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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som Apr 17. 2022

당연히 안 올 줄 알았던 며느리가 와 주었다.

시가 행사 참석은 어디까지 해야 하는걸까

얼마 전 시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오랫동안 몸이 좋지 않으셨다가 이번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더욱 힘들어지시면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우리가 결혼할 당시, 그리고 남편의 형 결혼식 때도 아프셨기 때문에 며느리들은 한 번도 할아버님을 못 뵈었다.




매 주말도 바쁜 직업을 가지고 있는터라 시가에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는 편이었다.

특히 코로나가 심해지고 나면서부터는 친가고 시가고 다 잘 안가게 되었다.

유독 코로나 확진자가 한명도 없었던 팀 분위기 때문이라도 외식도 잘 안하고 집에만 있게 되었다.


그래도 시부모님 생신, 명절 당일은 꼬박꼬박 가서 식사도 하고 작지만 용돈도 드리고 같이 쇼핑도 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시부모님과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을 하였다.

여전히 명절 전 날 시가에 찾아뵙고 같이 음식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명절의 경우는 원래 없었던 우리 아빠의 제사가 간단하게 생기면서 각자 전날을 보내고 당일에는 시가와 친정을 가는 코스로 일정을 짰다. 원래 우리는 아빠 제사를 안 지냈지만 동생의 병이 깊어지면서 동생의 심신안정을 위해서 제사를 간략하게나마 진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벌써 3년차였다.




그러다가 회사에서 시외할아버님의 부고를 듣게 되었고, 가장 먼저 걱정이 된 것은 시어머니였다.

시외할아버님은 먼 곳에 계셔서 비행기를 타고도 차로 2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곳에 계셨기 때문에 혼자 왔다갔다 하기가 쉬운 거리가 아니었는데 어머님은 돌아가시기 전 주에 이미 병원을 다녀오셨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 완치도 된지 얼마 안되셨기 때문에 건강이 염려되었다.

감정적으로도 많이 힘드셔서 더 괴로워하시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나는 바로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언제든 갈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럴 수 있고, 그러고 싶기 때문이었다.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게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참석의사였다.


그런데 남편 형(아주버님, 이 놈의 호칭은 입에 붙지를 않는다)이 내가 간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랐다고 하였다. 당연히 안 올 줄 알았기 때문에 시가에 있는 강아지를 돌봐줄 수 있는지 물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나한테는 상당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가족상을 당했는데 나는 당연히 안 올 줄 알고 강아지 케어를 맡긴다고?


어머님도 내가 간다는 소식을 듣고 안 올 줄 알았는데 와준다니 고맙다고 하셨다고 했다.

남편이랑 둘이 이야기하면서 내 이미지가 시가에 어떻게 비춰졌던 것일지 대강 알 수 있었다.




장례식장은 정말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이 시외할아버님의 자녀분들이라는 것에 새삼 놀라웠다.

나는 많은 형제를 가진 세대가 아닌지라 10명이 넘는 형제(남편 이모,이모부님)를 소개 받으면서 정신이 없었다. 이름과 얼굴을 외우느라 정말 혼이 났다.


처음 보는 조카며느리에 이모님들은 이것저것 물으시다가도 손님이 오시면 후다닥 밖으로 나가셨다.

그 와중에 나는 어머님, 아버님이 식사시간이 지나가는데도 계속 바깥에 계신 것이 걱정이 되었다.

아버님은 그래도 친지분들과 이야기하며 앉아서 식사를 좀 하시는 것 같았는데 어머님은 들어오실 줄을 몰랐다.


그래서 남편과 손잡고 이미 먹은 점심을 한 번 더 먹기로 했다.


"어머님, 저희 점심 안 먹었는데 같이 먹어요."


어머님은 손님들을 신경쓰시다가도 우리가 점심 안 먹었다는 말에 테이블에 앉으셨다.

밥이 차려지고 어머님은 이야기를 하시며 허겁지겁 식사를 하셨다.

어머님 등을 쓸어드리며 걱정했다고 말씀을 드리자, 3년 전 아빠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 솜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했다는 어머님의 말씀에 살짝 목이 막혔다.




우리 가족은 남들이 보기엔 신기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가족이었고, 그래서 남편 시가쪽의 분위기를 처음 접했을때는 정말 신기했다가 나랑 안 맞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표현하는 방식도 말투도 분위기도 달랐고 특히 '말'에 상처를 많이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은 가족이라고 친지들 사이에서 시부모님이 제일 편했다.

먼 길 와줘서 고맙다는 말도, 식사를 챙겨주시는 말도 너무 애틋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서서히 가족이 되어 가는걸까?

그러나 나는 내심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히' 안 올 줄 알았던 사람이 '와준' 것에 대한 감사함.


난 그 선을 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더 서로에 대해 '당연함'을 느끼지 않는 선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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