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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행과 저녁 국밥

25.11.02

by 이준수

입동이 오기 전 마지막 주말에 집에 있는 건 가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바람은 조금 쌀쌀하지만 하늘은 맑고 공기는 깨끗하다. 이런 날에는 단풍을 보러 가야 한다. 꺼지기 전 밝게 타오르는 촛불처럼 활엽수의 가을은 울긋불긋하다.


아침에 게으름을 피우다가 점심을 먹고 나니 어느 덧 오후 2시. 이럴 때는 가까운 산에 간다. 우리 집에서 가장 만만한 산은 대관령이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대관령 자연휴양림까지 이십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차가 막히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대부분 십 오분이면 간다. 강릉은 아웃도어를 즐기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드문 도시다.


배낭에 바나나와 익숙한 이름이 잔뜩 적힌 칸초 지퍼백(4개나 뜯었으니까)과 2025 제철 포카칩 두 봉과 스니커즈와 빼빼로 하나를 넣는다. 오왈라 플래그십 텀블러에 물도 가득 담고 손수건도 챙겼다. 내 신조는 '등산 식량은 평소의 두 배'다. 산행은 풍요로워야 한다.


출발에 앞서 칸초를 입에 하나 넣는다. 칸초에 적힌 이름은 '현우'다. 꽤 씩씩한 이름이 뽑혀서 기분이 좋다. 다리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다. 십 분 단위로 알람을 맞춘다. 알람이 울릴 때마다 칸초 하나씩. 먹으면서 걷는 길은 무조건 좋다.


길가의 둥글레 잎이 연한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둥글레 차가 마시고 싶어졌다. 둥글레 구경을 하다보니 어느덧 풍욕대. 바람으로 몸을 씻는다는 곳이다. 저 멀리 동해에서 불어온 바람이 태백산맥에 오르는 그 길목에 있다. 가만히 있어도 바람 결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강하고 상쾌하다. 풍욕이라는 이름을 참 잘 지었다.


느긋하게 작은 물줄기를 따라 내려온다. 커다란 나무가 쓰러져 있다. 뿌리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돌과 흙이 뭉텅이로 합쳐져 같이 쓰러져 있다. 구멍이 파인 자리에 새 풀이 돋아나 있다. 세계는 끝없이 움직인다. 죽는 것도 태어나는 것도 없다. 그저 형태를 달리하며 무한히 순환한다. 나도 그 순환의 일부다. 근육에 힘이 들어갈 때 부지런히 순환의 팽팽함을 느끼면서 산다.


성산에 내려와 잠시 기다렸다가 '숲속집' 순대국밥을 먹는다. 브레이크타임 땡! 끝나자 마자 앉아서 먹는데 십 분 만에 좌석이 다 찬다. 나갈 무렵에는 웨이팅이 이미 길다. 해는 떨어졌고, 나는 산행을 끝냈고, 배가 불렀다. 나는 가을을 소홀히 보내지 않았다. 그럼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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