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시티는 어떻게
레스터 시티를 이겼나

by EPL보는남자


해외축구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난 8월 13일 16-17 시즌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은 전년도 챔피언인 레스터 시티와 승격팀인 헐시티의 맞대결이었다. 그리고,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헐 시티가 지난 시즌 디펜딩 챔피언인 레스터 시티를 2-1로 꺾으며 또 하나의 이변을 만들어냈다. 개막 직전 감독이 사임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로 개막전을 가졌던 헐시티는 어떻게 전년도 우승팀인 레스터 시티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을까.


2.png 헐시티 vs 레스터시티 전반전 포메이션


#전반전


경기 시작 전 제출된 라인업을 살펴보면, 레스터 시티는 기존의 4-4-2 포메이션을 사용하였고, 헐 시티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4-3-3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서 헐 시티의 양쪽 윙어들이 수비에 가담하는 형태를 보여주며 4-5-1에 가까운 포메이션 형태가 가동되었다.

레스터 시티는 무사를 중심으로 하여 초반 공격을 전개해 나갔는데, 빠른 발을 이용한 위력적인 돌파를 보여주기는 했으나 동료와의 연계가 썩 좋지 못했다. 특히 바디에게 연결된 패스가 득점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답답한 경기 흐름이 이어졌다.


2.jpg 전반전 레스터시티의 패스는 측면에 집중되어 있었다. (사진 출처 - 포포투 Stats Zone)


전반전 레스터의 빌드업 전개를 살펴보면 패스 줄기가 비교적 측면에 집중되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디와 무사의 빠른 발을 이용한 상대의 뒷공간을 파고드는 레스터 시티의 전략이 헐시티가 수비라인을 내림에 따라 무력화되자 측면과의 연계를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헐 시티는 4-3-3의 포메이션에서 양쪽 윙어들이 수비 가담을 참여하며 4-5-1 포메이션의 형태를 만들며 측면에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1차적 원인은 윙어들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과 사이드 미드필더, 풀백들의 협력 수비가 있기에 가능했다.


레스터의 초반 공격은 왼쪽 측면에서 무사가 공을 잡으며 그레이와 연계를 하는 장면이 많이 연출되었는데 그레이가 공을 잡게 되었을 때 허들스톤과 스노드그라스가 아래로 내려오며 측면에서 압박을 도왔고, 그 결과 헐 시티의 협력수비에 고전하며 무력화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났다.


이는 수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오른쪽 수비수로 출전했던 헐시티의 엘모하마디의 경우 이 날 경기에서 13번의 공 뺏기에 성공했고, 이 날 경기에서 제일 공을 많이 뺏은 선수로 기록되었다.


3.jpg 엘모하마디는 이날 경기에서 제일 많이 공을 뺏은 선수로 기록되었다. (사진 출처 - 포포투 Stats Zone)



#레스터 시티의 문제점 : 제공권과 플레이메이커의 부재

한편 이 날 경기에서 나왔던 레스터 시티의 또 다른 아쉬움은 제공권에서 상대 수비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바디와 무사의 투톱의 조합은 분명 빠른 발로 상대 수비의 뒷공간에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만, 상대가 라인을 내리고 잠궜을 때 이를 풀어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헐 시티의 중앙 수비였던 커티스 데이비스와 제이크 리버모어는 제공권을 완벽하게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둘이 합쳐 총 13번의 공중볼 경합에서 12번을 승리하였고, 박스 내에서는 단 한 번도 공중볼 경합에서 실패하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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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jpg 헐시티의 중앙 수비수였던 커티스 데이비스와 제이크 리버모어는 제공권에서 완벽한 모습을 선보였다. (사진 출처 - 포포투 Stats Zone)


측면과 공중에서의 활로가 막히자 레스터 시티의 공격은 답답한 흐름이 이어졌는데, 헐시티가 잠시 공격을 하기 위해 진영이 올라오면서 수비 뒷공간이 생겼을 타이밍에 무사와 바디가 수비 뒷공간으로 파고들며 그 공간으로 빠르게 연결되는 롱패스가 몇 차례 있었으나, 헐 시티의 수비진들이 이를 잘 커버했다.


이 날 레스터 시티의 중앙은 킹-드링크워터가 선발로 출전하였는데, 먼저 킹의 경우 빌드업뿐만 아니라 수비와 공격 모두에서 아쉬운 모습이 많이 연출되며 후반전에 교체되었다. 반면 드링크워터의 경우 이 날 경기에서 두 팀을 합쳐 제일 많은 패스를 기록한 선수였는데, 패스의 방향이 전방보다는 측면에 집중되며 위협적인 패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6.jpg 드링크워터가 이날 보여준 패스에서 공격적인 패스를 찾기는 어려웠다. (사진 출처 - 포포투 Stats Zone)


또한 드링크워터의 경우 상대 박스 앞쪽까지 올라오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중거리슛이 번번이 빗나가는 등 아쉬운 모습이 많이 연출되었다. 레스터 시티가 보여준 이 날의 경기에서의 아쉬움을 찾아보자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즉 플레이메이커의 부재로 인하여 중앙에서의 연계를 통해 상대 수비를 헤집을 수 있는 모습을 가진 선수가 부족했고, 그 결과 측면 공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비록 마레즈가 박스 앞에서 중앙 돌파를 시도하며 페널티킥을 얻어내기는 하였으나, 그 외에는 중앙에서 뚜렷하게 위협적인 장면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헐시티가 잘했던 점 : 효율적인 공격 전개 방식 & 강력한 세트피스

레스터 시티의 공격적인 수들을 전부 차단한 헐 시티는 공격에서도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공을 탈취하고 빠르게 전개한 것이 아니라 상대의 빠른 압박을 풀어내기 위해 공을 돌리며 상대의 빈 공간을 체크했고, 전방에 있는 디오만데나 스노드그라스에게 한 번에 연결하며 효율적인 공격을 시도했다.

디오만데는 왼쪽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면서 위협적인 돌파를 선보였는데, 레스터 시티에 이러한 돌파를 끊어줄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이는 캉테의 부재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디오만데는 이 날 경기에서 6번의 돌파를 전부 성공하며 위협적인 모습을 선보였고, 세트피스에서 선제골을 넣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7.jpg 디오만데는 6번의 돌파 시도에서 6번 모두 성공하며 상대 수비진을 위협했다. (사진 출처- 포포투 Stats Zone)


한편, 경기 초반부터 코너킥을 통해 커티스 데이비스의 위협적인 헤딩을 연출했던 헐 시티의 세트피스의 중심에는 스노드그라스가 있었다. 왼발 스페셜리스트인 스노드그라스는 1년 동안의 장기 부상에서 돌아와 지난 시즌 후반기에 복귀하여 팀의 승격을 이끈 선수로 프리킥을 비롯하여 킥에 강점을 보이는 선수이다.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했던 헐시티는 측면에서 디오만데와 스노드그라스를 통해 공격을 시도했으며, 전반 막판 얻은 코너킥에서 위협적인 세트피스 장면을 연출했고, 결국 슈마이켈이 걷어낸 공을 다시 득점하며 전반을 1-0으로 마치는 성과를 얻게 되었다.


4.png 헐시티 vs 레스터시티 후반전 포메이션


#후반전

후반전이 시작되면서 두 팀 간의 전술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헐시티의 경우 수비라인을 더 낮춰 수비적으로 플레이한 반면, 레스터 시티는 수비라인을 더 끌어올리고 상대의 3선을 마크하던 전방 공격수들에게 상대 수비수들을 압박하게끔 한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레스터 시티의 전방 압박은 유기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기에 헐시티의 선수들은 비교적 쉽게 탈압박에 성공할 수 있었으며, 레스터 시티의 압박은 크게 위협적이지 못했다. 공격에 있어서도 레스터 시티는 좀 더 전방에 직접적인 연결을 더 많이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번번이 헐 시티의 수비에 공격이 막히며 이렇다 할 득점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그나마 후반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마레즈가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기는 했으나, 그 이후 레스터 시티의 공격에서 위협적인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 성급했던 레스터 시티 & 상대의 실수를 놓치지 않은 헐 시티

상대의 3선을 압박했던 전방 공격수들이 올라가며 상대 수비를 압박하기 시작하자, 비교적 헐시티의 중원이 자유로워졌다. 레스터 시티의 패스가 실패하며 가로치기에 성공한 헐 시티는 빠르게 역습을 전개했고 디오만데가 왼쪽 측면에서 위협적인 움직임을 가져갔다. 슈마이켈이 빠르게 나와 막으며 아무 일 없듯이 넘어가는 장면인 듯싶었으나...

슈마이켈이 빠르게 전방에 공을 전달한다는 것이 차단당하며 상대에게 다시 공격 기회를 주게 되었고, 미처 레스터 시티가 수비를 갖추기 전에 올라온 크로스를 걷어낸다는 것이 스노드그라스에게 연결되며 완벽한 득점 기회를 주게 되었고, 스노드그라스는 이를 놓치지 않으며 득점으로 연결했다.


결국 레스터 시티는 중앙에서의 공격을 강화하기 위해 경기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던 킹을 다니엘과 교체하고, 그레이를 빼고 오카자키를 투입함으로써 중앙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헐시티는 득점을 한 뒤 수비진형을 뒤로 미룬 상태였으며, 제공권과 연계에서 크게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레스터 시티는 여전히 공격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후반 막판 우요아까지 투입되며 득점을 노렸으나, 헐 시티가 이를 잘 막아내며 결국 레스터 시티를 상대로 승리하는 이변을 만들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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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jpg 이 날 경기에서 헐 시티는 완벽한 수비를 선보였다. (사진 출처 - 포포투 Stats Zone)


#완벽한 수비로 승리를 가져온 헐 시티


이 날 헐시티는 주전 수비수가 3명이 빠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수비라인과 위치 선정, 조직력을 선보이며 상대 공격진을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전반전에는 약간의 위기가 있긴 했으나 상대 공격수가 이를 놓치며 크게 위협적인 장면이 연출되지는 않았고, 후반전 들어와서 페널티킥을 내주고 난 뒤에는 더 견고한 수비를 보여주며 팀 승리를 가져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커티스 데이비스가 있었는데, 팀 내 주장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10.jpg 아메드 무사는 이 날 경기에서 제일 많은 득점 기회를 창출했다. 그러나... (사진 출처 - 포포투 Stats Zone)


#조직력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레스터 시티


아메드 무사는 헐 시티와의 경기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제일 많은 득점 기회를 만든 선수였으나, 바디에게 연결되는 마지막 패스가 좋지 못했다. 바디와 무사의 호흡적인 측면은 레스터 시티에게 숙제로 남게 되었으며, 제공권에서의 문제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새로 영입된 에르난데스와 모건이 수비에서도 간간히 동선이 겹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직까지 레스터 시티의 조직력이 완성되지 못했다는 인상을 주었다. 지난 시즌 기적의 동화를 써 내려간 레스터 시티가 다시 한 번 리그에서 기적을 써 내려가기 위해서는 한치 빨리 새로 영입된 자원들과 기존의 자원들이 조화를 이뤄 완벽한 조직력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11.jpg 골을 넣고 셀레브레이션을 하고 있는 스노드그라스 (사진 출처 - EPL 공식 홈페이지)


EPL 역사 최초로 디펜딩 챔피언이 1라운드에서 패배를 하게 만든 헐시티의 저력은 마이크 펠란 감독대행의 전술과 헐 시티의 조직력에서 비롯되었다. 경기 전 많은 전문가들이 레스터 시티의 우세를 점쳤지만, 축구계에는'공은 둥글다.'라는 명언이 있다. 이러한 언더독의 반란이 있기에 축구가 더 재밌는 것이 아닐까? 물론 헐 시티의 전술을 분석해본다면, 이 날의 결과가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