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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이 Jan 31. 2017

아주 오랜만에 그려본 유화

제주살이




설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저희는 연휴 내내 집에서 보내었답니다. 몇일후 남편이 두 달여 집을 떠나 있어야 해서 이것저것 서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일들이 많다보니 크게 하는 일 없이도 바쁘게 지내고 있답니다.


오래전 유화 재료들을 꺼내어 놓고 또 더 많은 재료들을 보강해 놓고 아주 오랜만에 붓을 들어 보고 설레고 기쁨이 가득하였지만 역시 너무 오랜만에 들어본 붓은 제 맘과 같이 움직여주지 않아서 애를 먹었네요. 더군다나 밤낮없이 태블릿 팬으로 그림을 그리던 것이 손에 완전히 배어버려 처음에는 붓에 주는 힘 조절에 번번이 실패하고 허둥대기 일쑤였다지요. 


어찌어찌해서 첫 유화를 완성해 내긴 했지만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아요. 하지만 낙천적인 성격 덕에 여타 예술가들의 그 흔한 자책 따위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몇십 년 만에 그려낸 첫 작품 치고는 대단하다고 스스로 놀라워하며 그늘 하나 없이 천진난만과 자신만만하기만을 오르내리며 즐거워하고 있답니다.


요즘 빈티지 북커버에 푹 빠져있어요. 잡지나 동화책 등 오래된 느낌의 유화 일러스트를 당분간 그려볼 생각이랍니다.




Vintage magazine ' Disco - Oil on spruce panel 8"x12" - January, 2017







중세시기 전 초기 유화는 캔버스로 원목을 사용했답니다. 그러다 점점 면이나 마 종류의 캔버스로 옮겨가기 시작했는데 비용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현재에는 나무, 천 등 큰 제약 없이 여러 가지 재료들이 캔버스로 사용되는데요. 저는 기타 제작가를 남편으로 둔 덕으로 가문비나무 원목으로 캔버스를 사용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네요.




완성된 그림을 보고 남편이 얘기하더라고요.

"예전 그림하고 느낌이 비슷한데?"


그래서 먼지 뿌옇게 쌓여 있던 아주 오래된 액자를 찾아보았지요.



액자에 보관해두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오래된 유화 한 점이네요.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로 지금 그림과 느낌이 비슷한 듯해요. 약간 팝아트스러운 강렬한 색감이네요.


확실히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런 강렬하고 빈티지스러운 그림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하긴 한데 제주도 시골에 내려와 살며 감성이 많이 부드러워졌다고나 할까요. 그러다 보니 현재 그림 방향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듯하기도 해요. 어느 때에는 아주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가도 또 어느 순간 아주 강렬한 그림이 그리고 싶어져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저도 정신이 없을 정도랍니다. 

더군다나 디지털 일러스트를 할 때에는 작업 속도가 빠르니 수정이나 스타일을 자유스럽게 바꾸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는데 회화로 복귀하고 나니 어느 정도는 자기 색깔을 하나로 정한 뒤 일정기간 동안이라도 고수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판단이 바로 서네요. 


오랜만에 붓을 들어보니 그리는 시간보다 이것저것 상념의 시간들이 더 길어지는 듯합니다. 그래도 이 고민의 시간들까지도 모두 소중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이것이 2017년도 저에게 온 작지만 첫 번째 축복이라는것을 알고 감사할줄 알기 때문이겠지요.


어릴때에는 독하게만 느껴졌던 유화냄새가 이제는 참으로 향긋하기만 합니다.


포트폴리오 https://kimjaey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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