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미가 전하는 아트테크] 5편
‘국민 가수’, ‘국민 배우’, ‘국민 MC’. 전문 직종 앞에 ‘국민’이 붙었다는 것은 대중적인 유명세가 있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한국 근현대를 대표하는 ‘국민 화가’는 누구일까? 취향과 관심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이중섭(1916~1956), 박수근(1914~1965), 김환기(1913~1974) 등은 아마 이 후보에 오를 것 같다. 예술에서 미적인 가치에 따라 위계를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므로 딱히 누가 1순위라고 우열을 가릴 필요는 없다. 다만, 셋 다 유명한 작가이고 작품의 가격이 고가이다 보니 종종 위작 사건이 생기곤 한다. 특히 이중섭은 위작 사건이 잦다. 그 이유는 이중섭이 소, 닭, 어린이, 가족 등 한정된 소재를 반복적으로 그린 데다, 강렬하고 최소한의 선으로 표현한 형태를 구축했기 때문에 표현법이 더 복잡한 김환기, 박수근보다 모사하기 쉬운 특징이 있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작품의 진위를 보증해주는 기능이 있다. 파일로 존재하기에 복제가 쉬운 디지털 아트는 위작이나 진위 논란이 많았다. 하지만 작품을 NFT화 하기 위해 ‘민팅’ 하면 해당 작품의 진위성을 증명하는 고유번호가 만들어지면서 복제나 위작 같은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렇다면 NFT가 실물 작품에도 똑같이 적용돼 위작이 골칫거리인 미술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줄 수 있을까?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같은 유명 화가의 위작 문제도 NFT가 해결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건이 올해 일어났다.
◇ 온라인 경매로 나온 이중섭·박수근·김환기 NFT 작품 논란
NFT가 몰고 온 열풍은 한국 미술시장에도 영향을 주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세계적인 경매회사들이 NFT 미술시장에 뛰어들자, 국내 최대 경매사인 서울옥션도 자회사인 서울옥션 블루를 통해 NFT 미술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밝혔다. 2021년 5월 말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인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의 그림까지 NFT로 전환돼 온라인 경매에 나오며 큰 주목을 받았다.
종합광고대행사인 워너비인터내셔널은 자사의 디지털 아트 통합 플랫폼인 ‘Bitcoin NFT’(BTC-NFT)를 통해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의 작품을 NFT 예술품으로 처음 선보인다고 밝혔다. 해당 작품은 1955년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이중섭의 개인전에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황소’(51x44cm), 1938년 작인 박수근의 ‘두 아이와 두 엄마’(42x34cm), 1943년 작인 김환기의 ‘전면점화-무제‘(72.7x53cm) 등 총 세 점이다. 6월 16일부터 6월 18일까지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으로 날마다 온라인 경매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프랑스, 영국 등 총 22개국 동시로 열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소장자와 별도로 저작권자 허락을 받아 NFT를 제작해야 하는데, 저작권은 작가 사후 70년간 상속인에게 있기에 이중섭은 소멸했지만 박수근과 김환기는 유효하다”면서 작품의 진위 의혹을 제기했다. 여기에다 이들 작품을 소장하고 있던 환기재단과 박수근미술관, 저작권을 가진 유족들은 워너비인터내셔널이 NFT로 제작하는 것과 관련해 저작권 관련 협의가 없었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경매를 진행하려던 워너비인터내셔널은 작품 소장자와 경매 협의를 했고, 작품 소장자는 작품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위작 논란으로 사태가 심각해지자 워너비인터내셔널은 “NFT 작품에 대한 관련 제도의 부재와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앞으로 이런 논란이 없도록 원작에 대한 검증과 거래 이후의 관리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할 계획”이라고 사과하며 경매를 잠정 중단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었을까? 아니면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NFT 미술품을 받아드리기에 아직은 설익은 걸까?
◇ 작품을 NFT로 만들 때의 저작권은?
사실 이번 NFT 미술품 경매에 대한 저작권 이슈는 우선 복제권과 전송권 침해에 있다. 미술 작품을 민팅하는 사람이 해당 작품의 저작권자가 아니라면 ‘복제권’을 침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저작권자가 아닌 이가 민팅한 저작물을 NFT 플랫폼에 올리는 경우라면 ‘전송권 침해’에 해당한다. 작가명을 타인으로 기재해 판매한다면 ‘저작인격권 침해’가 발생한다.
저작권과 소유권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저작권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2013년 개정된 저작권법(법률 10807호)에 의하면, 1962년 12월 31일 이전에 사망한 작가의 작품은 사후 50년까지 보호되는 반면, 1963년 1월 1일 이후에 사망한 작가의 작품은 사후 70년까지 보호된다. 1962년 12월 31일 이전인 1956년 작고한 이중섭의 경우 사후 50년이 지났지만, 박수근과 김환기의 경우 저작권이 남아있다.
저작권법적으로 저작권자가 아닌 소장자는 작품을 ‘민팅’ 할 수 없다. NFT로 만들 수 없기에 애초부터 이번 NFT 경매는 불가능했다. 뱅크시의 판화 작품인 ‘멍청이’(Morons)를 구매해 불태우기 전에 NFT로 만든 ‘인젝티브 프로토콜’(Injective Protocol)의 행위도 저작권법을 어겼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소장자는 맞지만, 저작권까지 소유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중섭처럼 저작권이 만료된 작가의 작품을 민팅해 판매한다면 어떻게 될까?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지만, 누구나 이용 가능한 저작물을 활용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수익을 취하는 행위이기에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된다. 올해 3월 싱가포르에 있는 글로벌아트뮤지엄(Global Art Museum)이라는 단체가 구스타프 클림트, 빈센트 반 고흐, 에드가 드가, 폴 세잔 등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을 NFT화 해서 판매를 시도했다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박물관 등의 소장 미술관들의 문제 제기로 중단한 사례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1년 6월 4일 NFT 기반 저작권 침해 논란과 관련해 저작물 이용형태 등 사실관계를 고려한 저작권 보호 기반, 이용허락 여부, 저작권 양도계약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적극 대응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에 대한 침해를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저작물이 아니더라도 NFT로 만들어 판매할 수 있다. 비슷한 문제가 재발할 여지가 있으므로 조속한 제도 마련이 요구된다.
◇ 잇달아 열리는 NFT 전시회
한국 미술시장에 논란만 있는 건 아니다. NFT 전시회가 잇달아 열리며 눈길을 끌었다. 88명의 한국의 NFT 아티스트가 가상공간에서 NFT 작품을 전시하는 ‘제1회 KOREAN ARTIST OASI’S가 올해 4월 17일부터 24일까지 열렸다. NFT 아티스트도 활동하는 한동이 작가와 가상공간 제작 업체인 NFT OASIS VR(설립자 Will O’Brien)이 공동으로 개최했다. 이어 5월에는 서울 성수동 뿐또블루에서 NFT 아트 전시회인 ‘토큰 선언서‘(The Token Manifesto)가 열렸다. 디지털로만 접할 수 있던 NFT 작품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왔다. 관람객들은 스마트폰이나 스마트기기로 QR코드 접속을 통해 NFT 작품을 마주했다.
서울에 있는 유진갤러리는 국내에서 주목받는 NFT 작가인 김재욱, 이규리, 275C, 최주열(JHU) 등을 소개하는 전시인 ’마이 컬렉션 위드 NFT‘(My Collection with NFT)를 올해 7월 10일부터 27일까지 열었다. 유진갤러리 측은 “미술시장의 급진적 변화와 함께 컬렉션의 문화가 대중에게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라며 “컬렉션을 함께 향유하고 새로운 컬렉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될 NFT 작품을 지속적으로 소개한다”라고 밝혔다.
◇ 한국 고미술품에 이어 국보 ‘훈민정음’까지 NFT 출품
한국 고미술품까지 NFT로 출품되고 있다. 고미술품경매사 마이아트옥션은 프로젝트팀 타이거리스트(TIGERLIST)와 함께 19세기 조선 궁중 장식화 ‘십장생도 6폭 병풍’ NFT 작품 소유권(총 35억 원)에 대한 공모에 나서, 세 차례로 나눠 판매했다.
국내 최초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은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1446)을 NFT 100개 한정판으로 개당 1억 원에 판매한다는 계획을 2021년 7월 22일 발표했다. 블록체인 기반 테크 미디어 기업 퍼블리시가 NFT 발행에 대한 기술을 담당한다. 책 실물이 아닌 디지털로 만든 NFT의 원본성과 소유권을 살 수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 창제 목적과 제작 원리 등을 담은 해설서로 1962년 국보로 지정됐다. 국보가 NFT로 제작되는 일은 처음이다. 2020년 보물 불상 2점을 경매에 내놓아 판매한 적이 있을 정도로 재정난을 겪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이번 훈민정음 NFT 판매 수익금을 미술관 운영 및 문화재 연구 기금 등에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내 문화재를 관리하는 문화재청은 “법률 근거를 포함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라는 입장이다.
NFT 미술품을 두고 ‘거품’이니 ‘투기’니 하는 문제 제기도 많지만,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한국 미술시장의 규모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선진국에 비해 작다고 할지라도 작품의 수준은 크게 다르게 않다. 하지만 실물 미술품이 오가는 미술시장에서 한국의 미술품이 제값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저평가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NFT 미술시장은 새로운 가능성이자 기회이다. NFT가 쏘아 올린 변화는 계속된다. 다음 편에는 NFT로 뛰어든 예술가들을 만나보자.
이상미 이상아트 대표는...
2010년 프랑스 정부 산하 문화통신부에서 프랑스 문화재 감정과 문화재 서비스 전문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시기획사인 이상아트(주)의 대표이사이자 유럽 문화예술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예술감독, 전시기획자, 칼럼니스트, 강연자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치고 있다.
※ 본 칼럼은 이데일리에 [이상미가 전하는 아트테크]으로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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