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산을 오르며
하얗게 웅크린 산등성이를 본다
날아갈 듯한 언 몸을 가누며
눈보라 치는 세계를 바라본다
눈발 날리는 귀갓길에서
아이들 먹을 것을 구해 돌아오는
엄마와 아빠의 웅크린 어깨 위에
얼마나 많은 노고와 피로와
그보다 더 싸늘한 수모가 쌓여있는가
문 앞에서 눈을 털어내고
등을 곧게 세운 뒤 문을 연다
달려와 반기는 아이를 안는다
나는 오늘도 등을 굽혀 살아냈지만
너는 내 굽은 산등성이를 딛고 올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리라고
그 등으로 막아낸 화살과 바람만큼
뜨거운 무언가로 아이를 끌어안는다
해는 저물고 눈보라는 거센데
다시 묵직한 생존의 배낭을 지고 오르는
암벽 길에서 한 가닥 밧줄을 탄다
까마귀떼는 머리 위를 떠돌고
나는 벼랑 끝에 매달린 깃발처럼
의지할 무엇 하나 없는 이 겨울날
그러나 보라
누가 저 침묵의 산등성을 무력하다 하는가
누가 저 웅크린 사람들을 패배자라 하는가
하얗게 언 산과 산들이 웅크린 등을 맞대고
세계의 눈보라를 기꺼이 맞아가며
연둣빛 싹들을 품어 기르고 있는 것을
밀려나고 쓰러지고 언 살 터져도
내 웅크린 등으로 품어 길러야 할
어린 희망 하나 숨 쉬고 있어
이 치열한 겨울 사랑이 있어
그래도 봄은 끝내 돌아올 테니
용기를 내라, 노래를 불러라, 손을 맞잡아라
태양만 떠오르면 우리는 살아갈 테니
박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