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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이 Feb 02. 2020

수국 소녀_ 유화, 제주도 화가



'내가 우리집 큰딸이었어. 동생들은 어렸고..아방 그렇게 가시고 어멍 혼자 자식들 끼니 걱정에 시름이 크셨지. 어느 날이던가. 돈벌어오겠다며 짐챙겨서 집을 나서는데 뒷밭에 어느새 내 키만큼 큰 꽃들이 만발해. 가만히 보니 아방 무덤에 난 수국들이야. 예전엔 밭에 무덤을 모시고 무덤가엔 늘 수국이 피어나곤 했지. 그래서 수국을 귀신꽃이라고도 불렀어. 아방에게 큰 절하고 눈물 흘리며 그렇게 육지로 원정 물질하러 떠났었지.' .


그때였다. 뒤돌아서 가는 해녀 할망의 은빛 머리카락을 심술스러운 바람이 잡아채듯 휘날리자 할망의 헝클어진 머리칼 틈새로 수국이 만발하듯 파란 하늘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문득 수국과 그녀의 한없이 곱기만 했을 그 어느 시절이 아련하게 겹쳐지며 왠지 모를 마음 한편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수국 소녀 oil on wood 73×5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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