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산 약사암 종각
3월 18일,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을 불과 이틀 남기고 성남을 비롯한 수도권에 큰 눈이 내렸다. 때아닌 폭설이라 밤새 내린 눈 때문에 아침 출근길은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잦았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늦은 시기에 발령한 대설주의보라 했다.
3월 초에도 전국에 큰 눈이 내렸다. 만물의 생명이 깨어난다는 경칩을 불과 이틀을 앞둔 시기에 말이다. 그때 구미시에 있을 때였는데, 마침 금오산 설경이 그렇게 기가 막힌다는 말에 주저함 없이 산행했다. 개구리가 깨어나 개울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면, 새하얀 상고대나 눈꽃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조바심에 서두른 것인지 모르겠다.
과연 겨울 금오산의 상고대와 약사암 비경은 무척 신비로웠다. 산 초입 얼어붙은 대혜폭포와 깎아지는 듯한 절벽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난 숲길은 마치 겨울왕국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왔다. 게다가 도심 한복판에 우뚝 솟아난 금오산의 기세등등한 모습이 첨단산업단지라는 구미시 이미지와 사뭇 대비되어 인상 깊었다.
노란 산수유꽃이 피기를 기다리던 때, 대신 하얀 눈꽃을 보게 되니 금오산의 기억을 꺼내놓는다.
금오산이 소재하는 구미시 지명은 어떤 이유로 그리 지었는지 문헌의 기록이나 구전으로도 전혀 알 길이 없다. 한자로 거북 구(龜)와 꼬리 미(尾) 자를 쓰지만, 여기에는 아무런 뜻이 없다. 그저 음이 같은 이두문자를 차용한 것으로 한자 뜻 거북꼬리와는 전혀 상관없다. 하지만, 구미시는 지명의 한자(龜尾) 그대로 거북이 꼬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 마스코트를 거북이로 삼았다. 이름도 ‘토미’라고 했는데, 첫 글자 T는 거북을 뜻하는 Tortoise에서 따왔다.
성남시에도 같은 지명의 동네 이름이 있다. 분당구 구미동이다. 구미동은 마을 뒷산 모습이 거북의 꼬리 부분을 닮았다고 해서 거북 구(龜)와 꼬리 미(尾) 자를 써서 구미(龜尾)라고 불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일제는 이곳 지형이 명당이라며 정기를 막는다고 하여 쇠말뚝을 박고 산혈을 끊어버렸다. 마을 이름도 지역 향토와 문화가 어려있는 거북 구(龜) 대신 그저 쉬운 글자 아홉 구(九)로 바꾸고 구미(九美)라고 고쳤다. 그랬더니 마을 유래가 불로장생하는 십장생 중 하나인 거북과는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버렸다. 바로 아홉 개 성씨가 아홉 개의 마을을 이루며 아름답게 살아가서 구미(九美)라고 부른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다.
금오산 입구가 구미시청에서도 가까워 차를 몰고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을 올랐다. 케이블카를 타고 발밑에 금오산성 성문을 내려다보며 산 중턱까지 쉽게 올랐다. 촉박한 시간에 겨울 산행을 만끽할 수 있으려면 아무래도 이런 반칙을 쓸 수밖에 없다. 금오산성은 고려시대 금오산 천연의 암벽을 이용해 만들어진 성이다. 경상도에 위치하다 보니, 왜적이 들끓으면 백성들은 금오산성으로 피난을 떠나곤 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대혜폭포가 바로 보인다. 절벽 높이 28m에서 떨어지는 폭포 소리가 금오산 전체를 울린다고 하여 명금폭포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겨울 끝자락에서 폭포는 물소리를 내지 못하는 거대한 고드름으로 박제되어 있었다.
금오산은 높이 976.5m로 구미시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예전에 거대하게 우뚝 솟은 산을 보고 대본산(大本山)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한 스님이 산행 중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金) 까마귀(烏)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金烏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편, 금오산은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이기도 하다. 산 자체로도 폭포와 여러 유적지가 있는 명산이지만,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더불어 공업도시 배후로 휴양 관광 목적으로 지정되었다.
폭포를 지나서 산 정상 약사암까지 오르는 길은 급한 산비탈이다. 오르는 내내 가파른 경사라 눈에 미끄러지기 일쑤다. 하지만, 함박눈으로 온 세상이 새하얗게 변하는 절경에 넋을 잃어 그런 수고로움은 금세 잊는다. 금오산에 오르면 구미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다고 하였지만, 이처럼 눈보라에 폭설이 내리는 때에는 기대할 수 없다.
금오산 오르는 길 발밑에서 눈발이 모진 바람을 타고 솟구치듯 중력을 거슬러 올라왔다. 하늘을 보면 눈은 한참 더 퍼부을 셈인지 잿빛을 잔뜩 머금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금오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눈발이 사위를 감싸며 어지럽게 흩날렸다. 바위틈마다 세찬 눈바람에도 소나무는 꿋꿋하게 서 있었다. 추운 겨울에도 푸른 기상을 잃지 않으니 과연 세한삼우 중 으뜸으로 쳐도 무방했다.
금오산에는 신갈나무나 굴참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찼으며, 굵은 가지는 바짝 말라 거센 바람에 건들건들했다. 그 나뭇가지마다 쌓인 새하얀 눈들이 매서운 바람에 얼어붙어 말 그대로 상고대의 장관을 이뤘다. 미처 떨어지지 못한 나뭇잎은 눈에 엉겨 붙어 커다란 눈 뭉치가 되었다. 가뜩이나 바짝 마른나무는 우둠지부터 밑동까지 쌓인 눈 무게에 휘청인다. 나무도 제 시절을 깨달아야 한다. 짙푸르렀던 나무 잎사귀의 풍성함, 그 과거의 미몽에 매달리다가는 이처럼 한 겨울에 제가 버티지도 못할 무게로 버거워한다.
매서운 삭풍엔 오히려 미련 없이 지난 나뭇잎들을 모두 떨구고 헐벗은 나무가 개운하다. 묵은 번뇌를 훌훌 털어 버린 듯 잎사귀 없는 나목(裸木)들은 거친 고동색 등걸에 하얀 눈을 묻혀 모두 새하얀 자작나무가 되었다. 싸각싸각 밟히는 낙엽은 눈과 함께 언 땅속으로 삭아져 순이 움틀 때 보탬이 될 것이다. 다소 늦게 출발하고 눈까지 내려서인지 홀로 찾은 금오산 산중은 적막했고, 거센 바람 소리만 들려 을씨년스러웠다.
능선에 차디찬 암벽 자락을 손으로 부여잡고 올라갔다. 드디어 정상에 오르고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주변을 둘러본다. 가쁜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이 산길 이름이 역시나 할딱 고개란다. 그래도 고진감래라, 할딱 고개를 지나면 바로 하얀 눈으로 세상을 빚은 천계가 나타난다. 날이 청명하다면 낙동강을 따라 푸른 동해 어디까지라도 시선이 닿는 한 그 끝까지 볼 수 있다. 금오산은 정상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사찰이 있다. 약사암이다. 사실 눈바람을 뚫고 금오산에 오른 이유도 약사암을 두 눈으로 보기 위함이었다.
산 정상에서 잠시 쉬었다 약사암으로 내려가는 길은 땅이 갈라지듯 두 절벽 사이를 지나야 한다. 사찰로 들어서는 일주문 양옆으로 치솟은 절벽이 마치 험준한 금오산을 지키는 수호신 같다. 눈을 부릅뜨며 암자를 지키는 사천왕처럼 위압적이다. 마치 세상 꼭대기 감춰진 세상으로 들어서는 비밀의 문 같다. 협곡의 위태위태한 바위틈을 지나니, 드디어 이 세상 아닌 설경 속에서 약사암을 보았다. 여태 살면서 이런 비경을 또 볼 수 있을까 되뇌어보았다. 때 묻은 세속과 전혀 다른 순백의 죄 없는 세상이다. 이 암자에 머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금오산 기암괴석과 멋진 풍광 속에서 스스로 도를 깨우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런 천 길 낭떠러지 위, 암자에 오르는 것만으로 이미 도를 깨닫기 위한 수행심이 지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약사암의 유래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근처 암벽에는 신라시대 조성된 마애보살입상이 있고, 법당 안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약사암에는 비경의 정점을 찍는 종각이 있다. 이 종각은 또 다른 암봉에 세워져 있으며 대웅전과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사찰에서 울리는 종소리는 억조창생을 구제하는 복음이다. 만약 금오산 정상에서 타종한다면 중생을 구하는 외침은 시방삼세 멀리멀리 울려 퍼질 것이다. 한동안 종각 앞에 서 있었더니 마치 종소리가 울린 듯했다. 동시에 종소리에 눈가루가 창공으로 이리저리 산란하며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