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는 어른

<어떤 어른>을 읽고

by 리하

“기대하지 마세요. 기대하면 실망하잖아요.”

한 어린이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한다. 국어 시간, ‘어떤 재미있는 글을 보여줄지 기대된다’는 말을 막 마친 순간이었다. 지난번 수업 시간에 스치듯 언급했던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도 크다’라는 말을 기억해 두었다가 이럴 때 꺼낼지 몰랐다. 순간 『어떤 어른』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린이는 ‘배운 대로’한다는 사실. 작은 말 한마디까지 기억해 바로 따라 하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좀 더 모범을 보였어야 하나 후회한다.


어린이와 함께 살아가는, 인생을 조금 더 산 사람으로서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이왕이면 어린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말이다. 『어떤 어른』에서는 어린이에게 영향을 끼치는 방법을 간단하게 설명한다. ‘평소에 멋있는 어른인 척하는 것’. 이 문장에 크게 공감했다. ‘기대하는 척’을 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진심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으니까.


글쓰기 시간마다, 어린이들은 항상 나를 기대하게 만든다. 글쓰기를 배우는 단원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인 선생님이 된다. 띄어쓰기와 자주 틀리는 맞춤법을 안내하고, 문장과 문단을 구분하는 법을 알려 준다. 처음-가운데-끝이라는 글의 구조를 소개하고, 감각적 표현을 넣어 글을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도 설명한다. 어린이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손에 쥔 연필을 꼬박 40분 동안 움직여 글을 완성해 낸다.

10분 전에 설명한 맞춤법은 또 틀려 있고, 띄어쓰기는 뒤죽박죽이다.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는 말은 까맣게 잊어버렸는지 제목 칸은 텅 비어 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쓴 글은 항상 내 기대를 뛰어넘는다. 어른에게는 너무 흔해서 놓쳐버리고 마는 많은 순간들이, 아이들이 쓴 글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매일 먹는 밥 속 쌀알, 등교할 때 오르내리는 계단, 우리 반이 함께 키우고 있는 텃밭의 고추가 아이들에게는 새롭고 신기한가 보다. 아이들의 참신함이 반짝이는 글들을 들여다보면, 맞춤법도 형식도 띄어쓰기도 다 잊어버리게 된다. 글쓰기를 가르치던 내가, 오히려 어린이의 글을 보면서 배운다. 역시, 어린이들은 내 기대를 뛰어넘는다. 그러면 나는 또 기대할 수밖에 없다.


『어떤 어른』 속 ‘세상 아름다운 것’에는 어린이들이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 담겨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이 옆에서 어린이가 하는 걸 같이 하면 이상하게도 어린이와 비슷해진다. 아름다움의 목록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어린이와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는 행운을 거머쥔 덕에, 나는 이 문장을 몸소 체험한다.


어린이가 쓰는 시와, 직접 그린 그림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름다운 것들이 가득하다. 유행하는 캐릭터 인형, 체육 시간에 한 피구, 급식으로 나온 오렌지 주스가 차례대로 나의 아름다움 목록에도 추가된다. 게다가 어린이들은 답변만 하지 않고 꼭 내게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을 묻는다. 나는 나의 아름다운 것들을 차례로 나열한다. 모네의 그림, 아침에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쇼팽의 발라드까지. 어린이의 아름다움 목록도 나를 따라 조금씩 늘어난다. 그렇게 우리는 아름다움의 세계를 넓혀 간다.


종종 가르치는 것이란 무엇인가 고민해 본다. 어린이는 선생님이 글을 잘 쓸 거라고 믿고, 잘 가르쳐 줄 거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이 항상 내 예상을 뛰어넘는 멋지고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이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 시간에는 더 나은 글을 쓸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대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서로에게서 배우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간다.


이 책에서는 선생님을 어린이가 ‘가까이에서 보는 의미 있는 어른’이라고 표현한다. 모든 어른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된다. 어린이들은 다양한 어른들을 만나며 삶의 여러 모습을 간접 경험한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배운다. 성장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어른들을 통해 삶에 정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으면 한다. 그리고 의미 있는 어른들로부터, 그들이 어린이를 믿고 지지한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물론 기대는 실망을 수반한다. 나도 가끔은 어린이를 향한 믿음이 흔들리거나, 실망감에 좌절하는 날들을 만난다. 하지만, 우리는 어린 시절 수많은 어른의 기대 속에서 성장했다.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고, 실망하더라도 다시 나를 믿어 준 어른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나를 키운 그 어른들처럼, 어린이의 가능성을 믿어 주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더라도, 다시 한번 어린이를 믿어 주고 기대를 품는 사람. 어린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존중하는 사람. 그리고 어린이로부터 배우고, 더 나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런 어른이 되자고 다짐하며, 선생님이 실망할까 걱정하는 어린이에게 답한다.


“실망할 수도 있지. 괜찮아. 그래도 선생님은 기대할 거야. 넌 계속 성장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