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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은 왜 할까

2025.11.16

by 이준수

오대산 가는 길에 장기하 노래를 듣는다. 제목은 '등산은 왜 할까'. 내가 무척 좋아하는 노래다.


"등산은 도대체 왜 하는 걸까 / 뭐하러 힘들게 높이 오를까 / 어차피 내려올 걸 알면서도 / 뭐하러 그렇게 높이 오를까."


흠, 바로 그것이다. 내려올 걸 알면서도 가는 것. 힘들 줄 알면서도 오르는 것. 그냥 아무 이유가 없다. 사실 사는 것도 비슷하지 않나. 죽을 줄 알면서도 다들 나름 열심히 산다. 살찔 걸 알면서도 고칼로리 음식을 먹고, 깨버릴 걸 알면서도 술을 마신다.


산은 처음부터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오르라고 한 적도 없고, 몇 시간 내에 정상을 찍으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딱 내가 걸음만큼만 길을 내어준다. 내가 멈추면 산도 멈추고, 다시 걷기 시작하면 산도 이어진다.


땀이 나고, 허벅지 근육이 팽팽해지는 것을 두고 '힘들다'라고 표현하는 건 조금 이상하다. 그런 신체 변화를 맞이하기 위해 등산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종류의 운동은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괴롭히는' 행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를 운동으로 괴롭힐 때 결과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괴로워야 행복한 역설이다. 그럼 그 괴로움은 괴로움이라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 '행복 전 단계'라고 해야 하는가.


금강사 앞에서 물을 마셨다. 손바가지에 고인 물은 달고 시원했다. 목적지인 식당암에서 '누드 빼빼로'를 먹었다. 커피빵과 오예스도 먹었다. 평소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 간식도 등산을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등산은 왜 할까. 음식을 세 배 더 맛나게 먹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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