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 조셉 Feb 28. 2023

정리 해고 그 이후

방황하는 나에게 

2월 14일 해고 통지서를 수령했다.

밸런타인데이에 이런 편지를 받다니.

인생은 참.


4장으로 적힌 간단한 내용의 해고 통지서.


왜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간단한 이유와 영업 이익 실적 내역. 

회사가 그 회사를 위해 일했던 직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여러 문장에서 틀린 맞춤법에서도 해고 지표가 될 수 있는 영업 이익 상세내역에서 2021년 실적은 버젓이 빠져있다. 사실 사람을 고용해서 회사에 적응시키는 일 (on-boarding) 보다 중요한 것은 퇴직이나 해고 절차 (off-boarding)을 무난하게 진행하는 일인데 해고 편지는 너무 성의가 없다.

마지막 사인란에 대표란 놈은 사인만 하면 될 일이지만 아무리 프랑스로 적혀 있는 해고 편지라고 하더라도 보내기 전 리뷰정도는 해야 예의 아닐까. 영업 실적란에 그저 숫자만 개발새발 나열해서 해고를 단행할 수 있다면 어느 회사라도 실적의 이유로 사람을 내치는 일은 아주 쉬워질 거다. 


회사에서 나라는 사람을 생각하는 정도는 이를 통해 잘 알았고 이번 해고가 되려 잘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고를 진행할 것라는 최초의 상무와 면담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작 3개월 남짓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은 힘든 과정이었다. 

실망 - 절망 - 분노 - 슬픔 - 포기 다시 실망....

정말 해고가 진행이 되긴 하는 건지, 같이 일한 다른 직원이 잘리는 건지 나만 잘리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함께 잘리는지, 그럼 왜 잘리는 건지, 남은 직원들에게 이 쪽팔림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등. 

매일 하루하루의 다짐이 달랐다.

이런 해고 통지에 내가 가만있을 수는 없다 하고 회사를 향해 고소를 하겠다며 열을 올리다가도 다음 날은 이제 앞으로 어떤 일을 구하면 되나에 대한 찐한 고민의 날이 있고, 어떤 날은 왜 내 인생은 이렇게 버라이어티 한가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앞으로 좀 놀지 뭐 하고 대범하게 생각하는 날도 있고. 

평소에 그냥 쉬이 지나가는 감정의 고리가 지난 3개월 간은 널뛰기 뛰듯 업 다운이 심했다. 


어쩌면 누구나 겪는 당연한 감정인지도 모른다. 




링크드인에서 평소에 자주 눈여겨보고 있던 투자가 한 분을 만났다. 

회사에서 어떤 스타트업 기업을 인수하는 일 때문에 미팅에서 한차례 뵌 적이 있었다. 그분은 그 기업에 이미 투자를 하셨던 한국 분이었고 우리는 그 회사를 인수를 할 목적으로 회사의 가치(Value)를 따져 볼 때라 그 분과 미팅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한 번 밖에 얼굴을 뵙지 않았는데 내 기억 속에 참으로 인상이 맑다 생각했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링크드인에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으니 시간을 내어주십사 감히 부탁을 드렸다. 

그분은 흔쾌히 시간을 내어 주셨고 우리는 한국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독일에서 살던 일부터 최근 회사에서 해고를 받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얘기를 여과 없이 하고 나서, 나는 그분에게 물어봤다.


저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나의 뜬금없는 물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답변을 대신해 그분이 방황하던 시절 이야기를 해주셨다. 프랑스 대기업에서 이사직으로 오랫동안 일을 하다가 문득 회사에서 본인의 마지막이 영원히 이렇게 찬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회사를 박차고 나와 3년 실업 고용비를 받는 기간 동안 홀가분하게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했다. 방황도 했고 고민도 했고 그것은 누구나 겪는 과정이며 그 고민의 나이가 서른 일 수도 마흔 일 수도 때로는 늦게 찾아올 수도 있다고도 했다.


나의 길을 잃은 저 질문은 사실 어떤 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내 삶의 주체가 아닌 제삼자인 사람이 섣불리 어떻게 사는 게 답이다라고 결론 내려줄 수는 없을 거라 알고 있었다. 인생을 더 살아본 누군가가 본인의 살아온 얘기를 진솔하게 얘기하는 것은 비록 물음에 대한 답은 아니었을지라도 가슴 뭉클한 감동이 있었다. 

절벽 벼랑 끝에 서 본 사람 만이 알고 있는 어떤 동질감이랄까. 


하지만 방황하는 동안 세 가지만 잘 알고 있으면 된다고 덧붙였다. 

첫째는 생각보다 시간은 금방 가더라는 것이다.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분기가 되고 반년이 되고 1년은 금방 지나간다고 했다. 쉬더라도 계획적으로 쉬어야 한다고 했다. 아무것도 해둔 게 없는데 어느 날 계절이 여러 번 바뀐 것을 본인이 경험해 보았다고. 

둘째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물어보고 발품을 팔아야 아마 저 황당한 대답에 본인이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사람들은 사람을 통해서 답을 얻기도 하고 제삼자가 마치 자기의 일처럼 조언을 주거나 도와주는 일이 사실 허다하다고. 어려워 말고 철면피의 정신으로 진솔하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다 보면 어느 날 답이 "띵"하고 나타난다고 했다. 

셋째는 생각의 가지를 치는 일.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일에 대한 가지 치기를 잘해보라는 것이다. 사업을 할까, 다시 취직을 할까 등 구상하고 있는 일에 대한 현실 유무를 잘 따져보고 생각의 가지를 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이를 드는 것은 삶의 지혜가 늘고 현명해지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이는 살아가면서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버리고 가능한 선택지를 잘 잡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7전 8기로 어려운 것을 도전해 보는 것도 인생에서 한 경험이겠지만 나이가 들면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알고 있는 지식 선에서 안전하게 선택할 수도 있다고. 


내가 단지 그분의 맑은 인상 하나로 처음 보는 그날 저녁에 내 인생의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놓은 것은 아이러니이긴 하다. 근데 나는 그분이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머나먼 외국,  파리 시내 한가운데에서 마음 맞는 한국 사람 두 명이 만나는 일도 사실은 확률이 많은 얘기는 아니니까. 그날 저녁 세 가지의 조언을 가슴속에 새기며 집에 돌아와서 발 뻗고 아주 진하게 잠을 잤다. 


이제는 회사에 대한 분노, 좌절감은 사라졌지만 

내게 앞으로 나아가는 길 만이 남아있다. 

방황하는 나에게, 

"지금도 괜찮다." 그냥 말해주고 싶었다. 

 



작가의 이전글 회사의 해고 통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