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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리 Sep 06. 2023

방울토마토 도둑! 어떡하지

너무 자연스러운 범행

그깟 방울토마토 한 알에 이렇게까지 글을 쓸 일이냐!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독자 분들께서는 나가셔도 좋아요. 


하지만 제게는 그깟 방울토마토가 아니거든요?





올해 봄, 방울토마토 3 줄기를 심었고 더디게 자라서 이제애 거의 키 150cm가 되는 나의 소중한 방울토마토가 있습니다. 무거운 2L 물을 1.5일에 한 번씩 주고 있는데 꽃도 더디게 피고 열매는 지금까지 약 20개도 못 땄을 거예요. 근데 그래도 며칠 전에 빨갛게 열심히 익어가는 중인 방울토마토 2개를 발견했습니다. 줄기의 가장 밑 부분에 숨어서 자라고 있었죠.


근데 이 토마토가 1알이 언젠가 없어지더니, 오늘 아침 새벽, 나머지 한 알이 도둑에 의해 없어지는 걸 증거 포착했습니다. 하 나 참 어이가 없네요. 2알 중 한 알이 없어졌을 때는, 그냥 '아 내가 잘못 봤었나?', '내가 먹었었나?'하고 가볍게 넘겼었는데 오늘은 아주 대놓고 방울토마토 도둑이 자연스럽게 따 먹고 가더라고요.





도둑은 옆 집 할머니입니다.





열매가 잘 열리지 않아서 나도 먹기 힘든데, 간혹 가다 1,2개씩 열리는 방울토마토 마저 옆집 할머니 입에 쏙 들어갔던 것입니다. 만약 50개 넘게 열려있는 방울토마토 중에서 한 개를 따먹었다면 모르겠는데, 딱 한 알 있던 거, 나도 익기를 기다리고 있던 게 남의 입에 들어가다니요!


사실 몇 달 전에도 따먹는 걸 발견하고 속이 부글거렸지만, 그때는 그냥 얆은 울타리 하나치고 넘어갔었습니다. 그러더니 도둑이 제 발 저렸는지, '지나가다 맛이 어떤가 먹어봤는데 씨알도 작고 별 맛없더라'하면서 한마디 하더군요. 자기가 따먹어서 울타리 쳐놓은 거냐며... 한 달 전쯤 그 울타리는 방울토마토가 무성히 더 자라라고 제거했습니다. 근데 다시 할머니가 따 먹기 시작하네요. 





복도형 아파트에 살다 보니 보안을 위해서 현관문 위에 CCTV를 달아뒀는데, 덕분에 방울토마토 도둑의 흔적을 너무나 정확하게 알 수 있었죠. 





나는 왜 열이 받는가!라는 포인트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전 '공정성, 정의'에 대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사는걸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부당한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저런 비도덕적인 행동을 남에게 하는 것도 아닌, 나의 작지만 소중한 것들에게 행하는 것을 보니 속이 부글댑니다. 남이 공들여 키운 것을 지나가다가 망설임 하나 없이 거의 반사신경처럼 '엇 다 익었네? 냠냠!' 하는 수준으로 보입니다. 비단 방울토마토 한 알이 아니라, 풀 한 줄기라도, 휴지 한 장이라도, 남의 소유물에 손대는 것을 용납하기 힘듭니다. 남의 도덕 수준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순 없지만, 내가 당한 이 비도덕적 행위로 인한 나의 기분 상함과 혈압 상승은 어떡해야 할까요?





다른 생각도 있습니다.


괜히 말 걸었다가 이웃 주민으로 살기에 

더 불편해질 수 있으니 그냥 모른 척할까?

CCTV 있다는 것만 뉘앙스를 풍겨볼까?

토마토가 사라졌네 어디 갔지? 

새 같은 좀도둑이 있나? 이렇게 말을 흘려볼까...





그리고 제 안의 또 다른 나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나 왜 이렇게 소심하냐'

'마음이 넓어야지'

'무개념인 사람은 상대하지 않는 게 더 속 편할 거야'

'작은 거에 신경 쓰지 마'





하. 아침부터 사소하지만 내게는 소중한 방울토마토 때문에 신경 쓰는데 다소 시간낭비 같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글로 풀어내면 그래도 좀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을까 해서 적어봅니다. 




도대체 다른 사람 소유의

딱 한 알 빨갛게 남아있던 방울토마토를 

따먹을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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