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진 Oct 15. 2024

애정 결핍

영원히 채울 수 없는 밑 빠진 독

애정의 총량을 계산할 수 있다면 나에게 필요한 애정의 양은 누구보다 많을 것이다. 누구도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모두가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게 되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최대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차라리 조금 희생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리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는 순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란 그냥 적당한 정도의 호감 그 이상으로 좋아하고 있는 정도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사람이 늘 곁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는 나의 과도한 욕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매 순간 내 옆에서 나와 붙어 있어 달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애정결핍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깊은 애정을 주지 않으면서 타인의 애정을 갈구한다. 누구에게도 애정을 주지 않는 것에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사람 사이 관계에서까지 확장된 것이랄까. 뭐든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특정 분야를 적당한 수준으로 발전시킨 뒤에는 다른 잘하는 일을 찾으려고 한다. 


사람 관계에서도 똑같다. 어느 적당한 정도까지 만난다면 그 사람과는 이미 잘 해낸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기대되는 일이 없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 적당함 이후에는 큰 미련 없이, 집착 없이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다툼도 없고 사랑 또한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전 단계까지는 굉장히 초조하게 기다리는 시간 또한 존재한다. 이를 겉으로는 티 내지 않기 위해 무심한 모습이지만 속에서는 매 순간 상대방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나의 모습을 끊임없이 의식한다. 그렇게 불확실함 속에서 기다리는 시간 이후 확신의 시간이 오면 이에서 오는 성취감은 표현하기 힘들 만큼의 행복감을 준다. 이 또한 얼마 가지 않고 사그라들 감정이지만. 


이제는 이렇게 집착 없이 끝내는 관계들에서 의미를 찾기가 힘들다. 그리고 결말이 어떻게 될지 아는 관계들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지루하고 소모적으로만 느껴진다. 수십 번 봤던 재미없는 영화를 또 보는 느낌이기도 하고 이미 스코어를 아는 축구 경기를 재방송으로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받았던 이 정도의 사랑으로 인해 웬만한 사람들은 날 싫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일까. 아니면 내가 필요로 하는 애정의 총량이 어느 정도 채워진 것일까. 


매번 상대가 상처받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나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제는 나의 욕심을 위해 다른 사람을 상처 주고 싶지는 않다. 


이번이 지나면 꽤 오랜 공백기를 가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지막처럼 사랑하자.

작가의 이전글 버킷리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