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졸업생의 다사다난했던 20살이자, 2024년"
저는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항상 연말마다 '지난 한 해를 꼭 회고해야지'라는 다짐을 했어요.
하지만 그 다짐은 얼마가지 않아 계속 미뤄지다 새해를 맞이하고 잊혀갔습니다..
그럼 왜 2024년은 회고를 하냐고요? 지난 한 해는 저에게 좀 많이 달랐어요.
비록 20년 밖에 살지 않았지만 그 20년 중에서 가장 다사다난했고 가끔은 좌절하기도, 또 많이 성장했던 그리고 가장 중요한, 20살이 되어 처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한 해였어요.
그래서 저의 1년을 글로 기록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2024년뿐만 아니라 앞으로 매년 저의 한 해를 회고를 통해 기록하고 싶어 졌어요.
10년 뒤 서른 살이 된 미래의 제가 20대의 회고록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진 모르겠지만 컴퓨터를 통해 밥벌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대학에 대해 생각도 별로 없었고, 그저 컴퓨터와 관련된 일이라면 뭐든 재미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코로나 시절에 게임을 통해서 프로그래밍을 접하며 너무나도 재미있던 탓에 공부고 뭐고 프로그래밍에 매진했어요. (온라인 클래스 수업을 켜놓고 노마드 코더 강의를 들었답니다)
자연스레 한세사이버보안고등학교에 진학했고 3년 내내 취업만 바라보며 얼른 사회에 나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그 과정 속에서 성장하고 스스로 돈을 벌면서 얼른 필드에서 경력을 쌓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어요. 입학하고서는 '고등학교 생활은 할 수 있는 모든 건 다 해봐야지!'라는 다짐으로 학생회에 들어가서 전교부회장도 해보고 기능부를 맡아서 교내 행사에 필요한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했고, 4-5개의 동아리에 참여해서 선배/후배/동기들과 다양한 활동을 했었어요. 특히 보안관제 동아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1년에 2번 있는 학교의 메인 행사를 위해 몇 개월동안 매일 저녁 9시까지 동아리 서버실에 들어가서 온프레미스 서버를 네트워크부터 대회 시스템까지 재구축하고, 모니터링, 대회 시스템 개발, 운영 총괄까지 엄청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요.
그랬던 덕분이었을까요. 취업을 준비할 때 많은 선배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졸업식 때 많은 선배, 후배, 그리고 선생님들의 축하를 받으며 '최소한 지난 3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졸업이 실감됐어요. 재학생일 때는 그렇게 사회에 나가고 싶었는데 막상 졸업하니 지난 3년 간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과의 추억과 함께 졸업이 너무나도 아쉬웠습니다. 그렇게 저는 지난 2월 졸업했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습니다.
사실 저는 작년 8월 말부터 10월까지 현장실습생으로, 11월부터는 정규직으로 현재 재직 중인 블럭스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미 등교보다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일상이었기에 졸업 전과 후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막상 출근하니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감정을 잠시 느꼈어요. 어쩌면 이제 어른이 된 거 같다는 기분이랄까요?
아무튼 그렇게 졸업과 동시에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새로운 사회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졸업할 때 쯔음부터 저는 CRM 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CRM 플러그인이라는 제품을 제일 먼저 다뤄보게 되었어요. 이 제품은 Braze라는 CRM 솔루션 위에서 connected_contents 기능을 활용해 블럭스의 AI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MVP 느낌의 제품이에요. 합류 이후, 기능이 점점 추가되고 고도화되면서 마케터들이 입력해야 할 Liquid 코드의 양이 점점 늘어났고, 이로 인해 마케터의 피로도가 증가하는 문제를 마주했어요. 이때 제가 팀에 제안했던 아이디어가 채택되면서 기획부터 배포, 운영, 그리고 클라이언트 대응까지 모두 경험해 볼 수 있었던 Liquid 자판기라는 제품을 개발했어요.
그 후 본격적으로 CRM 제품 개발을 시작하면서 관련한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링 전반적인 부분을 맡게 되었어요. 당시 팀 내에 유일한 프론트엔드 엔지니어였고, 조직 내에서도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는 저를 포함해 2명뿐이었어요. 아무래도 이전까지는 API형의 서비스를 주로 개발하고 제공해 왔기에 프론트엔드의 중요성이 크게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른 한 분도 퇴사하게 되었어요. 더군다나 조직 내에서 이러한 제품을 만드는 것은 처음이었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지만 아무래도 제 스스로도 책임감과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좋은 코드와 제품을 잘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에 많은 고민이 있었고, 다른 프론트엔드 엔지니어의 의견을 듣고 조언을 구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주변에 물어볼 곳도 없었고 조직 내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도 저뿐이었던 상황이라 꽤나 어려웠었지만, 옆자리에서 함께 화이팅하던 이솝께서 같이 고민해 주신 덕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제품 개발을 위해 당장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야근이며 주말 출근도 마다하며 미친 듯이 제품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물론 힘든 것도 있었지만 제 스스로도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제품을 만들면서 '와, 이게 진짜 된다고?'라는 순간들을 자주 마주쳤어요. 메이커로서 내가 만들고 있는 제품에 대한 성과를 보며 점점 확신에 가득 찼고,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욕심으로 더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어요.
2024년 1분기는 CRM 팀에 합류하고 도메인 지식을 이해하며 주로 정보 습득이 많았던 기간이었어요. 처음 팀에 합류하고 CRM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온보딩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만들 것이며, 마케팅 시장에 대해 알게 되고 타 솔루션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기능들이 있는지 등 모든 것이 새로웠어요. 엔지니어링적으로도 메시지 발송을 위한 대량 트래픽을 처리하기 위한 메시지 큐, 캐싱, MSA 등 다양하고 많은 기술을 접해볼 수 있었어요.
1분기에 너무나도 무리했던 탓이었을까요. 이때쯤부터 신체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슬슬 느끼기 시작했어요. 특히 평소에 잠에 많이 예민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잠에 들기가 너무나도 힘들었고, 이 문제가 다음날 업무나 일상생활까지 지장을 주는 지경까지 가버렸어요. 그래서 결국 수면유도제를 복용하며 직접적으로 수면을 관리하기 시작했어요. 여기에 역류성 식도염부터 알레르기와 스트레스 2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급작스런 천식에 손목 통증까지 찾아왔어요. 갑자기 찾아온 여러 질병에 속도 많이 상했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어요. 살면서 처음으로 호흡곤란을 느끼면서 심각성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물론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고,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다 나았습니다. 건강 때문에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럭키비키 마인드(?)로 승화하자면 다시 건강해지기 위해 좋아하던 탄산음료도 끊고, 야채 위주의 식사로 제 때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몸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운동도 하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이때 이후로는 항상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건강이 최고다",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를 몸소 느끼며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내 몸 상태를 잘 관리하고 보살피는 것도 일을 잘하는 능력 중에 하나라는 점도 깨달았고요.
이때 조직 내에서도 여러 변화가 있었고 본격적으로 제품 기능 확장에 들어가며 여러 기획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개발은 계속 이루어져야 했지만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는 저뿐인 상황에 슬슬 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할 때쯤 앞서 얘기한 건강 문제가 터져버렸어요. 또한 몇 개월동안 너무나도 많은 태스크를 처리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몇 주 전에 뭘 했는지도 기억을 못 하겠더라고요. 깃허브 히스토리를 뒤져보고서야 지난 시간 동안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었어요.
솔직히 이때 '이렇게까지 회사를 다녀야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건강적인 부분에서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모님께서도 먼저 회사를 그만두고 쉬는 것은 어떠냐고 말씀하시기도 했었고, 주변에서도 많은 걱정이 있었거든요. 제 스스로도 많은 고민 속에 혼란스러웠던 시기였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블럭스에 계속 남아서 끝장을 보기로 결정했어요.
막상 제가 퇴사한다고 생각했을 때, '아직 제품에 더 개선할 점들이 많은데, 나간다고..?'라는 생각에 아쉬움과 제 스스로 느낀 제품에 대한 확신을 봤는데도 이걸 포기하고 떠나기는 싫었어요. 때문에 블럭스에서 한 번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동시에 주변 동료들과 회사의 분위기도 결정에 큰 작용을 했어요. 제 개인적인 상황이 힘든 것이 있었지만, 회사 분위기는 정말 다른 회사에서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좋았어요. 직장 동료 수준을 넘어 동료들과 친구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않았어요. 그리고 첫 출근 때부터 계속 친구들에게 자랑할 때 '블럭스는 매일매일 출근하는 것이 기대되고 설레는 조직이다'라고 자랑했을 정도였거든요.
제품 개발에 있어서 프론트엔드와 관련된 부분을 거의 혼자 책임지고 있었고, 너무나도 빠르게 진행했던 탓에 자잘한 버그들도 많았어요. 어쩌면 저의 잘못이기도 하죠. 새로운 기능들에 대해 QA를 진행할 때마다 엄청난 이슈 리스트들이 항상 저를 반겨주었고, 그때마다 항상 저는 심적으로 많이 무너져 내렸어요. 제 스스로에게 실망스럽고 화가 많이 났어요. 물론 너무나도 많은 작업들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회피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정신승리를 하며 피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프론트엔드 엔지니어 채용을 진행하면서 많은 면접에 면접관으로서 참여했는데, 제 스스로도 '내가 정말 면접관으로서 참여하는 것이 맞을까?'라며 제 나이도 나이인지라 혼자 많은 고민을 하기도 했었고, 어느 순간 저에게 닥친 모든 상황들이 너무나도 부담스럽고 힘들게 다가왔어요.
그래도 20살이라는 나이에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저와 함께 일할 동료를 뽑을 수 있다는 점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사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여러 사람들을 이끌거나 대회 총괄을 맡는 등 다양한 압박 속에 던져진 적이 있었고 이 때도 비슷한 부담감을 느꼈어요. 그때 한 선배가 저에게 해줬던 말이 기억에 아직도 남아요.
"누구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그런 자리에 결국 너는 선택을 받아서 그 자리에 있는 건데, 나는 그런 생각이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해" 이 말이 저는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히 기억나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생각해 보니 틀린 말은 없었어요. 저는 당장 이 상황, 자리가 부담스럽고 회피하고 싶고 힘들지만 누군가는 반대로 그 상황이나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요. 최소한 그런 사람들 위해서, 또 나를 이런 상황에 넣은 사람들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더 똑바로 행동하고 버텨보자, 더 잘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면접에 들어가면서 저는 아직 제 스스로도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고, 그런 제가 컬처핏에 개입해 판단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 중점적으로 보았던 거 같아요. 면접을 진행하면서 대표 조엘의 질문과 면접자들의 답변을 듣다 보니 반대로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나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뭘 할 때 행복하지?'. 저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고 20살까지 목표 하나만을 바라보며 지난 몇 년간을 미친 듯이 갈아 넣었더라고요. 딱히 취미도 크게 없고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바로 떠오르지도 않아 답하기도 어려웠어요. 주변 친구들도 저에게 취미를 만들라며 잔소리를 하곤 했는데, 이 시점을 계기로 아무리 일이 재밌더라도 이렇게 사는 건 아니라고 깨닫게 된 거 같아요.
저는 가능한 오랫동안 키보드와 함께 제가 만들고 싶은 프로덕트, 서비스를 만들며 살아가고 싶어요. 즉, 엔지니어, 메이커로서 오래 롱런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금방 식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내 모습을 위해서,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서도 최소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지 뭘 할 때 행복한지 정도는 알아야 최소한 내가 힘들 때 나 스스로라도 나를 챙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물론 지금도 이 질문을 머릿속에 새기며 살고 있어요. 아직도 전 잘 모르겠거든요. 그래도 이런 문제는 스스로 인지하고 있고,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어느 정도는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에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해요.
저는 20살이 되면 법적으로 어른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아니요, 법적으로는 어른이며 스스로 내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는 맞지만 뭐랄까 아직은 고등학교 4학년 어린이라고 느껴졌어요.
지난 한 해는 제 스스로 많이 혼란스러웠고 심란했고 고민이 참 많았던 시기였어요. 그리고 제가 누구인지 스스로 찾아가는 긴 여정이었고요. 그렇지만 올해도 비슷할 거 같아요. 근데 저는 이걸 표류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20살에 사회라는 바다에 나왔지만 지금은 지도도 없고 나침반도 없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비록 바람에 맡기며 표류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침반을 찾아 제 스스로 저의 지도를 만들어가며 올바른 방향을 향해 자신 있게 항해할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2024년은 제게 도전과 성장, 그리고 제 스스로를 알아가는 한 해였던 거 같아요.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루고 실패와 여러 방황 속에서 다양한 것을 배워갈 수 있었습니다.
2025년에는 최소한 제가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정하기 위한 나침반 정도는 찾을 수 있는, 인간적으로 더 단단한 자신으로 성장할 수 있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