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반떼 <Super Normal> 광고로 보는 2018년 연말정산
12월 마지막 주가 되면 세상은 연말정산이라는 의식을 거행합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여기저기 정산이 시작됩니다. 직장인이라면 소득공제 정산을, 기업은 한 해의 매출을, 매스컴은 올해의 아이콘을. 모두가 한 해 정리에 정신없이 바쁩니다. 광고를 업으로 삼는 저는 한 해를 정리할 수 있는 광고가 무얼까 생각해 봤습니다. 우수한 광고들이 많이 떠올랐지만 보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던 광고 하나가 유난히 생각납니다.
"위대해지지 말 것. 소수의 전유물이 되지 말 것. 최선을 다해 보통이 되길. 보통. 그 단어가 가진 위대함을. SUPER NORMAL AVANTE."
아반떼의 2015년 캠페인 SUPER NORMAL의 론칭 편 카피입니다. Key concept인 SUPER NORMAL이라는 생소하면서도 이질적인 두 단어의 조합이 귀에 콱 박힙니다. 보통(=normal)은 최고의 뜻을 의미하는 슈퍼와는 잘 맞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통.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최고로 가는 중간 과정.
보통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뛰어남의 반대로 많이 쓰일 뿐이죠. 아이디어 회의할 때도 부정적 의견을 가장 온화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이 <보통>입니다. “이번 아이디어는 조금 노멀 한데. 색다른 것을 찾아봐.” 심지어 우리 삶 속에서도 노멀은 같은 용도로 많이 사용되곤 합니다. 드라마를 평가하거나 친구와 옷을 사러 갔을 때도 우리는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노멀은 <최선의 선택 즉, 더 뛰어난 도약>을 위한 중간 평가의 용도인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요즘은 어땠을 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학창 시절에는 반에서 1등 하기가 목표가 되고,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는 A+ 받아 장학금 타기가 목표가 됩니다. 직장에 들어오면 실적평가를 통과해야 되고, 좋은 등급을 받으면 그만큼의 등급에 따라 합당한 비율의 보너스를 받게 됩니다.
최고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심지어 우리가 가볍게 보는 TV 프로그램도 시청률 지표에 의해 최고와 최악의 프로가 갈리고 광고수익도 차등 분배됩니다. 흥행하는 영화는 천만 관객이라는 객관적 수치를 넘어야 가능한 거고요. 누구나 1등을 기억하지, 2등과 꼴등을 기억해주진 않습니다. 평가가 당연시되는 사회 속에서 개인의 행복은 토익 900점 맞기라든지, 회사 입사 시험에서 커트라인 안에 들기 라던지 하는 객관적 지표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십상입니다.
최선을 다해 보통이 되자.
최고의 인생을 살기 위해 어제도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반떼 광고는 대뜸 최선을 다해 보통이 되라고 요구합니다. 이 보통이 되라는 요구가 사실 우리 모두가 기다려왔던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골목식당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백종원 씨가 몇 해 전 유행시킨 단어가 생각납니다. <집밥 백선생> 프로에서 백종원 씨가 흔히 하는 말인 “괜찮다”는 말입니다. 집에 돈가스 소스 있죠? 이거 없어요? 괜찮아요. 설탕이랑 간장 섞어서 만들면 돼요. 그는 최선의 방법을 이야기해주고, 설령 그 재료가 없다 할지라도 대안을 제안하며 이것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늘 1등만, 최선만 중요했던 우리에게 백종원 셰프는 1등 재료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묘한 위로를 주는 것입니다.
백종원만큼이나 화제가 됐던 인물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종이접기 김영만 선생님입니다. 김영만 선생님은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대상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성인이 되어 경쟁과 평가가 익숙해진 그 시절의 코딱지들은 ‘종이접기’만큼이나 ‘어린이 대우’에 열광했습니다. ‘어린이 여러분’이라는 말이나 ‘코딱지들’이라는 호칭은 우리를 서툴러도 이해받던 시절로 회귀시킵니다. 잘 먹고 건강하기만 해도 사랑받고 이쁨 받던 코흘리개 코딱지 시절로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최고의 삶이 아닐지라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라는 용기를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 모두 꽤 괜찮은 한 해를 보낸 것 아닐까요.
올 한 해의 저를 점검해 보았습니다. 제가 최고의 성과를 낸 것들, 목표한 것을 이룬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뚜렷한 성과도, 두드러진 업적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서 올 한 해 기억에 남는 일들을 묻는다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집니다.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에서 세상살이 바빠서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 친구와 심야 드라이브를 즐겼던 순간도 기억에 납니다. 아빠의 생일날 아빠가 좋아하는 도넛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생일파티를 했던 것도 행복한 기억입니다. 호주에 이민 간 친구와 몇 년 만에 통화를 했고, 그녀의 일생일대의 선택에 함께 고민하며 응원해 주었던 것도 행복한 기억입니다. 같은 업계에 종사하게 된 친구와 좋아하는 광고도, 싫어하는 광고도 똑같아서 한참을 업계에 대한 불평불만을 안주삼아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던 것도 행복한 기억입니다. 영광의 순간은 없었을지언정, 빛나는 노멀한 것들로 가득했습니다.
한 해의 마무리를 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위해 칭찬 한마디 먼저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요. 성과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지만 최선을 다해 2018년을 잘 살아나간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2018년,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