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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 Dec 11. 2020

미국 노숙인의 의식주 - 주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 - 26

의식주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당연히 주였다. 주거가 없거나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노숙인인 것이다.


스트레이는 노숙인 쉼터에는 전혀 가지 않았다. 미국의 노숙인 쉼터는 대부분 종교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배에 참석해야만 머물 수 있는 쉼터도 많았다. 스트레이는 투철한 무신론자이고 종교적인 분위기를 싫어한다.


잘 곳을 구하는 일은 항상 큰 문제였다. 스트레이는 폐건물, 육교 아래, 옥상에서 많이 잤다. 2008년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는 버려진 고층빌딩에서 6개월간 지냈다(6개월 동안 옷을 갈아입지 못했던 것이 혹시 이 때일까?). 버려진 교회, 심지어는 버려진 장례식장에서도 지내 봤다.


뉴올리언스에 갔을 때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휩쓸린 후 제대로 복구되지 않은 빈민가에서 지냈다. 스트레이가 친구들과 함께 머물렀던 빈집의 문에는 스프레이로 X 표시가 돼 있었다. 카트리나 때 시신이 발견된 집이라는 뜻이었다. 스트레이와 친구들은 개의치 않았다. 집안에서 열쇠를 찾아냈고, 외출할 때는 마치 자기 집처럼 문을 잠그고 다녔다.


폐건물에서 귀신을 본 적은 없느냐고 내가 농담 반으로 묻자, 스트레이는 자신은 전혀 그런 적이 없지만 다른 노숙인들 중에는 귀신을 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노숙인들은 하루하루 살아남느라 바쁘기 때문에 귀신에 대한 걱정을 할 여유는 없다고 한다.


콜로라도 주 포트콜린스에 있을 때는 길에서 만난 무정부주의자들이 스트레이를 코뮌(생활 공동체)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스트레이는 그곳에서 몇 주 동안 살았다.


- 그 사람들이 너랑 이야기를 해 보고 너도 무정부주의자라는 걸 알게 돼서 데려간 거야?

- 이야기를 해볼 필요도 없었어. 원래 젊은 떠돌이들은 대부분 무정부주의자니까.


스트레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가장 신기하게 느꼈던 점 중 하나는 스트레이가 처음 만난 사람의 집에 머문 일이 많다는 것이다. 히치하이킹을 할 때 태워준 운전자가, 또는 처음으로 찾아간 지역에서 대화를 나누게 된 또래가, 자신의 집에 며칠에서 심지어는 몇 주까지도 묵게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가끔씩 옛날이야기에서 나그네가 낯선 사람의 집에 묵어가는 장면을 연상하기도 했다. 지금 한국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런 일이 가능했던 첫째 이유는, 미국에서는 삶의 형태가 더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한국에서는 ‘성실한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과 ‘직업을 잃고 사회에서 낙오한 노숙자’라는 이분법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둘 사이의 경계가 여러 의미로 덜 선명한 것 같다. 당시의 스트레이처럼 화물열차에 숨어 타고 떠돌며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호보hobo라는 단어가 따로 있을 정도다. 돈이 꼭 필요할 때만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일거리를 찾아 일하지만 집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호보가 아니라 비교적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조차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차나 텐트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버스킹을 하던 노숙인들이 음악으로 성공해서 음반을 내고 외국으로 투어를 다니는 경우도 있다. 특이한 경우이기는 해도 키아누 리브스 같은 유명인이 노숙을 하기도 한다.


낯선 사람과도 쉽게 말문을 트는 문화, 잘 모르는 사람과 룸메이트가 되어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문화도 원인일지 모른다. 스트레이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생각한 점인데, 미국에는 노숙인을 경계하지 않고 잘 대해 주는 사람이 한국보다 많은 것 같다(다만 한국보다 더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당시의 스트레이와 마찬가지로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젊다 못해 어린 노숙인들이 많은 것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노숙인이라고 해도 나이가 어리면 더 딱해 보이고 경계심도 덜 들지 않을까. 호기심 많은 또래들이 먼저 말을 걸기도 한다.


노숙하는 동안 스트레이는 노숙인 친구도 많이 사귀었지만 노숙인이 아닌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파티에도 수없이 초대되어 갔다. 미국에서는 파티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고, 서로 아는 사람들과 모르는 사람들이 뒤섞여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일 뿐이다. 스트레이는 더러운 옷을 입은 채로 파티에서 공짜로 먹고 마셨다. 그리고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새로운 친구들 중 여럿은 기꺼이 스트레이를 집에 머물게 해 줬다. 한국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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