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페라의 방

두 번째 질문

by 이졔롸잇나우




"아주 비싼 것들을 보여주지."


마담 페라의 가느다라한 입술 사이로 사티의 「그노시엔느」 속 피아노 같은 마디를 잃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언가 찾는 듯 돌아선 그녀의 뒷모습. 매끄러운 실크 소재에 레이스장식이 달린 드레스가 몸에 달라붙어 마른 몸을 더 말라 보이게 만들었다. 핑크빛 연기가 서서히 걷히며 방안의 윤곽이 선명해졌다.


썩 내려놓은 직육면체의 고풍스러운 상자 주변으로 뭔지 모를 가루들이 폴폴 날렸고 먼지로 탁해진 상자의 표면을 문지 때마다 반질하게 옻칠한 표면이 드러났다. 정교하고 복잡하게 줄음질된 자개장식이 결을 따라 빛을 반사하자, 문양들이 치 방금 깨어난 것처럼 일렁였다.



쇠로 된 두꺼운 장식고리의 장금을 풀고 상자를 는 순간, 수많은 종류의 거울들이 눈이 시릴 정도로 번쩍이며 저마다 속살대고 있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어딘가 소란한 기분을 느끼며 상자 안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 질문,
타인의 시선과 평가라는 거울을 모두 치워버렸을 때, 거울 앞에 남은 '진짜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손이 가는 대로 집어 든 것은 아무런 장식도 없는 가장 투명한 것이었다. 나를 비추 순간 거울의 표면이 파열되며 까끌한 소리를 내고, 균열이 생겨난 자리를 따라 서서히 연옥의 불덩이 같은 붉은빛이 번져 나가며 반사면을 여러 조각으로 쪼개어 놓았다. 조각난 거울은 비늘처럼 갑게 맞물려 내 형상을 어지럽게 흐트러뜨렸다. 거울 비친 동공은 세로로 쪼개어지고, 내 입에서는 흡사 뱀이 내는 소리 같은 낮고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Visne me aperire?
Θέλεις με ἀνοῖξαι; ·
(Théleis me anoixai?)
너는 나를 열기를 원하는가?"


내 육신은 다시금 모래 바람이 이는 근원의 밑바닥, 거대한 돌을 쌓아 만든 문 앞에 서 있었다. 세월의 바람이 할퀴어간 문위에 새겨진 문양들은 지워지고 마모되어 흔적만 겨우 남아 있었다.


한 걸음 더 다가서자 문 중앙에 있던 둥근 장식이 서서히 움직였고, 근원의 빗장이 굉음을 내며 무겁게 열리기 시작했다. 훅 끼쳐오는 바람에 코와 입을 가리고 눈을 가늘게 떠 문너머의 것을 바라보았다. 아득한 것이 내 앞에 다가섰다. 서서히 땅 위를 덮는 그림자는 끝도 없이 길어지고 있었다.


앞에 놓인 형상을 따라 천히 시선을 들어 올리자, 태양을 등져 갈기 같은 광륜(光輝)을 두른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 나를 주했다.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 뱀의 꼬리를 가진 그 존재는 아름다운 금빛 몸 옆으로 흉측한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꼬리 끝에 매달린 머리는 당장이라도 나를 물어뜯을 듯이 드러냈고 송곳니에서는 끈적한 독이 흐르고 있었다.



한 시대에 왕의 권위와 신성함을 수호하는 수호이자, 동시에 지혜와 인간의 한계를 상징며 교활한 수수께끼를 던져 테베를 괴롭히던 잔혹한 고대의 존재.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무엇을 알고자 내 앞에 섰는가. 나의 근원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였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것. 모든 것의 본질에 나 또한 존재한다. 선과 악, 정(淨)과 오(汚), 명(明)과 암(暗). 상대적인 관념에 사로잡히는 자들은 그것을 나누려는 자들 뿐이다."


경외에 압도된 나의 몸뚱이는 저절로 굽혀져 이마가 모래 위에 닿았다.


"너는 스스로 형벌하는 자"


천지를 흔드는 음성이 내 몸을 내리누르고 이내 엎드린 등 위로 휘갈긴듯한 상처 자국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의 한 손에는 채찍이 한 손에는 놋쇠로된 저울이 쥐어져 있었다.


형상은 껍데기를 벗어내듯 모습을 바꾸었다, 처음 마주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번개 같은 얼굴과 횃불 같은 눈이 드러났다. 몸은 황옥과 같았고 빛나는 흰옷을 걸친 채 모래 위에 서 있었다. 등뒤로 돋아난 여섯 개의 날개 중 두 개의 날개는 발을, 두 개의 날개는 얼굴을 가렸다. 날개에 박힌 무수한 눈들이 모두 나를 향하고 있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스스로에게 내리는 형벌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무수하게 생겨난 채찍자국들 위로 선과 악이 나뉘기 이전 그 선택을 지켜본 자의 서늘한 비늘이 돋아났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Miserum est quod adhuc hominum aspectui inhaeres.

Ἐλεεινὸν δέ, ὅτι ἔτι τῷ βλέμματι τῶν ἀνθρώπων προσκολλᾷ.
(Eleeinòn de, hóti éti tō blémmati tōn anthrṓpōn proskollâi.)

가엽게도 인간의 시선에 연연 하는 것은 너로구나."


마담페라를 응시하는 나의 입에서 낮고 가는 소리가 쉭쉭 새어 나왔다.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얹고 양손가락 끝을 맞부딪히던 그녀의 손이 멈췄다. 그녀의 입꼬리에 걸려있던 미소가 희미하게 사라졌다.


상자 속에 빼곡하던 거울들은 사라지고 어디서 왔는지 모를 금빛 모래와 적막만이 남아있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디지만 정말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