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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란지 Aug 29. 2020

엄마된지 1년

기념하며 기록 

2020년 8월, 엄마가 된지 1년이 되었다.

엄마가 된 내가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엄마 된지 1년"을 기념하고 초상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엄마가 되어본 1년을 지낸 나를 축하하고 격려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나에게 주는 선물로.

샵에서 화장도 받았다! (이것 또한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1년동안 쌩얼로만 지내서 자신이 정말 없었는데 서울이 가진 프로페셔널 한 인력과 현대사회의 기술력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하하하 


시스루로 된 팔이 너덜너덜하게 닳아 해졌지만 입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제일 좋아하는 원피스를 가져갔다. 


특별한 날이다. 밖에 나온것도, 화장을 한것도, 이런 포멀한 옷을 입는것도, 아기가 아닌 나를 찍는것도, 외부인(?)과 대화하는 것도.. 낯선 장소에 찾아 온 것도 모두 특별했다. 물개박수치면서 뛰어갔다. 

시현작가님을 실제로 만났는데 너무 좋아서 떨렸다. 


시현하다에서는 나를 표현할 색깔을 초상사진에 넣어서 자신과 함께 색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  48색 색연필을 보면서...ㅎ 지금 내 "마음" 을 표현해주는 색을 찾아봤다. 


내가 고른 색깔들이 모두 아스라했다. 희미한 옅은 하늘색, 아스라한 보라색, 연한 베이비핑크였다. 모두 새벽빛의 색들이었다. 신기했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색깔은 언제나 비비드 한 색이었다. 나는 확실하고 분명하고 단호하게 자기를 표현하는 청명한 색깔들을 언제나 선호했다. 쨍한 파란색, 강렬한 빨간색, 눈부신 노란색같은 색들만이 좋았다. 그런 색깔들을 좋아할때의 나도 그런 느낌이었던것같다.  어디서든 열정적으로 존재감을 가지고, 언제나 당당하게 나를 드러내고, 강하고 분명하게 대답을 하며 호불호가 선명한 그런 모습들.  


이상하게도 지금의 나는 그런 색들에겐 손이 가지 않았다. 나는 왜 이런 색깔들을 고른 것일까? 지금의 내가 고른 색감은 아기를 낳고 처음 몇달동안 몇시간마다 깨면서 정신없는 와중에 창밖으로 바라본 새벽녘의 하늘 빛깔같기도 하고 사회와 동떨어져 있는 와중에 느꼈던 고독같기도 했다. 그리고 모두 순하디 순하고 너무나 보드라운 아기옷같은 색들이었다. (예전의 나는 저런 색들을 흰색깔이 섞인 탁한색이라고 표현하곤 했었는데..ㅎ 지금은 순하고 보드랍다고 말하고 있다.)



비슷한 색감의 여섯개의 색깔들이 그라데이션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 컬러들이 지금 내 마음이 고른 색이구나. 그런데 아직 많잖아. 그리고 나서 오늘이 왔는데 시현작가님께서 너무도 시원하게 내 색깔을 픽 해주셨다. 보라색으로 가자고! (아 너무 화끈하고 마음에 들었다..) 


이 색깔들 중에서 보라색이 가장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라 나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셨다. (응? 우아와 고급이 잘 어울린다구요?)

오늘 내 스타일링이 우아하고 지적인 이미지여서 수국같은 보라색으로 가면 좋을것 같다고했다. 그러면서 보라색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중도의 색이라고 하셨다. 그 말이 너무 좋았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중도의 색. 지금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색감이 없을것같았다. 


나는 언제나 뜨거웠다. 내가 지닌 열감은 아기를 낳고도 한동안 이어졌다. 나는 열정적이고 나는 바쁘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잘하고싶은 사람이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고 밝은 사람이다. 


흔히 아기를 낳으면 자기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렇지 않았다. 아기를 낳고 사회와 동떨어진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내가 가득했다. 미친듯이 달리다가 갑자기 멈추기가 힘들듯이 나는 계속 달리게 되었다. 


그래서 아기를 낳고도 쉬지 않았다. 나를 놓고싶지 않아서였다. 아기가 낮잠을 자면 나는 운동을 해야했다. 예전에 미친듯이 무용하던 나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 움직임이 없는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무용할때 가졌던 몸도 그리워서 지금의 출산 후 몸을 어떻게든 "되돌려"놓고 싶었다. 


아기를 재우고 나서 설거지를 하거나 청소기를 돌릴때도 허겁지겁 강의를 들었다. 매일같이 매일 밤마다 시간이 나면 뭐라도 공부하려고 마음이 바빴다. 육아휴직중에도 나는 발전하고싶었다. 이 시기를 육아만으로 보내기가 절대로 싫었다. 낮에는 육아에 최선을 다했고 밤에는 나를 위한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내가 가진 이 육아휴직이라는 시간동안 최대한 발전해서 내가 꿈꾸는 뭔가를 이루고 싶었다. 그런만큼 나에게 찾아온 밤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피곤해 죽겠는데도 늦게까지 깨어서 뭔가를 배우고 뭔가를 하고 뭔가를 만들고 뭔가를 하기 위해 고민했다. 


다른말로 초조해서 어쩔 줄 몰랐다.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은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렇다고 강박관념은 심해가지고 청소가 되지 않아 늦게까지 청소를 해야하거나 이유식을 만들어서 자기계발을 못하게 되는 날은 남편에게 너무 화가 났다. 아기가 조금만 자는 날도 "내가 해야할 것들"을 하지 못해 아쉬움이 너무 컷다. 그렇게 내 할일을 했을 때의 뿌듯함과 할 일을 못했을때의 실망과 좌절을 자주 오갔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씩 흘러갔다. 나는 내가 만든 완벽한 루틴 안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 안에서 지치기도 했고 즐겁기도 했다. 어느날 내 눈앞에 있는 아기가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기라는 존재가.. 


아기는 단지 자기 눈 앞의 세계를 즐기고 있는 듯 했다. 아기에게 중요한건 자기 눈 앞에 있는 세계일 뿐이었다. 놀라움으로 가득한 세계였다. 아기는 자기 스스로 "아기"라는 생각이 없었다. 내가 나라는 생각. 나에게 가득 차있는 "나"의 이미지. 

아기에게는 자기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 자신이 지금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가 이루고 싶은 뭔가를 위해 틀어박혀 있지도 않았고 지금 내가 이럴때가 아니라며 마음을 다 잡지도,내일은 더 멋진 해온이가 되어야지 다짐하지도 않았다. 아기는 지금만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해온이는 너무도 완벽한 존재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지금만을 사는 아기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했다.


나도 조금씩 변해갔다. 나도 이미 충분할 지도 모른다. 그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아기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귀기울여보았다. 집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나도 아기처럼 따라 귀기울여보았다. 소리에 집중하니 또다른 세계가 열렸다. 나는 이제 더이상 설거지를 하면서 강의를 듣지 않는다. 물론 열린 마음으로.. 강의가 듣고싶으면 듣는다. 다만 예전처럼 쫓기는 마음으로 공정률 치듯이 듣지않게 되었다. 이제는 설거지를 하면서 그릇을 만진다. 그릇의 촉감을 느껴본다. 설거지를 하면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듣는다. 비가 많이 오면 비내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도 내 눈 앞에 있는 세계가 중요해졌다. 내가 이뤄야할 꿈 말고 지금, 여기. 지금 내 눈 앞에있는 현실. 


그러다가 몸의 소리도 듣게 되었다. 내가 조금 피곤하면 아기 낮잠시간에 요가를 하지않고 아기랑 같이 잔다. 그렇게 예전처럼 치열하지 않다. 눈도 즐겁다. 생각으로 가득 차고 초조함으로 가득했던 머리대신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마음을 둔다. 만져도 본다. 생각이 사라지고 시각과 촉각이라는 실제적인 느낌이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주었다. 완벽히 청소를 해야한다는 강박도 조금씩 사라지고있었다. 청소가 안되어있으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마음이 편안해지니 어지러져있을 때도 있다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그렇게 나의 색깔은 조금씩 변하고 있나보다. 지금 나의 색깔은 연보라색.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진하지 않은 보라색. 

그렇게 지금 상태의 나를 "증명"해 보았다. 



작가님이 명언이 기억난다. "보정전의 나는 내가 아니다!"

내가 입고 있는 저 옷 팔이 해졌는데 작가님이 포토샵으로 떼워주면서 이제 새 옷 사자고 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아기도 태어난지 1년 기록을 남겼다.

우리아기는 천사니까 하늘색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개구리도 같이 나왔다.

아기가 앞을 안봐서 "증명사진"으로는 못쓰지만 우리 아기 만 1살을 "증명"한 소중한 증명 사진이다. 




코로나로 돌잔치는 없다. 

그렇지만 내 마음의 돌잔치를 했다. 이렇게 기록도 남겼다. 

돌잡이 사진도 예약해놨다. 

앞으로도 이렇게 재밌게 살아가야지.


정말 만나고 싶었던 시현하다 작가님이었다. 만나고 보니 오래 알았던 사이같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재의 나는 아기한테 건내는 말 말고는 말 할일이 없기때문에 어른다운 대화를 잘 하지 않고 지내기때문에 내딴에는 많은 이야기였다)

작가님한테 내년에 아기 생일날 또 오겠다고 했다. 

매년 기록을 남길꺼라고.


작가님이 아기는 아기생일날 오고 나는 내 생일날 오라고했다. 그 말이 좋았다.


작가님이 은희언니 우리 같이 늙어가요 라고 했다. 감동받았다.

흠모하던 사람이랑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니말이다. 세상은 재밌다. 

지금 내 눈앞의 세상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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