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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위 작은 태양 두 개

2025.11.13

by 이준수

귤 두 개를 받았다. 네임펜으로 웃는 얼굴이 그려진 주황색 귤. 나는 귤을 먹지 못하고 책상 위에 눈사람처럼 쌓아두었다. 웃고 있는 귤사람이 탄생했다. 진짜 별 것 아닌데 나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네임펜으로 서툴게 그린 선 몇 개가 주는 행복은 컸다.


나는 귤사람을 모니터 앞 컵받침에 놓았다. 은근히 눈길이 갔다. 볼펜을 집다가 한 번, 연필을 깎다가 한 번. 그런 식으로 스무 번은 귤사람을 보았다. 특히 쉬는 시간에는 귤을 삼 분 정도 보고만 있었다. 보통 자잘하게 시간이 남으면 폰을 만진다. 괜히 블로그를 기웃거리고, 환율 변화를 체크한다(달러도 없으면서). 그야말로 버리는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은 적어도 삼 분 이상 귤을 보았다.


귤멍은 꽤 좋았다. 무엇보다 눈이 아프지 않았다. 디지털 화면은 눈이 쉽게 건조해진다. 별로 중요한 내용도 아닌데 하릴없이 보게 되는 것이다. 반면 귤은 눈이 편하다. 귤은 스스로 빛을 내는 광원이 아니므로 눈이 부실 일도 없다. 그러니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은 분은 귤멍을 시도해도 좋을 것이다. 귤이 없다면 밤이나 모과 등 그 계절에 나는 자연물을 가져다 두어도 괜찮다. 제철에 나는 것들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띄고 있으므로 보기에 알맞다.


귤사람은 내일까지만 보다가, 나누어 먹을 것이다. 보기 예쁘다고 맛난 열매를 썩힐 수는 없다. 오후 졸릴 무렵에 달콤한 귤을 먹으면 뇌가 깨어나겠지. 1월에 제주행 비행기를 끊어두었다. 감귤밭에서 한 나절 귤을 따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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