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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솜 Aug 11. 2024

약물 오남용과 중독의 경계에서

모든 건 마음과 연결되어 있었다.

  약 복용이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시절이 있었다. 수년 전 '판피린'이라는 약을 먹기 시작했다. 두통과 감기 기운이 자주 있었다. 처음엔 먹어봤자 일주일에 한두 번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일주일에 세네 번씩 먹게 됐다. 어느 땐 네다섯 번, 컨디션이 좋지 않은 시기엔 거의 일주일 내내. 어떤 날은 하루 두세 번 복용하기도 했다.

  약 복용 횟수가 점점 늘어나자 어느 날 문득 '이러다 평생 이 약을 매일 먹으며 살게 되면 어떻게 하지'하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한 번은 내과에 다른 일로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처방약에 대해 상담하던 중, 평소 판피린을 자주 먹는다고 하니 되도록 그 약은 끊으라는 조언을 들었다. 약 성분의 특성상 장복 시 혹시 모를 중독의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세상에나.


  월경 전후와 생리 땐 몸이 으슬으슬 따갑고 몸살기가 있었다. 그 외 다른 날엔 목이 칼칼하니 불편하고 콧물이 흐르거나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찾아왔다. 전혀 아프지 않은 날이 일 년에 며칠이나 되었을까. 자잘한 통증들이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약을 끊어야 한다니.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오남용은 맞았다. 판피린은 종합감기약이다. 차라리 증상 별로 목에는 목감기 약, 코에는 코감기 약, 두통엔 두통약을 먹었어야 했는데. 대개의 증상이 이 약으로 해결되다 보니 어느 날부턴 집에 판피린을 몇 박스 씩 두기 시작했다. 내성이 생기기 시작한 건지 정말 중독된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부터 자꾸 만병통치약처럼 이 약을 유독 찾게 됐었다. 심지어 밖에 나갈 때도 가방에 하나씩 챙겨 다녔다. 몸을 불편하게 하는 증상들이 언제 불시에 찾아올지 몰라서다.


  끊고 싶었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통증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매번 실패했다. 다른 약을 먹으면 증상에 호전이 없어 다시 이 약으로 돌아왔다. 이러다 혹시 판피린 중독자로 일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약에 대한 의존을 어떻게 끊어야 할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에 몇 달간 몸이 계속 아프기 시작했다. 약국약으론 해결되지 않아 증상 별로 병원을 전전했다. 혹시 몸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골골대는 게 일상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몇 달 내내 온갖 병원을 다닌 적은 없었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컨디션에 무리 가는 일정을 소화한 적도 없었다. 불현듯 이유 모를 감기가 오더니 약을 먹어도 증상이 낫기는커녕 더 심해지기만 하는 거다. 며칠간 링거를 맞으며 회사엔 병가를 냈다. 이내 후두염, 인후염, 식도염, 위염, 피부염 등의 질환도 연달아 찾아왔다. 한 번 떨어진 체력은 회복은커녕 조금만 나아지려 하면 다시 악화됐다. 단 몇 분도 편히 자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새 앓다 오픈 시간에 맞춰 병원에 좀비처럼 겨우 걸어가면 여느 날처럼 다시 링거를 맞고 병가를 냈다. 살면서 이토록 지독하게 자주 아픈 건 처음이었다. 아플 때만 가야 하는 병원은 어느덧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 정도면 회사생활이 어려운데. 장기 병가를 내고 당분간 쉬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증상이 시작된 그날이 문득 머릿속에 스쳤다.

  그날은 엄마가 옷장 정리를 하다 십수 년 만에 발견한 옷을 보여주셨었다. "네 중학교 교복 찾았어! 오랜만에 본다, 그지." 옛 시절의 반가움을 나누고자 화색을 띠며 내 방에 찾아온 엄마의 표정이 무색하게 그 옷을 보자마자 '당장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아주 크고 거대한 검은 무언가가 의식 위로 푹 하고 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그 감정을 거세게 눌러버렸다. '마주하기 싫어. 저리 사라져.'


  이제와 생각해 보면 '검은 어떤 것'은 아마 내게 그날 마지막 기회를 준 거였을지도 모른다. "이번만큼은 나를 봐 줄거지?" 하며. 평생을 외면해 오던 감정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말조차 또다시 눌러버리자, 이미 부풀 대로 부풀어버린 거대한 감정 덩어리가 폭발하듯 터져버려 결국 몸을 통해서나마 빠져나오기 시작했던 게 아닐까. 긴 세월의 서러움과 외로움, 아픔을 이제와 왈칵 있는 힘껏 토해내기라도 하듯 몸은 마음을 대신해 계속 앓고 싶어 했다.


  중학생 시절의 내게 어떤 마음이 얽혀 있던 걸까.

  여전히 그 사건이 벌어졌던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그 길을 다시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의 아이도 마음을 알아챈 걸까. 그날만큼은 평소와 같던 거리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이미 감정이 깨어나 몸에 넘실대기 시작한 상태여서 그랬을까. 어둠 깊숙한 곳 묻혀있던 감각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마주해 가는 길목마다 환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아주 밝은 대낮, 여느 날처럼 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던 길이였다. 누군가 뒤에서 날 따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에이, 아니겠지.' 하며 이상한 기운을 지우고선 애써 평소처럼 걸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비현실감에 어떻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대응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 같다. 아파트가 가까워져 가는 순간 그 사람이 갑자기 발 뒤꿈치를 밟아 넘어트렸다. 일어나 뒤를 돌자 내게 어깨동무를 두르며 '원래 아는 사람인 척' 자연스럽게 걸으라고 했다. 악몽이 시작됐다. 건장한 성인 남자 옆에서 채 자라지 못한 미약하고 작은 중학생 여자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걷는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있었고, 그는 그 안으로 날 거세게 끌고 들어가려 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나이였지만 끌려들어 가면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옆의 난간을 붙잡고선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 난간이 없었다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었을까? 모르겠다. 그 남자는 칼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으니, 어쩌면 불구가 되었거나 사라졌을지도.

  계속 버티자 이대론 자기 뜻대로 하기 어렵겠다 싶었는지 그는 다시금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 소름 돋던 얼굴이 아직도 마음에 또렷하다. 눈엔 살기가 가득 어려있는데 입만 웃고 있었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볼 듯한 살인마의 표정. 그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가지고 있던 칼로 나를 찔러버리겠다는 협박을 했다. 그 사람의 손아귀에서 살아남으려 이리저리 티 나지 않게 주위로 눈을 굴렸다. 제발, 아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지나가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주변을 오고 가는 사람조차 눈에 띄질 않았다. 한 명쯤은 있을 법도 한데. 그날따라 운도 없지. 그 뒤의 기억은 다시 잠시 끊겼다. 이후 문득 어떤 타이밍에 내가 소리 지르며 도망치는 장면이 살갗으로 생생히 와닿았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을 때보다 도망가면서 더욱 날 것 그대로의 공포를 느꼈던 것 같다. 잡히면 진짜 나를 칼로 난도질해 죽여버릴 것 같아서. 생에 그렇게 달려본 적이 있을까.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달리기라니.


  잊혀졌던 그날의 감각과 감정들이 순식간에 되살아나며 "이 모든 걸 어떻게 잊고 살았을까. 이렇게 끔찍했던 일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살기 위해 잊어야만 했을 테다. 매일 보던 길이며 늘 걷던 곳이었다. 모든 일이 생생한 채로 사느니 차라리 기억 저편으로 감각을 묻고선 없던 체 지내는 게 스스로를 보호하는 일이었겠지.


  10여 년 전 상담을 시작하며 생전 처음으로 알게 됐던 사실은 내게 기억의 상실이 일부 있다는 거였다. 이 사건은 평생 동안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처럼 느껴졌었다. 또한 사건 직후 일 이 년간의 기억도 불투명했다. 일종의 이인증, 해리 현상이라고 해야 할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상생활엔 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그건 그저 그날의 감각이 내면에서 완전히 분리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잃고 싶었던, 하여 잃어버렸던 감각을 되찾기 시작하자 이토록 몸이 아팠던 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일생을 외면해 온 감정에 균열이 일며 폭발했다. 고통스럽지 않은 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어쩌면 실은 이보다 더 아파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내 것이었지만 처음 마주한 검고 낯선 감정을 천천히 삶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나를 괴롭게 하던 몸의 증상들이 점차 하나둘씩 호전되어 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병원약은 물론 판피린도 끊게 됐다. 이전에 오남용과 중독 사이에서 약을 중단하고자 부단히 애를 쓸 때는 늘 제자리를 맴돌던 몸의 상태가 해리되었던 감각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자 언제 아팠냐는 듯 회복되기 시작했다. 수년간의 일상이었던 두통과 자잘한 감기도 사라졌다. 더는 전처럼 약을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처음 느껴보는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때를 회상하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여전히 판피린은 복용하지 않고 있다. 간혹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이나 감기가 찾아오는 날도 있지만 그럴 땐 최근 무의식적으로 지나친 감정은 없었는지 곰곰이 톺아본다. 내면에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네 보지만 때론 아픈 아이가 아직 속내를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증상 별로 약이 필요한 날도 있다. 아직 존재하는 피부염, 어쩔 수 없는 생리통, 때때로 찾아오는 위염 등. 여전히 진행 중인 나의 숨은 목소리들이 있다. 그럼에도 이전처럼 오남용은 하지 않는다. 전엔 병원약을 먹고도 불편하면 판피린이나 다른 약국 약들까지 계속 몸에 욱여넣었다. 약으로 인해 속이 울렁거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조금이라도 아픈 상태의 나를 허용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만큼 스스로에게조차 마음의 내상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겠지. 어떤 경우엔 아직 진통제를 복용할 정도는 아닌데도 혹여 더 심해질까 두려워 불안감에 미리 입에 약을 털어 넣기도 했다. 그렇게 먹은 약병들이 방 안 쓰레기통에 쌓여갔다. 마치 채 보지 못하고 버려진 감정들처럼 말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약을 남용해 온 데엔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중학생 때 사건 이후로도 내게는 몇 번의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인지하기 어렵고 버거운 감정들은 모두 무의식으로 넘겨 두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모든 걸 홀로 견디는 게 익숙했던 난 감정이 쌓여간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어느 시점들에서도 여전히 혼자였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나눠 굳이 그 힘듦을 두세 배로 만드느니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하며 끌어안는 게 어른의 당연한 책임이자 도리라고도 생각했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성인이란 필요할 때 적절히 도움을 요청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건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땐 알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 없었을 테지만.


  무의식에 축적되며 흐르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던 마음은 세월의 무게만큼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내 그 중량을 견디지 못하고 균열을 내며 붕괴되기 시작했다. 폐허가 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홀로 그 공간을 어떻게든 지켜내고자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신체화 증상으로 인한 약 복용도 그 일환의 하나였다.

  실제로 진통제가 의학적으로 마음의 안정에 일부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나 임시방편일 뿐이다. 무너진 세계는 복구할 수 없다. 그저 그를 껴안는 더 큰 품이 필요할 뿐이다.


  어떤 방식이었든 내 세계를 지키려 애써온 마음엔 잘못이 없다. 다만 자아의 힘이 미약할 땐 자신이 방어 기제를 사용하는지조차 모른 채 방어막이 곧 내가 되어 버린다. 예컨대 이전의 내가 '원래 난 자주 아픈 사람이야'라는 명제를 스스로 부여하고 수년간 약을 복용해 왔듯 말이다.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지면 삶은 균형을 잃고 연쇄적인 고통을 필연적으로 양산한다. 특정한 이유 없이 몸이 자주 아프기 시작하는 게 그 대표적 일례 중 하나다. 마음과 대화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기 보호의 사랑은 역설적으로 점차 스스로를 향한 공격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양한 방법을 써 봐도 여전히 감정을 알아주지 않으니, 그렇게 해서라도 처절한 목소리를 내어 내면의 억압된 에너지를 흘려보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약은 즉각적인 효과가 있다. 본질은 보지 않은 채 빠르게 통증만 진정시켜 주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쌓아가다 보면 몸은 더 크게 울부짖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전보다 더 자주 아프게 되고, 약 복용량이 늘어난다. 자신도 모르게 오남용과 중독의 경계에 놓인 삶을 어느 날 문득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애석한 악순환의 고리에서 해방되려면 결국 의식 밑 외면해 온 감정들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마주해야 한다. 이 여정은 매우 지난하여 때로 수없이 그만두고 싶은 날도 있지만, 경험해 본 자로서 감히 이야기하자면 그 길은 오랜 시간을 두고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나의 일부를 부정한 채 멀쩡해 보이는 삶보다 엉망이어도 솔직하게 울퉁불퉁한 삶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날이 언젠간 온다. 긴 시간 부정해 온 감정들이 원래 나의 것임을 받아들일 때 사람은 비로소 온전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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