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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엘리베이터 두 번의 마음

2025.11.26

by 이준수

35km를 운전해서 퇴근하면 일순간 피로가 밀려온다. 도착하고 시동을 끄는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소리가 빠져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매일 계단을 걸어 올라가기로 약속했는데 약속을 안 한셈 치고 싶다.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 앞에 선 순간이 가장 고비다. 타느냐 마느냐.


엉덩이와 허리에 숨어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감각이다. 퇴근이라는 건 참 이상도 하지. 온종일 움직였는데 마지막에서야 몸의 무게가 드러난다. 눈 감고 계단 쪽으로 한 번만 몸을 틀면 되는데 매번 고민한다.


"그냥 오늘만 쉬자."

"아냐, 올라가야지."


그 짧은 시간에 두 생각이 수십 번 교차한다. 첫 계단을 밟는 그 한 걸음이 유난히 멀게만 느껴진다. 오늘은 졌다. 편안하고 쾌적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부드럽고 친절하게 작동하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는 조용하고 탑승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타협하고 말았다'는 가벼운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외투를 벗고 소파에 몸을 푹 던졌다. 하루가 통째로 푹 내려앉았다. 눈을 감으니 그대로 이어지는 짧은 잠. 고요한 거실의 공기가 푹신한 이불이 되어 주었다. 이십 분의 단잠에 필요한 건 그저 고요함이었다. 눈을 뜬 이후의 세상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창밖의 빛은 어두워졌고, 내면의 컨디션은 한층 톤이 밝아졌다.


저녁을 먹고 아내와 3km를 뛰었다. 뛰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렇지만 엘리베이터는 아까처럼 포근해보이지 않았다. 원래 전등색이 밝은 하얀색이었나. 퇴근길에는 따뜻한 전구색에 가까운 느낌이었는데. 격한 숨을 내쉬며 타는 엘리베이터는 기계적으로 잘 움직였다. 불편한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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