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걷는 길의 끝
취업 준비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은 준비 기간에 상관없이 신입 채용과 경력 채용을 준비하는 모두에게 클 것이다. 심지어 요즘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졸업 이후 취업을 위해 열심히 대외 활동과 자격증 공부를 병행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취준이라는 단어는 대학 졸업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대학 재학생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취준을 해야 하는 나이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대학 졸업 이후가 아닌 고등학교 졸업 이후부터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최근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쉬는 청년들이 44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44만 명의 행운아(?)들은 아마 취준의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를 제외한 800만 청년 인구는 대학 입시에 대한 압박감 이후 취업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 부담감을 대처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1. 적당한 연봉을 주는 적당한 회사에 취직하여 짧게 취준을 끝내기.
2. 높은 연봉과 네임 밸류를 가진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취준 기간을 길게 가져가기.
3.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준 기간을 최대한 뒤로 미루기.
여러분들이 선택했던 혹은 선택하고 있는 방식은 어떤 방식인가?
나는 1번을 선택하여 3달간의 압축된 취준 기간을 통해 삼성역 근처에 위치한 적당한 제조업 회사에 입사를 하였다. 그리고 그 후 1년 간 3곳의 회사에서 일을 했다. 여러 플랫폼에서 발표한 통계를 살펴보면 1년 미만 신입 사원의 퇴사율이 30%에서 50%까지 육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통계청에서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첫 일자리의 평균 근속기간은 1년 6.8개월이라고 한다. 첫 회사에서 6개월 정도 일하고 이직을 했으니 평균 근속기간을 낮추는 데에 크게 기여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 번을 선택하든 아니면 저 선택지에 해당되지 않는 취업 준비 기간을 보냈든 모두 관계없이 다들 취직할 회사에 대해 상상하거나 기대한 모습이 있을 것이다. 취준 기간이 길고 고통스러웠던 사람들은 그 기대감이 더 컸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현실과 그 괴리감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괴리에도 그 힘들었던 취준 기간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 힘들어하면서까지 회사에 어떻게든 남아 있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취준 기간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취업 준비 혹은 이직 준비를 하더라도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이 말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고 이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일찍 결단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3달간의 취업 준비로 입사한 회사에서도 계속 이직 준비를 하였고 취업 준비와 마찬가지로 크게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입사한 회사에서도 계속 이직 준비를 하고 있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다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잃을 게 별로 없는 나였지만 지금의 나는 잃을 게 많기 때문이다.
첫 회사에서는 제조업 특유의 경직된 분위기와 수직적인 구조가 싫었다. 셔츠와 정장 바지, 구두만을 고집하는 것이 싫었고 지하철 2호선의 출퇴근 러쉬 아워에 끼여서 숨도 못 쉬고 있는 게 싫었다. 그리고 결재를 위해 결재판에 인쇄물을 정렬하고 도장을 찍는 원시적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내가 싫었던 모든 조건을 바꿀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갔다. 4대 보험이 되는 학원이었고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문화에 복장, 식사 시간, 심지어 근무 장소까지 자유였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싫어하고 밤에 늦게 자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적합한 1시 출근 9시 퇴근이었다. 남들 다 퇴근하는 시간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나 자신을 볼 때면 다시 9시 출근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도 있었지만 이외에는 모두 다 나랑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딱 하나, 급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세 번째, 현재 재직 중인 회사는 딱 하나만 보고 선택했다. 최상의 급여 딱 하나. 직무, 산업군, 커리어는 모두 제쳐두고 현재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곳 중 가장 높은 연봉을 제공하는 곳으로 지원하였다. 그리고 지금 현재, 실제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그 급여 하나뿐이다. 아 그리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준다는 점. 직전 회사를 퇴사한 지 일주일 만에 다시 입사를 하였고 약 두 달간의 인턴 생활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그 당시에는 높아 보였던 회사의 위상과 웅장해 보이던 회사의 건물이 이제 와서 보니 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모든 취준생들이 그렇겠지만 나 또한 이 회사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내 영혼까지 팔아서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랑 맞지도 않는 직무에 내가 원하지도 않은 산업군에 지원을 한 것이겠지. 인적성 검사와 면접의 단골 질문인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에 나의 대처 방법을 실제 몸으로 부딪히며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반년 넘게, 거의 1년 동안 내가 관심도 없는, 나랑 맞지도 않는 일을 하다 보니 또 할만하다고 생각이 들 때가 많아진다. 일이 익숙해져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또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의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라서 불안해하기도 한다. 최종 면접 이후 일을 하면서 영혼까지 팔아 본 적은 없지만 내년에는 팔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과 압박이 심해지고 있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가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올해 초에 입사한 후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벌써 열 명 넘게 퇴사하는 사람을 보았고 내 이후로 입사하는 신입 사원의 수는 열 명째 세다가 포기했다. 어느 회사나 입퇴사가 반복된다고 하지만 본사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그리 바람직한 수준의 숫자는 아닌 것이 확실하다. 주변에서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회사의 불확실함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초조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역경과 고난을 원인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결국 나를 가장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일 것이다. 내가 뚝심 있고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이 떠나가든, 이직 준비를 하든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흔들리고, 변화를 원하는 것은 아마 문제의 원인을 나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실 환경이 어떻고 일이 어떻든 받아들이는 나의 마인드에 여유가 있으면 문제가 있더라도 나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일주일 동안 두 번의 인적성 검사와 한 번의 AI 면접을 보고, 오늘도 잡코리아와 자소설닷컴의 채용 공고를 스크롤하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뭘 원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바라고 있길래 이렇게 채울 수 없는 것일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상황을 바꾸려 도망치는 나 자신이 문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운이 좋게도 그 도망의 시기가 적절했고 너무 늦지 않기 전에 내게 찾아온 도망의 기회를 붙잡았다. 하지만 지금, 도망치기에는 살짝 늦었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비로소 조금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길과 커리어를 찾기 위해 발버둥 쳤던 지난날이 무색하게 이제는 미래가 흐리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구름이 걷히고 내가 걷고 있는 길의 끝이 저 멀리 보이고 있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목표가 바로 인생의 여유였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