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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아 Jan 26. 2024

갑작스러운 헤어컷


갑작스러운 헤어컷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사 온 낮고 연식이 오래된 아파트에서 아직도 살고 있다. 

얼마나 나이가 지긋하신 아파트냐 하면 바람이 조금이라도 세게 부는 날 아파트 벽에서 떨어져 나간 페인트 조각들이 흩날리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얼마나 지겹게 봐왔는지 주민들 모두 그 부스러기들을 공기처럼 여길정도다. 오히려 입자가 더 작은 황사에 저 뿌연 하늘을 보라며 페인트 부스러기들을 발치에 두고 호들갑을 떠는 주민들이 조금 웃기기까지 하다. 



나에게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낡은 이곳에서 아직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공간이 있는데, 마치 붉은 벽돌 주택 앞에 있는 화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양을 닮은 아파트 화단이 바로 그것이다. 

볼 때마다 조금씩 자라나는 소담한 식물들과 계절마다 다양한 팔레트의 색을 짜내 뽐내는 나무들, 짓궂은 아이들의 손길을 타면서도 꿋꿋하게 나볏한 모습으로 자라는 작은 꽃들이 낡은 페인트 조각으로 뒤덮인 아파트의 모습을 밝고 정겹게 가꾸어준다. 

그중 흙에 뿌리를 내린 지 제법 오래된 나무들이 가장 눈에 띈다. 아파트와 함께 여러 세월을 보내어선지 키가 껑충 커버려 아파트 옥상마저 넘보려는 기미도 보인다.



5층에 사는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나무들의 정수리를 조만간 손을 뻗어 만져볼 수 있지 않을까 제법 기대하는 마음으로 자주 창밖을 내다봤다. 

그러던 올해 초여름 휘파람 같은 나뭇잎 흐르는 소리만 가득하던 작은 화단이 답지 않게 소란스러워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1동에 사는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목청 좋은 배불뚝이 아저씨(이하 기차 아저씨라 칭하겠다)가 갑작스러운 소란의 중심이었다. 

기차 아저씨의 말로는 자기 집의 베란다 높이만큼 자란 나무가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경비아저씨에게 나무를 잘라달라며 수없이 요청했었단다. 아파트 관리의 소소한 결정들도 모두 등나무 아래 벤치에서 이루어지는 주민총회에서 논의하기 때문에 기차아저씨의 독단적인 요구만으로는 쉽사리 나무를 자를 수 없었던 경비아저씨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총회가 있기 전까지 경비아저씨는 차일피일 대답을 미뤘고 며칠을 경비실을 드나들던 기차아저씨가 꽃이 질 때까지 기다린 초여름날 결국 그 뜨거운 화통을 터트리고 말았다. 



조용조용한 아파트 단지에서 고성이 오가며 싸움이 일어나는 일은, 게다가 훤한 대낮에 이런 소란이 있는 것은 흔하지 않았기에 큰 소리에 놀란 나는 안방 창문으로 이 난리를 지켜보게 되었다. 기차 아저씨는 대답할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일방적인 고함을 지르다가 결국 알아서 하라는 경비아저씨의 회피에 씩씩대며 집으로 돌아갔다. 곧바로 베란다 문을 연 기차아저씨는 한 손에 톱을 든 채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시야를 가리는 굵은 나뭇가지를 댕강 잘라내고 말았다. 

고어 무비에서나 보는 신체 절단 같은 이미지에 충격을 받아 멍하니 바닥을 뒹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의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진 아파트는 금세 거짓말처럼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로 돌아갔지만 1동의 나무는 매년 봄마다 찬란하게 꽃잎을 자랑하던 한쪽 가지들을 잃은 어쩐지 허망한 모양새가 되었다.








주민들 모두 상황이 일단락되자 하나둘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오랫동안 창가에 기대어 생각에 잠겼다. 흙과 바람이 좋아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했을 뿐인 1동의 나무는 자신의 훌쩍 큰 키를 둘러싸고 고성으로 싸우게 된 두 인간을 어떻게 지켜봤을까.


짧은 머리의 나무를 보니 나의 여중 시절 어느 사건이 떠오른다. 내가 다니던 여중은 그 시절 여타 다른 학교같이 귀밑 삼 센티미터 같은 비인간(?)적인 두발 규정은 아니었다. 나름 학생들의 인권을 생각했는지 중단발 까지는 기를 수 있었는데, 단 묶일 수 있는 길이라면 반드시 머리 끈으로 묶고 다녀야 했다.




늘 왼쪽 손목에 시계 대신 차고 다니던 머리 끈이 왜 그날은 없었는지, 등교시간에 깜빡하고 머리를 묶고 오지 않아 학생주임 선생님께 그야말로 딱 걸리고 말았다. 학교 정문 앞에서 붙잡혔고 속전속결로 어 하는 사이에 머리카락을 잘렸다. 바닥을 뒹구는 검은 잘못 덩어리 같은 머리카락을 보니 조금 당황스러웠고 교칙을 어겼다는 것이 실감이 나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머리카락에 큰 의미를 두며 기른 것은 아니기에 금세 마음을 다잡고 어차피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니까 라고 생각하며 덤덤하게 학교 건물로 들어갔다. 교복 마이 어깻죽지에 잘리고 남은 머리카락들이 소복하게 쌓였지만, 손짓 몇 번으로 탈탈 털어 내버리니 유난스러웠던 두근거림도 점차 잦아들었다.



교실로 들어가 친구들에게 학주한테 머리카락을 잘렸다며 푸념의 탈을 쓴 자랑(?)을 하니 친구들이 오히려 대신 욕해주며 갑작스러운 충격을 덜어 내가는 바람에 마음이 더 가벼워졌다. 은은한 주목을 받은 것이 어째 조금 뿌듯하기까지 해 이참에 멋지다고 생각한 샤기컷으로 잘라볼까 사진이나 뒤적거리기까지 했다. 이 날의 갑작스러운 교문 헤어컷은 결국 나에게 큰 사건이 아닌 하나의 소소한 에피소드로 남게 되었다. 



옆 동의 나무에게 '으이그 몇 년을 지랄을 하더니만 나 결국 가지치기 당했어.' 로 시작해 '인간들이란~ 앞으로 이 집 이사 가기 전까지는 머리도 못 기르겠다 야' 하며 욕이나 푸지게 내뱉으며 다른 나무들의 위로를 받고 툴툴 털어버리지 않았을까. 변화무쌍한 날씨를 온전히 견디는 나무이기에 인간보다 더 넉넉한 마음을 가졌을 거야. 부디 깊이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나의 작은 마음을 담아 창가에 기대 멋대로 상상해 본다. 



1동의 나무에게 닥친 사건을 부디 어깨 위의 머리카락처럼 바람 몇 줌에 날아가 버리는 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가벼워진 머리칼로 내년 여름을 다른 나무들보다 시원하게 지냈으면, 혹여나 이 나무가 대단히 상심했다면 의도치 않은 숏컷도 내 중학교 시절 유행했던 샤기컷처럼 과감함이 돋보이는 예쁜 머리라고 위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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