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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주 Jul 26. 2024

[시] 태양만 떠오르면 우리는 살아갈 테니


눈 내리는 산을 오르며

하얗게 웅크린 산등성이를 본다

날아갈 듯한 언 몸을 가누며

눈보라 치는 세계를 바라본다


눈발 날리는 귀갓길에서

아이들 먹을 것을 구해 돌아오는

엄마와 아빠의 웅크린 어깨 위에

얼마나 많은 노고와 피로와

그보다 더 싸늘한 수모가 쌓여있는가


문 앞에서 눈을 털어내고

등을 곧게 세운 뒤 문을 연다

달려와 반기는 아이를 안는다


나는 오늘도 등을 굽혀 살아냈지만

너는 내 굽은 산등성이를 딛고 올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리라고

그 등으로 막아낸 화살과 바람만큼

뜨거운 무언가로 아이를 끌어안는다


해는 저물고 눈보라는 거센데

다시 묵직한 생존의 배낭을 지고 오르는

암벽 길에서 한 가닥 밧줄을 탄다

까마귀떼는 머리 위를 떠돌고

나는 벼랑 끝에 매달린 깃발처럼

의지할 무엇 하나 없는 이 겨울날


그러나 보라

누가 저 침묵의 산등성을 무력하다 하는가

누가 저 웅크린 사람들을 패배자라 하는가

하얗게 언 산과 산들이 웅크린 등을 맞대고

세계의 눈보라를 기꺼이 맞아가며

연둣빛 싹들을 품어 기르고 있는 것을


밀려나고 쓰러지고 언 살 터져도

내 웅크린 등으로 품어 길러야 할

어린 희망 하나 숨 쉬고 있어

이 치열한 겨울 사랑이 있어

그래도 봄은 끝내 돌아올 테니


용기를 내라, 노래를 불러라, 손을 맞잡아라

태양만 떠오르면 우리는 살아갈 테니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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