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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May 04. 2017

게이트 키핑의 구멍.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 사과는 했지만.

5월2일 SBS가 보도한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라는 기사는 한국 언론사에 기록될 중요한 사건이다. 기본적인 팩트 조차 제대로 취재돼 있지 않고 크로스 체크나 반론도 없는 부실한 기사지만 이런 기사가 버젓이 방송을 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보도국의 누군가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기사에 손을 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성준 보도본부장은 “해양수산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까지 세월호 인양에 미온적이었다는 의혹과 탄핵 이후 정권교체 가능성을 염두에 둔 해수부가 인양에 대한 태도를 적극적인 방향으로 바꿨다는 의혹을 짚으려 했다”면서 “복잡한 사실관계를 명료하게 분리해서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발제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단순히 게이트 키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라고 보기에는 너무 엄청난 내용이었다.

“솔직히 이거(세월호 인양)는 문재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거거든요. 정권 창출되기 전에 문재인에게 갖다 바치면서 문재인이 약속했던 해수부 제2차관, 문재인이 약속했거든요. 비공식적으로나 공식적으로나 제2차관 만들어주고, 수산쪽. 그 다음에 해경도 집어넣고 이런 게 있어요.”

이런 엄청난 발언을 기사로 내놓으려면 당연히 그 파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당연히 체크해야 하고 사실이라면 그 의미와 실체를 추적해야 한다. 사실이라면 어마어마한 특종일 테니까.

그런데 SBS는 녹음 파일 하나를 툭 던져 놓으면서 “부처의 자리와 기구를 늘리는 거래를 후보 측에 시도했음을 암시하는 발언”이라고 평가한다.

1. 세월호 인양을 늦춘 의혹을 조사해야 한다.
2. “인양은 문재인에게 갖다 바치는 거다.”

1과 2를 연결하려면 몇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문재인을 위해서 인양을 서둘렀다고? 인양을 해주면 문재인이 제2차관 자리를 주기로 했다고? 문재인이 그럴 이유가 있나? 그 익명의 공무원의 말을 믿을 수 있나?

SBS 보도를 최대한 선의로 해석한다면 박근혜 정부가 인양을 늦춘 건 맞고 해양수산부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이제라도 인양을 서두르면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문재인에게 잘 보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을 거라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 발언의 신빙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으나 일단은 취재해 볼만한 사안이다. 내가 데스크라면 “가능성은 낮지만 좀 더 알아보자”고 했을 것이다. 최소 2명 이상의 코멘트를 확보하는 건 취재의 기본이다.

“문재인에게 갖다 바친다”는 발언은 직접적인 거래를 의미한다기 보다는 결과적으로 문재인이 최대 수혜자 아니냐는 정도의 별 의미없는 발언이었을 수 있다.

해수부는 현재 차관이 1명 뿐이나 2차관을 신설하고 조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실제로 문재인 후보가 지난 1월 부산을 방문해 강력한 해수부 부활을 약속하기도 했다. 명시적으로 2차관 신설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해수부 장관 출신 오거돈씨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하면서 해수부 내부의 기대가 무르익고 있는 상황이고 SBS가 보도한 해수부 공무원의 발언 역시 이런 배경에서 가볍게 흘린 것일 가능성이 크다. 다만 경위야 어떻든 세월호 인양을 고의로 지연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라 전혀 의미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발언이 이런 맥락으로 포장돼서 방송을 탄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SBS의 보도는 문재인이 세월호 인양을 정략적으로 이용했으며 문재인과 해수부가 부적절한 거래를 했다는 내용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SBS 노조는 성명을 내고 “정치적 외압이나 부적절한 개입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성명에 따르면 

1. 초고 때 담겼던 박근혜 정권 시절 인양 지연과 눈치 보기를 지적하는 문장이 데스킹 과정에서 통째로 삭제됐다. 
2. 제목도 “’인양 고의 지연 의혹’- 다음 달 본격조사”에서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고 바뀌었다. 
3. 음성 녹음의 공무원은 해수부 소속은 맞으나 세월호 인양 일정수립에 아무런 권한과 책임이 없는 사람이었다. 
4. 발언의 신뢰도에 대한 다른 기자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반영되지 못했다.

그 결과 애초에 처음 기자가 쓴 리포트는 해수부가 세월호 인양을 고의로 지연하고 있다가 탄핵 이후에 일정을 서둘렀다는 것인데 최종적으로 나간 기사는 문재인이 인양을 늦췄다는 것처럼 읽히게 됐다. 


단순히 게이트 키핑 실수라고 보기에는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고 정작 SBS의 장황한 해명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정치적 외압과 부적절한 개입은 없었을지 모르나 누군가가 의도를 갖고 당초 취재 결과와 다른 기사를 만들어 내보냈으며 내부의 문제제기도 묵살했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전혀 다른 기사가 됐다. 그것도 이 민감한 선거 국면에. 


나는 어제 SBS의 사과에 충분한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고 본다. SBS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멀쩡한 기사가 어떻게 데스킹 과정에서 엉뚱한 맥락으로 왜곡되는지, 보도국의 최소 수십명의 사람들이 데스킹 과정에 참여할 텐데 어떻게 이렇게 게이트 키핑이 무력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할 거라고 본다. 아울러 제대로 된 해명과 사과가 되려면 기사의 맥락과 배경을 정확히 밝히는 게 SBS가 이번 일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어느 언론사나 비슷한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SBS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한 번 더 결단이 필요할 것 같다.


다음은 5월2일자 SBS 보도 원문.

<앵커>

세월호 선체조사위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오늘(2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인양 고의 지연 같은 각종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에도 속도가 붙게 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해수부가 뒤늦게 세월호를 인양한 게 차기 권력의 눈치를 본거란 취지의 해수부 공무원 발언이 나와 관련 의혹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조을선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50여 명의 구성으로 다음 달부터 본격활동에 나서는 선체조사위는,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인양을 고의로 늦춰 왔다는 의혹도 조사할 방침입니다.

[김창준/선체조사위 위원장 (지난달 21일) : 2015년 4월에 계약해서 대략 2년 정도 걸렸는데 '의도적으로 늦게 인양한 거 아니냐'는 국민적인 의혹이 있었고요.]

이런 의혹을 증폭시킬 만한 발언을 해수부 공무원이 SBS 취재진에게 했습니다.

[해수부 공무원 : 솔직히 말해서 이거(세월호 인양)는 문재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거거든요.]

부처의 자리와 기구를 늘리는 거래를 후보 측에 시도했음을 암시하는 발언도 합니다.

[해수부 공무원 : 정권 창출되기 전에 문재인 후보한테 갖다 바치면서 문재인 후보가 약속했던 해수부 제2차관, 문재인 후보가 잠깐 약속했거든요. 비공식적으로나, 공식적으로나. 제2차관 만들어주고, 수산쪽. 그 다음에 해경도 (해수부에) 집어넣고. 이런 게 있어요.]

이에 대해 해수부 대변인실은 세월호 인양은 기술적 문제로 늦춰졌으며, 다른 고려는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선체조사위는 그러나, 문제의 발언은 인양이 정치적으로 결정됐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며, 조사 과정에서 들여다 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영상취재 : 김민철, 영상편집 : 하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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