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화근이었다. 많이 마시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목걸이가 없어져 있었다. 열쇠고리도 없었다. 그리고 돈도 좀 빠져나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5월까지 팝업스토어를 연다. 입장예약은 매주 금요일 6시. 요즘 7시까지 일하다 보니, 팝업스토어 예약을 계속 놓치고 있었다. 그러다 짬이 나서 지난 금요일에 예약 페이지에 들어갔다. 대기 번호 6000번이 떴다.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술에 취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새벽에 암표상을 찾아 기웃거리다, 프로필 사진도 없는 어떤 트위터 계정 사용자에게 10만 원을 송금했다. 입금 후 그는 입장권을 취소당했다고 했다. 환불은 해주지 않았다. 입장권이 정말 취소된 건지, 판매자가 거짓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 ‘멍청 비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맨 정신에 100만 원 넘는 돈을 떼인 적도 있었다. 때는 인턴쉽 중이던 2018년 여름이었다. 홍콩에서 내가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가 예정돼있었다. 인턴 첫 월급을 받았을 땐 이미 티켓팅이 끝난 후였다. 고백하건대, 나는 암표라도 구하고 싶었다. 트위터의 한 판매자가 100여만 원에 Meet & Greet까지 포함된 홍콩 콘서트 VIP표를 팔겠다고 했다. 나는 첫 월급을 그에게 보냈다.
보내 주겠다던 표가 소식이 없었다. 판매자는 홍콩에 도착하면 주겠노라 이야기했다. 콘서트 하루 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판매자에게 DM을 보냈다. 판매자는 표가 없다고 했다. 나는 바쁜 인턴쉽 중에 콘서트만을 위해 홍콩까지 온 것이었다. 내가 사정하자 그는 호텔에 가 자기 연락을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호텔에서 밥도 먹지 못하고 핸드폰만 붙잡고 있었다. 해가 질 때쯤, 판매자에게서 DM이 왔다. 그가 어떤 주소를 알려줬다. 당장 그곳으로 오면 VIP 표는 아니지만, 콘서트 일반 티켓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판매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택시를 잡아 달려갔다.(당연한 얘기지만 절대 이러면 안 된다! 얼마나 위험한지 그땐 생각지 못했었다.) 도착하니 판매자는 없었고, 판매자의 전달책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가진 현금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돌아가는 택시비만 남기고 가진 돈을 탈탈 털어 그에게 주었다. 이미 100여만 원을 주고도 50여 만원의 현금을 더 건네고서야 정가 십여만 원의 콘서트 2층 좌석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다음날 친구의 쌍안경을 빌려 콘서트장에 들어갔다. 벅차게 좋았다. 나도 모르는 새 쌍안경 뒤로 눈물이 흘렀다.
8월의 홍콩은 뜨거웠었다. 따끔한 햇빛이 아스팔트 바닥을 쪼아대고 있었다. 인턴 때 나는 제일 일찍 출근해서 제일 늦게 퇴근했다. 그 와중에 시간을 내서 홍콩까지 다녀왔으니 지금 생각해도 보통 열정이 아니었다. 내 피가 아직 따듯한 이유는 그 열정 때문일 것이다. 건조한 사무실과 서늘한 집만 오가며 살고 있지만, 여전히 내 안에 8월의 홍콩이 있다. 그 뜨거움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어서 돌아오는 금요일에 다시 팝업스토어 입장권을 예약해 볼 생각이다. 물론 이제 암표는 사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