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휴머니즘이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렀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Review

by 지연



금일(5일) 아침,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제작사와 감독이 대책 회의 결과를 공개했다. 사안은 감독 장항준의 성형, 이민 등에 대한 건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개봉 첫날에 부진한 스코어를 보고 농담으로 던졌던 천만 공약들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현시점 관객 수는 959만을 넘기고 있으며, 2년 만에 탄생할 천만 영화로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이제 장항준은 개명을 하고, 이민을 가고, 유람선 파티를 하고, 성형 수술을 해야 한다.


결국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감독은 모든 공약을 철회하며 커피차 이벤트를 대신하기로 약속했다. 3월 12일 목요일, 오후 12시에 서울신문사 광장에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커피차가 온다. 자리에는 장항준 감독이 직접 참여할 예정이다.


*


봄바람과 함께 3월의 극장가를 사로잡은 '왕과 사는 남자'. 즐겁고 유쾌한 축제 분위기에 함께 웃음 짓다 보니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적당한 흥행에서 멈추지 않고 천만이라는 기록적 숫자를 달성한 데는 분명한 차별점이 있을 거였다. 설 특수, 배우들의 연기력, 대진운... 다양한 요소가 있겠지만 각종 인터뷰를 찾아 본 결과 답은 '이것'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휴머니즘」이다.




왕이기 이전에 소년이었던, '단종'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그동안의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단종은 어리고 나약한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임팩트는 주로 수양대군에게 쏠렸다. 특히나 2013년 영화 「관상」에서는 배우 이정재가 북방 스타일의 모피 의상을 걸치고 등장하는 장면이 큰 화제가 되었다. 남의 약점인 목을 잡아 뜯고 절대로 놔주지 않는 잔인무도한 이리. 이자가 진정 역적의 상이다. 이정재가 그런 이야기를 듣는 동안 단종은 김종서와 수양대군 사이에서 위태롭게 고뇌할 뿐이었다.



하지만 장항준은 쫓겨난 어린 왕에게서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유배길에 호수에 빠져도 악 소리 하나 없이 물을 뚝뚝 흘리던 소년의 눈이 어느 순간부터 변한다.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정적이다가도, 마을 사람들이 호랑이에 물려 죽을 위기에 처하자 고함을 치며 활시위를 겨누었다. 호랑이 네 이놈! 니 상대는 나다! 커다란 고함의 근본이 백성을 향한 애민 정신인지, 쌓여왔던 분노의 폭발이었을지는 관객의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순간의 에너지만큼은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되었음이 분명하다.


여기까지가 단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이었다면 '따뜻한 시선'은 영화의 후반부에 극대화된다.


한때는 가족이었던 원수에게 사약을 받게 된 단종은 이를 거부한다. 그들의 손에 죽고 싶지 않다며 '엄흥도'를 불러 어려운 부탁을 한다. 이후로는 모두가 피하고 싶었던 마지막 장면이 펼쳐지며 하나둘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러닝타임 내내 지나친 설명을 늘어놓으며 친절하던 영화가 단종의 죽음을 다루는 순간만큼은 불친절하다. 전개는 오로지 유해진 배우의 연기력에 의지하여 진행되었다. 당사자인 단종이 죽어가는 순간은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다. 툭 떨어지는 손이나 초점을 잃어가는 눈만을 최소한으로 클로즈업한다.


시사회에 참석한 손석구 배우는 해당 장면을 보고 당연히 숨겨진 반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둘이 다른 곳으로 떠나서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기대했다. 참고로 손석구는 미국에서 긴 유학 생활을 보냈기 때문에 역사 지식이 없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공백을 희망으로 채울 만큼 빈 공간이 많은 장면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배경지식의 유무가 만들어 낸 웃긴 헤프닝으로 여겼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후반부의 공백은 순전히 '의도된 불친절'이었다.


슬픔은 밖에 있는 사람들만 느꼈으면 좋겠는 거예요. 그분이 가시는 그 장면을 우리는 보지 않는 것이 더 애도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만약에 거기서 ··· 발버둥 치거나 고통을 느끼는 걸 보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은 애도의 방식이 아니었다고 저는 느꼈거든요.

슬픔을 느끼는 건 산 자들의 몫이고 애도도 산 자들만 할 수 있는 것이에요. (또 죄책감도 있고요.) 네 맞아요. 저렇게 어린 왕을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런 것들을 관객들도 같이 느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절제했던 것 같아요.

출처: YouTube "역대급 텐션! 장항준 신작... 이동진은 어떻게 봤을까? [왕과 사는 남자]"


가학적인 장면을 과감히 비워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예우이자 애도였다.


타인의 죽음이 너무나도 쉽게 SNS로 퍼지는 세상이다. 참사 영상이 삽시간에 높은 조회수를 찍거나, 유명인의 부고 소식에 사인을 궁금해하는 댓글이 달리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기심을 눌러두고 시선을 돌리는 것이 성숙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보지 않는 것이 애도일 수 있다. 당연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을 놓치지 않은 장항준 감독과, 여백을 또 다른 애도로 채우는 관객들을 보며 잠시 잊었던 휴머니즘의 존재를 느낀다.


올해는 영월 단종문화제가 전례없이 소란스러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월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지난 3·1절 연휴 사흘 동안 청령포와 장릉에 2만 6천4백 명가량의 관광객들이 입장했다. 성공하지 못한 정의는 기억될 가치가 없는가? 실패한 선택은 모두 무의미한가? 감독이 메가폰을 쥐며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이 단종문화제 기간인 4월에 마땅히 주어질 것으로 보인다.




어두운 객석에서 우리는 '매화'의 눈을 빌렸다


이 외에도 인간미가 느껴지는 순간이 제작 과정에 켜켜이 존재한다. 가령, 전미도 배우가 작품을 선택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초기 시나리오에서는 '매화'의 분량이 매우 적었으며 장항준은 '전 배우가 설마 하겠어?'하는 심정으로 대본을 보냈었다. 그런데 흔쾌한 수락이 돌아왔다. 당황한 감독은 곧바로 역할의 비중을 늘렸다. 훗날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묻자 배우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시기에 받았던 대본들이 거의 다 잔인하거나 ··· 내가 못 보는 거를 누군가한테 보라고 참여할 수는 없겠다 싶어서 다 고사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이야기는 분량을 떠나서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출처: YouTube "왕사남 만담꾼들과 오손도손 와글와글ㅣ나영석의 와글와글"


그렇게 대사조차 없던 '매화'는 올곧으면서도 따뜻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왕의 유배길에 따라온 평범한 궁녀가 아니었다. 그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연민과 존경, 충심을 동시에 느끼는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쫓겨난 단종과 그를 끝까지 보필하는 엄흥도. 주요 인물들이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다. 현대 사회를 사는 관객들이 슬픔은 느껴도 100% 이입하기는 힘들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로 다가온 캐릭터가 ‘매화'가 아니었나 싶다.


한 나라의 왕이 한순간에 진창으로 고꾸라지는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하고, 무엄한 엄흥도에게 엄포를 놓다가도 순박하고 진심 어린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는 한 궁녀. 인간적인 관찰자의 시점을 가지며 스크린 밖의 관객들을 대변했다.


내내 그녀와 같은 감정을 공유했던 관객들은 상영관을 나서며 '벗이요. 누이요. 어머니였던' 존재로 전미도의 '매화'를 기억하게 된다. 이홍위가 떠나는 길에 남겼던 편지의 내용처럼.




2026년에 굳이 극장을 찾아야 할 이유


코로나 이후로 OTT가 빠르게 발전한 상황이다. 영화 티켓값의 반도 안 되는 돈으로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를 한 달 동안 구독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극장을 찾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었다. 아주 오랫동안이나.


하지만 「왕과 사는 남자」가 대대적으로 흥행하며 오직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함을 체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꽉 찬 객석에서 함께 울고 웃는 경험 자체가 좋았다는 후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동일한 감정을 느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모여서 같은 느낌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영화를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주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원한 것은 세련된 미장센이나 대단한 블록버스터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백발의 노인도, 엄마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우리는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것이다. 「왕사남」이 못생긴 호랑이와 요란한 천둥번개에도 불구하고 천만을 달성할 수 있던 이유는 결국 '인간미'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동종 업계의 종사자들이 이러한 점에 집중하여 앞으로도 영화관이 활기를 띠길 바란다. 극장의 부활을 바라는 것은 관객들도 마찬가지이다. 봇물터지듯 올라오는 영화 리뷰가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영화의 천만 돌파 소식이 단발성 이벤트로 그치지 않고 앞으로 이어질 활황의 초석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