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역시 사람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그간 브런치에 글을 뜸하게 썼던 것도, 여행을 가지 못했던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나는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한국 대기업에 취업했다.
'경력직'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나는 낯선 기업문화와 상사의 태도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지난 10년간의 사회생활로 다져진 포커페이스를 쓰고도 퇴근 후에는 다친 마음이 너무 쓰라려서 브런치에는 감히 올리지도 못할 '죽일놈의 상사'병에 대한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사기업에서는 처음 일해 본다. 대기업의 스마트하게 일하는 방식과 거대 자본을 대동한 넉넉한 사업비로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프로젝트 운영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한 기업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후 미국으로 파견 나온 팀장은 단 두 명인 팀원 중 신입인 막내를 쥐잡듯 잡았고, 살을 빼야 한다는 외모에 대한 평가를 서슴지 않고 했다. 그는 본사의 분위기가 얼마나 안 좋은지, 실적이 어떤지 계속 주지시키며 언제 짤릴지 모르는 파리목숨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게 했다. 비행기 값 80불을 아끼기 위해 새벽 3시에 나서서 비행기를 타야했고, 미팅이 되기 전까지 5시간을 밖에서 기다리는가 하면 계획하지 않은 우버 등의 지출로 아낀 80불 이상을 까먹는 그의 행동를 보고도 나를 언제 짜를지 모르니 입닫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단 3명뿐인 조촐한 팀 규모 탓에 늘 함께 점심 식사를 해야 했고, 먹고 싶지도 않은 음식을 시혜처럼 베푸는 그를 따라 내 소중한 1시간 30분을 보낸다는 게 너무 싫었다. 그 짓을 반복하다 보니 나는 살과 당뇨를 얻었다.
놀라운 건, 그를 통해 정말 많이 배웠다는 거다.
'일 잘하는 사람'은 프로토콜대로, 시스템대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술수를 써서 일을 되게 하는 사람이었다. 알라딘이 시장에서 도둑질을 하듯, 하면 안 되는 것과 되는 것 사이에서 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그의 일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정글에서 사슴을 사냥하며 호랑이에게 쫓기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정도만 걷던 내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기업에서는 이렇게도 하는구나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공대 출신인 그는 그 어느 감정적 공감을 하지 않고 못한 채, 사람을 다그쳐 성과를 내게끔 하는 매니징 스타일을 자신의 상사에게 배워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기분은 언제나 들쑥날쑥해서 집에서 있었던 안 좋은 일을 회사에 가져오는 전형적인 꼰대지만 회사에 대한 충성심 하나는 선죽교에서 철퇴를 맞은 정몽주 못지않았다. 애국심에 달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아끼는 이런 사람들로만 회사가 채워진다면 회사는 못 해낼 게 없으리라. 회사 돈은 내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 같이 여기고, 단 한 번도 개인적 용도로 회사 돈을 쓰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청렴함을 느꼈고, 감탄을 넘어선 존경심까지 느꼈다. 한 회사에 23년간 있을 수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후배를 육성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도 빼놓을 수 없다. 쪼면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알아서인지 높은 기대치가 있기 때문인지 팀의 막내는 혼이나 울면서도 또 그만큼 나은 결과물을 보여 왔고, 그걸 학습한 그는 필요할 때마다 팀원을 갈궜다. 나에게도 계속해서 주재원이 나오면 내가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는 여기 까지 임을 미리 주지시켜주면서 살길을 모색해 주는가 하면 모자란 부분을 거침없이 지적해 자존감을 깎아내림과 동시에 성장 할 수 있는 자극을 줬다. 우리가 더 나은 일꾼으로 성장하게끔 하고자 하는 그의 진심은 정말 잘 알겠으나 채찍만으로는 앞으로 갈 마음이 없는 나에게 정말 안 맞는 리더십이다.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했다. 이렇게 행동하면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말하면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한다는 걸 모두 분석한 뒤 메일을 썼다. 그 분석력을 후해 마음을 읽는 데도 쓰셨으면 좋으련만. 그의 모든 집중은 위를 향해 있었다.
그래, 맞다! 그냥 나는 그랑 너무 안 맞다. 직장인으로서 예의를 지키고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 속에서 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날것의 스스로를 드러내며 어떻게든 아둥바둥 자신의 몫을 채워 나가는 그의 업무 스타일은 너무 안 맞다. 한숨을 푹푹 쉬며 사무실 분위기를 무겁게 하는 그의 모습.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신의 맘대로 이랬다저랬다 하는 성격에 부하 직원으로서 맞춰 주는 게 너무 괴롭다. 이쯤 되면 내가 회사를 위해 일하는지, 그를 위해 일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모두가 하나의 목표로 나아가기 위해 조직 내 협력을 우선시했던 이전 직장과는 달리 팀 내에서도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경쟁하는 인간관계를 보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한국 본사에 출장을 갔을 땐, 앞에선 하하 호호 웃다가 코너만 돌면 서로를 향해 욕을 던지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한국, 그것도 서울에서는 대기업 직장생활이 이렇구나.' 생각했다. 그런 문화 속에서 살아남은 그는 본사에 끊임없이 잘 보여야 했을 거다. 계속해서 일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보고했고, 그렇기에 나 역시도 그에게 끊임없이 잘 보이기 위해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한채 시키는 것만 하고 그의 의중을 계속해서 물어봐야만 했다.
셋밖에 없는 작은 조직에서 아무리 좋은 진심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렇지 못한 태도를 가진 팀장을 계속 마주하다 보니 견디는 것도 임계치에 다다랐다.
그러던 어제, 팀장의 메시지가 공동 메신저에 날아왔을 때, 이전의 온갖 설움과 짜증을 열어젖히는 버튼이 딸깍 소리를 내었고, 나는 그간 써 왔던 예의바른 직장인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나의 진심을 담아 그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파트너 앞에서 나를 무시하는 언사는 내 협상력을 낮게 만든다는 점. 자신이 잘못 알아들어 나랑은 '일 같이 못한다'라고 했던 발언이라든가, 고용한 업체에서 잘못한 지점에 대해 '옷 벗어야 한다'라고 표현했던 것들이 협박처럼 느껴졌노라고. 미국처럼 언제든지 짤릴 수 있는 고용 환경 속에 그의 그런 발언은 그가 말한 '일을 더 잘해 보자'라는 의도로 들리지 않는다.
참아 왔던 메시지를 던진 이유는 참을 수 있는 역치를 넘어선 스트레스가 원인이기도 했지만 그의 이런 언변에서 나오는 말에서 그간 얼마나 상처를 받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업무 상황에 놓였는지,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하고 그가 앞으로 주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좀 더 나은 업무 환경을 만들어 보자고, 나도 껄끄럽고 어려운 말이지만 하는 이유는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는 그저 엄청나게 빡치기만 했나 보다. 메시지를 보내고 4시간 뒤, 전화를 해 온 그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 이걸 이야기하지 않고 메신저로 보낸 이유가 뭐냐는 것부터 따졌다. 문서화해서 이후 HR에 찌를까 봐 그랬나 보다. 나는 그간 일 못한다는 말, 짤릴지도 모른다는 압박, 이랬다저랬다 성질 부리는 그의 모습에서 받은 스트레스에서 설움이 밀려와 엉엉 울며 말했다. '팀장님이 어려워서 도저히 말로는 못 하겠으니까 메신저로 보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울 것도 없는데 엄청 서러웠다. 내가 나일 수 없는 업무 공간에서 입 밖으로 내는 한마디 한마디에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생각하고 계산해야 했던, 그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쳐놓았던 심리적 지배의 그물 아래 갖혀 있었던 내가 드디어 각성한 것이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극 T였다. '이 메시지를 보낸 이유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으며, 어떤 개선점을 바라는지도 쓰지 않았다고.' 할 말이 없었다. 그의 말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으니까.
'수요일에 얘기하시죠.'
다음 주 수요일, 그와 또 다른 팀원과 함께 면담을 하기로 했다.
분명 좋게 할 수 있는 분위기와 일을 기분 상해 가며 하는 조직 문화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아무리 '옛날 사람들은 그래 왔네.', '예전에는 회사에서 욕도 하고 물건도 던졌네.' 해도 이곳은 미국이고 현재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후배 양성을 할 때에도 이유를 설명하고 플랜을 짜면 될 일이다. 짜증이 섞인 말로 감정을 건드릴 필요는 없다.
딸이 대기업에 다닌다고 자랑하는 부모님이 그려졌다. '엄마, 아빠, 이건 좋소보다 못 한 기업이야.' 이전에 한국에서 다니던 직장이 얼마나 좋았는지 알고 있던 엄빠는 내가 사직서를 냈을 때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 말이다. 미국 기업의 안좋은 점인 적은 휴일, 추가 수당 없음, 한국 기업의 안좋은 점인 꼰대 상사와, 타이트한 근태 관리를 적절하게 아우른 나의 직장이 오늘의 내 직장이니 옛직장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해 본들 무슨 소용이랴.
무려 한 시간 40분이 걸리는 퇴근길에 엄마, 아빠와 통화하는 나는 늘 열에 받쳐 팀장 욕을 해댔다. 그럼 엄마와 아빠는 늘 다른 반응을 보냈다. 엄마는 나와 함께 화내 주었고, 아빠는 자신에게 팀장 욕을 하지 말라고 했다.
팀장에게 돌이킬 수 없는 메시지를 보내고 엉엉 울고 있는 날에도 아빠는 어김없이 전화를 했다. 아빠는 사람을 많이 거느려 본 사람으로서, 자신의 마음에 들게 일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옛날 사람들은 안 바뀌어. 그렇게 계속 해 왔는데, 어쩔 수 없어. 특히 서울에서 대기업을 20년 넘게 다닌 사람이면 어떻겠노? 그 안에서 엄청 치열하게 했을 거야. 아빠도 그랬어. 그냥 앞만 보고 달린다고. 그래서 자기의 태도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어.'
변화하는 세상에도 늘 제자리에 머무는 사람을 위한 변론이었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 또한 내 몫인 걸까?
'그 사람은 내가 계속 배려해 줬기 때문에 내가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지, 얼마나 힘든지도 모르잖아. 너무 불공평해'
그 생각에 다다르자 나는 알게 되었다. 나도 내 감정을 내뱉고 그처럼 행동해야겠다고. 그 더러운 감정을 받아들이고 소화시키는 것도 그의 몫이니 말이다. 어쩌면 모두가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았을 테니, 아무렇지도 않겠지. 그를 개조하는 것보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꿈꾸고 희망하던 선진 조직문화는 이제 떠나갔다. 표효하는 호랑이인 척하는 자칼에 대항해서 유유자적하고 배려하던 코끼리가 아니라 치고받는 코뿔소가 되기로. 일을 하기 위해 모인 회사라는 조직에서 상사 눈치만 보다가 소중한 커리어를 망가뜨릴 순 없다고. 물론 그 모든 것이 참을 수 없는 불합리함을 넘었을 때는 조직을 폭파시키거나 절이 싫은 중이 떠나야겠지만 아직까지 개선까진 기대하지 않더라도 차선의 방법은 있으니 말이다.
다가올 수요일을 위해 한국 기업의 외노자는 다시금 마인드 컨트롤을 해 본다.
이번엔 울지말고 똑부러지게 그간의 고충과 앞으로 그가 해줬으면 하는 엑션플랜(회사에 사적 감정 드러내지 않기, 이랬다저랬다 하지 말고 업무지시 정확하게 내리기, 구성원 신뢰하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봐야지. 그래도 대기업에 20년 넘게 다니신 분이니 어느 정도는 개선될 거란 옅은 희망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