식 버전과 비슷한 수준의 세밀하게 따져보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후보정이 가능하다. 간단하게라도 렌즈의 광학적 특성에 대한 보정과 디헤이즈 기능까지 구현해놓은걸 보고 어도비도 스마트폰 카메라 시장을 나름 많이 신경 쓰고 있구나 싶었다.  









정전 신문 주변의 풍경



 이번 글을 쓰면서 유일하게 iOS 플랫폼이 아닌 곳에서 진행된 작업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후보정을 마친 파일들을 JPG로 내보내는 작업이다. 아쉽게도 iOS 라이트룸 애플리케이션에서는 최종 결과물을 내보낼 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거의 없다. 2048픽셀과 최대가능사이즈라는 두 가지 옵션만을 제공을 하는데 최대 사이즈로 전환한 파일조차도 PC에서 최대 해상도로 내보낸 파일과 용량 차이가 꽤 많이 난다. 자세히 비교해보진 않았지만 아마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보는 걸 전제로 했기 때문에 dpi의 차이가 있거나, 아예 파일을 변환하는 프로세스의 로직 자체가 좀 다른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내보내기 작업만큼은 2010년에 구입해 8년 동안 잘 작동해주고 있는 15인치 맥북 프로에서 진행했다.





종묘 정전의 존재

삭막했던 서울이

진심으로 좋아지는 이유




 카메라가 아닌 종묘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보자. 작년 1월처럼 눈이 많이 내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종묘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관람이 시작되는 9시에 맞춰서 갔는데 8명 정도 되는 사람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DSLR 카메라를 들고 오신 분도 두 분 정도 보였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부터 시간 맞춰 종묘에 찾아오신 걸 보면 다들 눈 내린 종묘의 아름다움을 이미 알고 계신 분들이었을 것이다. 작년에 읽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서울편'에서 소개된 외국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건물이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자기만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경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거의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지만 서울이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다른 나라의 수도나 유명한 도시들에 비하면 전체 경관이 잘 정비되어 있지도 않은 것 같고 특히 오래된 것이 존중받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공간이란 느낌이 강해서 오히려 안타깝고 부끄러웠던 적이 많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사진을 찍기 위해 종묘와 창덕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진심으로 서울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이전까지는 내가 서울의 진짜 모습을 너무 몰라서 그랬던 걸 수도 있겠지만 종묘와 4대 궁을 생각하면 정말 서울을 떠나기 싫다는 생각이 든다. 게리의 말처럼 서울에 종묘와 같은 훌륭한 세계적 고건축물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부심이 생긴다. 항상 곁에 두고 오래 보고 싶은 그런 존재. 나에게 종묘는 그런 의미다.



정면에서 바라본 정전. 아침 이른 시간이라 발자국이 많지 않아서 좋았다



눈이 쌓인 월대 주변의 풍경. 월대 아래와 위는 다른 차원의 공간을 의미한다



남서쪽에서 바라본 정전


영녕전 앞에 있는 향나무 두그루



향나무와 함께 바라본 영녕전의 신문



영녕전 신문으로 가는 길. 여름에 잎이 무성하면 하늘이 안보인다



 평소에 사진을 찍지 않는 날에는 정전까지만 보고 돌아나가는 경우도 많은데 이날은 영녕전까지 구석구석 둘러봤다. 정전보다 관람객이 없어서 고즈넉한 멋을 조용히 즐길 수 있었다. 월대 위의 눈을 정말 꼭 필요한 부분만 쓸어놓은 걸 보면서 종묘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높은 문화적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작년 겨울 명재고택에 들렀을 때도 마당에 쌓인 눈을 전부 다 쓸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그때와 비슷한 감정이 일었다. 이런 작지만 깊은 배려가 문화재의 품격을 높이고 결국 관광 산업 부흥이란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월대 위의 눈을 다 쓸지 않아서 정말 좋았다. 감사했다



슈가파우더처럼 예쁘게 내린 눈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계속 만들어보고 싶은

새로운 레시피




 새로운 레시피라고 했지만 어찌 보면 나만 혼자 새로운 부끄러운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용한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이 도구들로 정말 진지하게 사진 작업을 해본 적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정말 많이 발전한 건 사실이지만 DSLR과 스마트폰 카메라가 차이가 없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단순히 화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센서의 크기에서 비롯한 사진의 디테일과 렌즈가 만들어내는 심도 같은 물리적 차이는 명확히 존재한다. 1:1 사이즈로 확대해서 사진을 비교해보면 많은 차이가 있고 이를 소프트웨어적인 보정으로 극복하는 것은 아직까진 한계가 있다.


 필요한 순간 손에 있는 카메라가 제일 좋은 카메라라는 말이 있다. 발을 다쳐 DSLR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폰 카메라는 적절한 대안이 되어주었고 결과물도 DSLR과 다르긴 하지만 작업의 과정이나 의미를 생각했을 때 전혀 잘못된 부분이 없다.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사진을 즐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DSLR보다 더 뛰어난 부분도 있다. 그리고 온라인 SNS 업로드와 같은 외부 확장성과 4K 동영상 촬영 등 다른 기능들을 생각한다면 둘은 아예 다른 목적의 도구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TPO에 맞는 카메라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결과적으로 아이폰을 중심으로 한 이번 작업은 지금 내 상황에 잘 맞았고 앞으로도 이러한 작업을 계속 시도해보려 한다. 적어도 발이 다 나을 때 까지는. 그리고 아마 그 이후에도 계속. 


 카메라는 달라졌지만 결과물을 보면 나도 모르게 결국 기존에 DSLR로 연습하고 작업했던 구도를 스마트폰으로 재구성하는 사진이 많았다. 결국 또다시 무엇으로 찍느냐 보다는 무엇을 그리고 왜 찍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을 마주하게 된다. 며칠 전 중국 애플 공식 사이트에서 ‘3분간’ 이란 단편영화가 공개되었다. '첨밀밀'의 진가신 감독이 애플과 협업하여 중국의 춘절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아이폰 X으로만 촬영한 영화라고 하는데 구성이나 화면의 퀄리티가 정말 대단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 나도 뭔가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무한한 가능성이란 아마 그렇게 시작되는 게 아닐까.



덧 : 글을 다 쓰고 생각해보니 한 가지 작업을 더 맥북에서 진행한 걸 깨달았다. 맞춤법 검사다. 아직 모바일 브런치 애플리케이션에서는 맞춤법 검사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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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궁,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문화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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