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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Nov 19. 2020

남자 친구랑 살아보기

동거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

나는 혼자 사는 것에 나름 익숙하다. 고등학생 때 기숙사에 사는 것을 시작으로, 대학생 때는 고향을 떠나 지내면서 자취를 시작했고 지금은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지내고 있다. 잠깐 여행 오는 기분으로 온 이 곳에서 어째서인지 정착하게 된 지 4년째이다. 이 곳에 예상보다 길게 살게 된 이유 중에는 지금의 약혼남이 된 내 짝꿍이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내 소중한 짝꿍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금껏 우리가 다른 세상에서 자라온 만큼, 그는 나와 성격적 차이뿐만 아니라 언어적, 문화적 차이도 있는 사람이다. 내가 외국인과 사귀고 있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외국인을 만나는 게 언어적으로 답답하지 않냐고 묻기도 한다. 물론 그럴 때가 있다. 한국어가 영어랑 1:1 대응이 가능한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걸 풀어 설명해야 할 때도 있고,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미묘한 감정을 설명해야 할 때는 답답함을 넘어, 나의 영어 실력이 어찌나 여전히 하찮은 지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심지어 그 부족한 언어 실력으로 한국의 정서나 역사에 대해 설명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수한 차이들을 채워가며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은 내겐 너무나 사랑스럽고 무한히 감사한 존재이기에, 동거는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는 만난 지 2년쯤 되었을 때 동거를 시작했다.


나의 부모님은 지극히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분들로, 아무리 '쿨' 한 척하셔도 그게 쿨한 '척'임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분들이시다. 처음 짝꿍을 만나고 있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달갑지 않음을 숨기셨지만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우리가 사귀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친구'로 사이좋게 지내라며 슬쩍 화제를 돌리시던 분들이 동거를 환영하실리 없었다. 한국이라면 부모님의 반대로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겠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것을 방패 삼아 나는 나의 남자 친구와 동거를 시작했다. 이제는 바이러스로 찾아오실 수도 없게 된 상황 때문에 반대하시지 않으신 (못하신) 거 겠지만, 나도 어엿한 성인이니 나의 결정을 존중해주신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여전히 내가 짝꿍과 같이 사는 것이 불편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시는 걸 보면, 어쩔 수 없으니 두고 보시는 것일 테다. 같이 사는 와중에 남자 친구가 나에게 (우리 부모님 때문에 서두른 것 같은) 프러포즈를 했고 우리는 약혼한 사이가 되었는데도 부모님께선 우리가 하루빨리 결혼하길 바라시는 중이다. 혼인 신고나 결혼식을 해야만 같이 사는 것에 대해 안심하실 것 같다.


이런 생각의 차이가 세대 차이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내가 남자 친구와 동거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어떤 친구는 솔직하게 동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 친구가 솔직하게 얘기해서 알게 된 것이지 어쩌면 더 많은 친구들이 같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 친구는 내가 동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에 여자가 동거하게 되면 안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된다며 나를 말렸다. 또한, 동거와 결혼은 다르다며 본인의 지인 이야기를 예를 들었다. 그들이 동거를 하다 결혼을 했는데 얼마 못 가 이혼했다고 한다. 동거한다고 해서 결혼 생활을 예측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몇 달 뒤, 나는 남자 친구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고 했고, 그 친구는 내게 동거한다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줬다. 그 조언은 분명 나를 생각해서 해 준 말일 텐데, 어쩐지 내게 의문을 남겼다. 동거를 한다는 것이 숨겨야 할, 떳떳하지 못한 사실인가?


나는 이 글에서 동거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은 것이 아니다. 동거를 찬성하면 깨어있는 사람이고 반대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삶에 책임질 수 있는 성인이라면 동거도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 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동거하는 것이 죄악시되거나 나쁜 일인 것 마냥 취급되는 것이 맞느냐는 이야기다. 어째서인지 그런 낙인은 주로 여자에게 좀 더 심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순결이라던가 정조와 연관 지어 생각하기 때문이지 싶다. 나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한 번쯤 '결혼 전에 (이성을) 많이 만나봐.'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말을 선배들에게 들었고 친구들이나 동생들에게 했다. 그 만남들을 통해 경험치를 높이는 게 내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안목을 높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동거해봐.'라고 조언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동거하는 것은 손가락질받는 일이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참 모순적이다. 결혼할 사람을 잘 만나기 위해서 가벼운 만남을 하는 것은 권장되나 진지한 만남을 전제로 한 동거는 터부시 되는 연애관이라니.


동거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짝꿍한테 물어봤다.

"혹시 네가 아는 사람 중에 동거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 있어?"

"왜? 부모님께서 뭐라고 하셨어?"

"아니, 동거에 관한 글을 쓰고 있어. 궁금해서."

"내가 아는 사람 중엔 없어."

"네 부모님은 반대하시지 않았어?"

"우리가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다면 그러셨을지도 모르지."


그의 부모님께서는 동양계 이민자이시기 때문에 한국인은 아니시지만 서양 사람들보다 한국과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계신 편이다. 이 곳으로 이민을 와 사신 지는 30년 정도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쩌면 환경이 그분들의 생각을 변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 곳에서 동거는 꽤나 흔한 일이다. 숨길 일도 아니고 놀랄 일도 아니다.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내가 아는 한 커플은 연애를 한 지 4년 정도가 되었는데도 동거를 하지 않고 있다. 그 또한 그 커플이 결정할 일이다.


나는 내가 동거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결국, 동거에 관한 한, 그 친구의 조언을 들은 게 하나도 없는 셈이다. 어쩌면 그저 내가 운이 좋은 걸 수도 있다. 내가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난 덕분에 잘 지내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내가 동거를 시작할 때, 나는 내 짝꿍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사귀면서 누구나 겪는 흔한 갈등들을 해결하는 동안 나는 이 사람에 대한 신뢰를 쌓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동거를 결심할 수 있었다. 같이 살게 되면서, 우리도 여러 가지 사소한 문제들에 마주쳤다. 청소나 설거지 같은 집안일이라던가 습관들이라던가 흔히 일어나는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게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는 대화했고 방법을 모색했고 타협점을 찾아나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나의 확신이 더 단단해졌다. 이 사람과는 결혼할 수 있겠다.


나는 누군가에게 동거를 권하거나 혹은 동거를 하는 사람들을 두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나는 나의 동거가 만족스럽다는 이야기다. 막 일어나서 부스스한 내 모습을 보여도 사랑스럽다고 하는 이 사람과 눈 뜨고 잠드는 일상이 행복하다. 예컨대 퇴근하고 그와 수다 떨며 먹는 저녁식사나, 같이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이, 어쩌다 터져버린 방귀 소리에 낄낄대는 순간들조차 정말 좋다. 나에게 동거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발전해가는 모습이자 나의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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