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이랑 Jul 23. 2019

보호자가 된다는 것

한 지붕 두 가족 - 방학

우리 집에 유일한 초등학생, 첫째 조카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아래층에는 언니, 형부, 조카 둘, 위 층에는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우리는 한 지붕 아래 함께 살고 있다

올해 초 일을 시작한 언니를 대신해 엄마가 출근 전 조카들을 등교(원)시켜주고 있었다.

퇴사를 하면서 반자발적으로(반강제적이 아닌 반자적이란 표현을 쓰고 싶다.) 내가 그 일을 맡았다.

자영업을 하는 엄마와 아빠는 한 곳에서 일하는데 엄마가 조카들을 데려다주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을 집에서 쉬는 딸이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 한 가지 이유이고,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나름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라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3주간 나름 아침마다 조카들과 호흡을 맞추어 가며 '등교(원) 업무'를 원활히 해내고 있.


러던 중 오늘 첫째 조카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유치원 갈 준비를 하는 동생을 보며 신이 나서 방학이라고 춤을 추며 좋아했다.


학교를 가지 않는 조카는 오전 내내 집에 혼자 있어야 하고, 점심도 혼자 챙겨 먹어야 하고, 차량 운행을 하지 않는 영어 학원에도 혼자 걸어서 가야 한다.


얼마 전 언니는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시 한 달간 만 점심을 챙겨줄 수 있냐는 질문이었다.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조카들의 '등교(원) 업무'를 하겠다고 자처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개인적인 일이 있을 땐 엄마가 해주겠다는 일종의 '자유권'이 보장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심은 다르다. 엄마가 바쁠 땐 그렇게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울 수 없기에 이 약속에 따르는 제약이 얼마나 클지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떠한 것도 기약하지 못하는 마음 무거운 대화를 나누고 어영부영 지나가는 듯했지만 나는 한 달간의 나의 삶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지난 주말 여름휴가를 다녀온 언니는 내일 어떻게 되는 건지 묻는 나의 문자에 미처 답도 하지 못한 채 이른 저녁부터 깊은 잠에 들어버렸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평소와 달리 걱정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사실대로 혼자 걸어서 학원을 가야 한다는 걸 말하면 엄마가 걱정할 것이고, 그 부담이 온전히 나에게 올 것을 예상한 언니가 살짝(?) 거짓말을 한 것 같다. 아침이 되어서야 언니는 점심은 알아서 먹을 수 있게 준비해뒀으니 오후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영어학원 첫 날인 오늘만 데려다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8시 반 둘째 조카 등원 준비 및 등원

13시 첫째 조카 점심 챙겨주기

15시 첫째 조카 영어학원 데려다 주기

를 마치고 나는 지금 혼자 카페에 와 글을 쓴다.


조카를 데려다주고 카페에서 잠깐 쉴 생각으로 짐을 챙기며 키보드를 챙겼다. 무언가 쓰고픈 말이 많은 기분이었다. 엇을 써야할 지는 모를 혼란스러운 기분이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는 유독 어린아이들과 젊은 부부들이 많다. 카페에 들어오니 유모차에 아이를 동반한 엄마들이 가득 찼다. 나는 그저 '이모'로서 한 달간 케어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렇게 부담이 되고 스트레스가 되는데.. 문득 저 어머니들을 보며 언니가 떠올랐다. 지난 7년간 우리 언니는 어떻게 그 시간들을 다 견뎌냈을까?


친구들과 결혼과 육아에 대해 자주 이야길 나눴다.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사는 언니를 가까이에서 보며 나는 언젠가부터 결혼해서 예쁜 아이도 낳고 안정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었다. 아이를 온전히 책임질 자신이 없어 아이 없이 살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그래도 그 이상으로 주는 큰 기쁨이 있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저 하루 이틀 이모 노릇하며 놀아준 것으로 마치 다 아는 것처럼. 겁도 없이.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무거운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라는 것을 조금은 깨닫는 그런 하루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