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묻지 않는 일

by 슬기

그만둔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직원 K의 근로지원인을 한 적이 있다. 근로지원인은 장애로 인해 업무상 보조가 필요한 사람을 1대 1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K가 8시간 동안 근무했으므로 나도 8시간 동안 옆에서 대기하며, 필요하다고 요청할 때 업무지원을 했다. 사무실에는 직원들의 자리가 있다. 소장, 국장, 팀장, 정직원, 계약직 제각기 책상 위치는 달랐지만 모두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하지만 같은 시간 머물러야 하는 근로지원인의 자리는 없었다.


전에 일했던 K의 근로지원인들을 기억한다. 두세 번 정도 바뀌었는데 그들은 주로 K의 의자 옆에 간이 의자를 두고 앉아있었다. 그러다 한번 남자 근로지원인으로 바뀌면서 K와 한 책상에 앉아있기 비좁아져서 처음으로 근로지원인이 따로 앉는 책상이 생겼다. 완벽하게 근로지원인의 자리라고는 할 수 없고, 자주 출근하지 않는 비상근 직원 자리에 사람이 없을 때만 앉아있었다. 그 과정을 봤던 터라 K가 처음 나에게 근로지원인을 해주길 제안했을 때 가장 먼저 내 책상과 의자가 있는 자리가 따로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다니던 직장이라서 나에 대한 배려 때문인지 아니면 K의 요청 때문인지 내 자리는 쉽게 생겼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을 했는데 기존의 푹신한 사무용 의자가 아닌, 딱딱한 간이의자로 바뀌어 있었다. 그날 밥 먹는 자리에서 다음 주에 정직원이 새로 들어오는데 의자가 없어서 내 의자와 바꿔놨다고, 팀장이 웃으며 양해 부탁한다고 했다. 부탁이라고는 했지만 합당한 이유를 말했으니 당연히 내가 이해를 해야 한다는 말투였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앉아서 일하는데 정직원과 근로지원인의 엉덩이가 다르기라도 하단 말인가.


이 말이 정작 그 자리에서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냥 습관적으로 웃으면서 ‘네~ 괜찮아요’ 하고 밥을 먹었다. 거기서 팀장에게 착한 사람으로 남은 덕분에 나와 다음 근로지원인, 다다음 근로지원인은 별일 없으면 그 의자에 앉아 쭉 일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팀장에게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는데, 상황이 직원일 때와 달랐다. 직원이었으면 이야기를 해서 혹시나 팀장과 관계가 틀어져도 나만 껄끄러워지면 되는데, 이제는 K의 입장도 함께 난감해진다. 그리고 이걸 이 회사에 따지는 게 맞는지도 애매했다. 나는 이 회사와 고용계약을 맺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근로지원인은 보통 고용계약을 맺은 회사와 출근하는 회사가 다르다. 근로계약서를 쓴 회사로 출근하지 않고, 지원하는 장애인이 근무하는 회사로 출근한다. 그래서 엄밀히 따지면 실제 출근해서 시간을 보내는 회사는 근로지원인에게 자리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 출근하는 회사가 아닌, 고용계약을 한 회사는 근무환경이 모두 다른 근로지원인에게 자리를 따로 제공하지 않는다. 근로지원인의 업무환경은 만나는 이용인이나 주변인에 달려있다. 주변인이 호의를 가지고 신경 써주면 책상이 하나 생기겠지만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사라진다. 푹신했던 사무용 의자는 내 권리가 아니라 호의에 의해 제공되던 것이기 때문에 따지기가 애매했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근로지원인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활동지원사의 근무환경도 비슷하다. 근로지원인이 일터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면 활동지원사는 일상 전반을 지원한다. 그래서 활동지원사는 이용인의 집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데, 집 내부에 활동지원사의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만약 원룸에서 지원을 한다면 한시도 서로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4시간 근무에 30분씩 주어지는 휴게시간도 마찬가지다. 휴게시간을 상사와 함께 회의실에서 보내야 한다면 그건 정말 휴게시간이 맞을까. 보통 회사에서는 지위가 높을수록 좋은 자리에 앉는다. 근로지원인과 활동지원사의 일터에 제대로 된 공간과 자리가 없는 건 이것의 연장선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로지원인을 하기 전 상사에게 퇴사하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K의 근로지원인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상사는 같은 공간에서 일해도 근로지원인은 경력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에는 이 말을 경력은 되지 않더라도 내 안에서 경험으로는 남겠지 하는 생각으로 가볍게 여겼다. 실제로 일해보니 동료로 일할 때와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감각을 느꼈고, 그 감각을 다음 직장에서 가장 많이 곱씹으며 일했다. 그러고 나니 이 일이 사회적으로 경력이 되지 않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로지원인이나 활동지원사로 일한 시간이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건, 업무적 경험이 쌓이지 않거나 하는 어떤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주로 중년 여성이 하는 시급제 일이라는 말도 안 되게 비합리적인 이유 때문은 아닐까.


없는 건 자리와 경력에서 끝나지 않는다. 명함도 없다. 근로지원인, 활동지원사 모두 이용자가 외부에서 일정이 있으면 동행을 한다. 나는 주로 인터뷰, 회의 자리에 함께 동행해서 누군가 K에게 하는 이야기와 주변 환경, 대화 분위기에 대한 정보를 필담과 속기로 전달했다. K의 대화 상대와 꽤 긴 시간 동안 같은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전달해도 대다수는 다음에 만났을 때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투명인간이 되어서 누군가의 대화를 합법적으로 엿듣는듯한 느낌이 가끔은 재밌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회의 자리에 내 도시락만 준비되어 있지 않았을 땐 재미없었다.


지원인으로 동행하는 데 명함이 왜 필요한가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비슷하게 지원 역할을 하는 요직의 비서나 대변인은 회사에서 나온 명함을 가지고 있는 게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진다. 명함을 가지고 일하던 때를 생각해보면 내 업무와 반드시 직접 연관이 있어서 명함을 주고받았던 건 아니다. 관련이 없어도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명함을 받아서 보관했다. 활동지원사와 근로지원인의 명함이 없는 건 업무적으로 누구에게도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본다.


이 일을 하면서 가끔 나에게 이름을 묻고 정중히 명함을 건네주는 사람을 만나면 투명인간을 볼 줄 아는 사람을 만난 듯한 놀라움과 사람으로 존중받는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그 느낌이 너무 고마워서 나는 누구의 이름을 묻고 기억하는지 떠올려봤다. 나는 매일 ‘쓸기야 또 야근하나~’로 시작하는 농담을 건네던 경비 아저씨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사실 물을 생각도 안 했던 것 같다. 이름을 몰라도 대화할 수 있는 한국의 호칭 문화 탓일 수도 있겠지만, 내 무의식에는 경비 아저씨의 이름을 굳이 알 필요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묻지도 기억하지도 못하겠지만 어쩐지 이름을 궁금해하지 않는 건 그 사람을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