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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이 Apr 14. 2017

그 시절 해녀와 수국

제주도,일러스트레이터, 일러스트레이션,



처음 가파도 작업실에 짐을 풀었던 때, 마당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마른 나뭇가지만 무성하던 이름 모를 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그 나무에는 말라비틀어지고 볼품없이 크기만 하면서도 공처럼 둥근 모양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누렇게 변색된 꽃대들이 수십 개씩 달라붙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간밤의 거친 비바람에도 떨어지지 않고 저마다 제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그 꽃대들이 얄밉게까지 느껴져 시무룩하게 바라보고 있던 참에 마침 대문 밖으로 지나던 해녀 할망께서 이름 모를 꽃나무와 나를 번갈아보며 말을 건네신다.


"보기 싫더냐?"

궁금하던 차에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냉큼 할망쪽으로 달려가 대문에 매달리듯 어깨까지 밖으로 쭉 내밀며 여쭈었다.

"네! 너무 보기 흉해요. 할머니, 이 시들어서 삐쩍 말라비틀어진 큰 꽃대는 영영 안 떨어질까요?"

"그대로 두면 서리가 내려앉을 때까지도 꽃대가 떨어지지 않곤 하지. 보기 흉하면 그만 가위로 잘라내어 주거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타박 치는 말거라. 어디 그 꽃이라고 탐스럽고 예쁠 때가 서럽도록 그립지 않겠느냐."

뒤돌아 가시는 할머니께 그제야 대문을 열고 서둘러 뛰어나가 큰소리로 다시 한번 여쭈었다.

"할머니! 이 꽃나무 이름이 뭐예요?"

해녀 할망은 더 이상 돌아보지 않았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가던 길을 재촉했다.

"수국이다."

그때였다. 해녀 할망의 숱적은 은빛 머리카락을 심술스러운 바닷바람이 잡아채듯 휘날리자 할망의 헝클어진 머리칼 틈새로 수국이 만발하듯 파란 하늘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문득 수국과 그녀의 한없이 곱기만 했을 그 어느 시절이 아련하게 겹쳐지며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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