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의 글쓰기 노트 10
글쓰기의 과정-실습 3 표현
아래 에세이는 '표현'을 연습하기 위해 고쳐쓰기를 하지 않은 초고입니다.
발자국
이란
돌체 콜드브루 그란데. 주문해서 기다린 시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컵 안에 음료는 사라졌다. 차가운 얼음만이 컵 안에서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료를 마시고 일어서자 해질녘이었다. 하늘은 채색한 종이처럼 붉게 물들어갔다. 대학원 중간고사가 끝났다. 입학의 기쁨도 잠시였고 시험 과목들을 며칠째 복습하니 속이 울렁였다. 그러다 막상 시험 날이 되니 모든 것이 아득했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시험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렇게 시험을 마치고 다음 날, 늦은 오후에 비빔냉면을 먹었다. 한없이 매운 그 맛에 머릿 속이 아찔해졌다. 무언가 자극이 필요했다. 그렇게 자석처럼 이끌려 걸음을 옮기며 얼굴 하나를 떠올렸다. 고모였다. 그 얼굴이 며칠 동안 나의 마음을 맴돌고 있었다. 침묵은 때로 깊은 평화와 닮아있다. 하지만 문득 깨고 싶었다.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그늘 아래서는 모든 것이 평화로웠고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들어서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세상 속에 홀로 서야 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지 모두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대학 때 등단을 했지만, 소설을 더 써낼 자신이 없었다. 나에게는 십여년의 긴 습작시간이 존재했지만, 절대적 경험은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쓰지 않았다. 대신에 영어를 공부하고 자격증을 취득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안정된 생활이 나의 바램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안정이 되면 가족도 친구도 이전처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러한 과정을 일종의 준비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어쩌면 쓸 데 없는 완벽주의였을지도 모르겠다. 인간관계란 늘 안정되고 평화로운 상태에서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로 인해 버텨낼 수 있다. 나는 공부를 했던 그 시간 동안 결과를 얻기 위해 단절을 택했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잘 이어지기 위한 노력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은 들 사정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추억은 예쁘게 망가지지 않고 내 안에 남겨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단절이 상대에게는 벽이 될 수 있음을 다시 만났을 때 알 수 있었다. 고모는 내가 없는 사이에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았다. 많이 아팠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힘든 시기에 곁에 없었다. 고모를 만나지 않는 동안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른 곳에 있었다. 그 세계를 고모는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고모가 문득 내 안에 밀려든다. 그때 고모는 나의 손을 잡고 서점에서 동화책을 사주었다. '인어공주'였다. 나는 한글을 잘 몰랐고 그 책을 읽으면서 한글을 익혔다. 나는 일산의 그 서점을 기억하고 있다. 그 동화책의 그림들과 활자가 인쇄된 두꺼운 종이의 매끈한 감촉을 아직 잊지 않고 있다. 그 활자들을 더듬더듬 읽다가 나중에는 의미를 헤아리며 몇 번을 다시 읽었던 것을 떠올린다. 책을 사주었던 고모는 아마 내가 그 책을 통해 느꼈던 감동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순간이 고모와 서점에 들어서서 한 권의 동화책을 만났을 때 시작되었다. 눈이 내리던 날에 함께 길을 걷던 기억도 있다. 고모는 나에게 따스한 음식들을 사주었다.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은 순수한 호의였던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의 벽은 어디에서 쌓이는 것일까. 어쩌면 상대가 사랑하는 것은 결국 내가 아닌 그 자신일 것이라는 불신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질문한다. 지금 왜 너는 내 옆에 있는가라고. 필요로 촘촘하여 이어진 사회관계 속에서 너는 무슨 필요로 나의 곁에 머무는가 거리를 두고 계산을 한다. 그저 함께 하는 그 사람이 나의 곁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 마음만으로 충분해질 수 없는 것은 지나치거나 왜곡된 자기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좀 힘들 때 기대고 그렇게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이 이어질 수 있다. 나는 고모에게 전화를 했다. 연락한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도 마치 어제 만난 듯이 반가워했다. 나는 무언가 따져보며 풀어보려 노력했지만 고모는 이미 모든 것을 풀어 놓은 상태였다. 지난 시간들 속에 끌어낸 고모와의 시간이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새겨지는 발자국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