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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Jul 26. 2019

주부가 알바가 된다

2. 합격하는 자기소개서, 면접 꿀팁 공개

‘바리스타가 되야겠다’는 결심을 하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내가 바리스타로 일하고 싶은 곳은 꼽으라면 단연코 ‘스타벅스’였다. 알고 보니 스타벅스를 포함한 상당히 많은 커피 프렌차이즈에서는 아르바이트를 직원 개념으로 모집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바리스타자격증 공부를 알아보고 있었을만큼 ‘커피’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열정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프렌차이즈 근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후에 알고보니 오히려 개인카페에서 커피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스타벅스의 경우도 정직원채용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모집을 했기에 내가 생각한 아날로그적 채용방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5시간근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나에게 가장 맞다고 생각됐고, 스타벅스에서 일하겠다는 생각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정직원채용과 비슷한 과정이라 함은,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작성하고, 온라인으로 인적성검사를 하고, 1차와 2차면접을 본다는 거였다. 실제로는 상시채용이고, 지점별로 필요한 지원자의 원서를 가져가 그곳 자체에서 채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국엔 아르바이트채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아무튼 이렇게 제대로 구색이 갖춰진 채용절차를 접하는 일이 너무 오랜만이라 시작부터 주눅이 드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이력서를 쓰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대학생때 입사지원을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도대체 몇 년이나 엄마, 주부로서만 살아온 것인지 차마 손으로 꼽기조차 두려웠다. 당연하게도, 경력난에 쓸 것을 고르는 것이 힘들었다. 몇 년 동안이나 직업적 경력이라고 부를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다가, 그나마 있는 서비스직과 상당히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전 직장경험들에 대해서는 쓸 필요가 없어보였다. 그거나마 막상 기입하려 해보니 너무 옛날 날짜라 민망한 기분도 들었다. 결국 경력난은 거의 텅 비어있었고, 다른 곳들도 대부분 비슷한 사정이었다.      


자기소개서 칸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어쨌든 쓸 말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서비스직 경험이 없는 30대 중반이라는게 큰 리스크로 다가올 것을 알았기에, 자기소개서에 서비스직에 대한 각오를 꼭 밝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격하는데 서류가 큰 당락을 좌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떤 일이건 선구자의 경험은 소중한 법이고, 실제로 내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내가 스타벅스에서 알바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밝혔을 때 자기소개서 작성방식에 대해 물어오는 이들의 수가 꽤 많았기에 내 실제 자기소개서의 일부를 공개한다. ‘지원동기 및 입사후 포부’ 항목에 작성한 내용이다.         

         


<마이클 게이츠 바리스타의 <땡큐 스타벅스>를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그곳에서 내 인생은 다시 시작되었다’는 그의 말에 공감합니다. 스타벅스 국내 1호점이 있는 대학을 다니던 그 시절부터, 스타벅스는 언제나 저와 함께였습니다. 많은 이들이 ‘커피’ 뿐 아니라 ‘공간’을 사기 위해 스타벅스에 옵니다. 그 시간과 공간을 통해 얼마나 많은 가치들이 창출되는지를 생각하면, 그 일에 보람차게 기여하는 ‘스타벅스바리스타’라는 직업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중략) 딸아이가 유치원에 적응 한 후, 오전이면 공부를 하러 카페로 향했습니다. 스타벅스에 말 그대로 날마다 ‘출근’ 하면서 조금씩 삶의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마이클 게이츠처럼, 저 역시도 이미 스타벅스에서 새 인생의 발걸음을 떼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도 매일 ‘출퇴근’ 하고 있는 스타벅스에 이제 진짜로 ‘출근’ 하고싶습니다. 세계인의 아침, 공간, 행복을 제공하는 일에 기여하겠습니다. >





다소 거창한 말들을 많이 썼던 것 같다. 그만큼 당시 내 솔직한 심정이 저랬다. 진짜 대학때 입사준비라도 하듯이, 기업분석도 많이 했다. 위에 쓴 <땡큐, 스타벅스> 뿐만이 아니라 <온워드>나 <스타벅스, 공간을 팝니다> 같은 책들도 죄다 읽었다. 이런 책들을 읽은 것은 1차와 2차로 이어지는 면접에서 할 말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을 줬을 뿐 아니라, 일하는 동안 애사심과 자부심을 유지시켜주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서류를 제출하고 만 하루 정도가 지난 후 합격문자를 받았다. 설렜다. 이제 면접만 통과하면 나는 ‘알바’를 하게 될 터였다. 내가 일하게 될 매장 점장과의 1차면접이 끝나면 그 다음에는 해당지역 전체를 총괄하는 지역매니저와 2차 면접이 최종적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1차면접은 내가 일하게 될 매장에서 진행됐다. 내 예상은 많은 부분에서 빗나갔다. 막상 가보면 가깝겠지 라고 생각했던 매장은 생각보다 멀었으며, 점장은 내 예상보다 많이 어려보였다. 그리고 간단한 신상 정도 확인할 거라고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면접이 매우 길고 깐깐했다. 예상이 적중한 건 단 하나, 점장이 서비스직에 한번도 몸담아본적이 없는 나의 근무를 몹시 걱정할 거라는 점이었다.      


“사실 바리스타는 커피 관련 일이 아니라 서비스직이라고 보시면 되요. 관련 아르바이트 경험이 전혀 없으신데, 이게 생각보다 진상고객 컴플레인도 많고 힘들 수 있어요. 괜찮으실까요?”     


“사실 저도 진상이 제일 걱정됐어요. 관련 글도 많이 찾아보고 주위의 조언도 구하고 했는데, 결론은 남들도 다 하는데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찾아보셨어요? 어떤 내용 보셨는데요?”     


“뭐...반말이나 이런건 너무 당연하고. 젊은 사람 많은 번화가 매장은 술마시고 와서 진상피고 토하고 그런 일까지 많다고 봤어요. 여기는 젊은 사람 비중 높지는 않으니 좀 낫지않을까 기대하긴 해요. 그래도 진상. 각오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정말 많이 쌓일 수 있는데. 평소에 성격은 어때요?”     


“제 성격이 사실 주위에 영향을 안받는 성격은 아니예요. 그래서 진상을 만나면 바로 툭툭 털어버리는 성격은 아니라 그점이 걱정이긴 해요. 하지만 그만큼, 감동도 남들보다 배로 느끼는 성격이라서요. 좋은 고객을 만났을 때 느끼는 보람 같은 것들이 진상을 만났을 때의 상처를 상쇄할거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점장에게 했던 이런 대답들은, 전부 진심이었다. 그렇게 나는 1차면접도 통과할 수 있었다. 서비스직경험 전무, 커피경력 전무, 서른 중반의 육아주부라는 핸디캡을 나름대로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곧바로 2차면접 일정이 잡혔다. 2차면접은 1차보다도 훨씬 엄숙한 분위기였다. 내가 일하게 될 매장을 포함한 한 지역구 전체를 총괄하는 지역장과의 면접이었고, 1대1이 아닌 1대 다였다. 긴장을 잘 하는 편이 아닌데도 긴장이 됐다.      


지역장은 다른 면접자들에게 많은 것을 묻고, 내게는 많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게 더욱 불안함을 자아냈다. 공통적으로 으레 하는 질문이 아닌 개인 질문 중, 지역장이 내게 물은 것은 이거 하나였다.      


“주부이신데, 이 일을 할 자신이 있으세요?”     


이미 예상했고, 충분히 대비한 질문이었다. 곧바로 답을 하려 입을 떼는데 지역장이 말을 막아서며 다시 물었다.      

“주부인데 이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이유도 알아요. 제가 묻는 건 잘 할 수 있겠냐는 거예요.”   

  

같은 여자인데도 육아를 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를 위한 시간 , 가사 분배 같은 것은 지원자의 입장에서 알아서 이미 생각해봤을 문제 아닌가 싶어서 욱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지역장의 말은 내가 상상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주부 분들이 일을 잘해요. 집에만 있다가 일을 시작하면 의욕도 많고 즐겁고 다른 사람들보다 잘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문제는, 이 분들이 일을 곧바로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가 거의 비슷해요. 가족들한테 자기가 스트레스를 풀게 된다는 거예요. 서비스직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가족들한테 풀게 되는 게 감당이 안된다는 거예요.”     


당시에 무슨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던 기분은 또렷이 기억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감정노동에 대한 학술적 연구들에서 주부는 흔히 감정노동자로 분류된다고 한다. 내 스스로가 주부로서 얼마나 집에서 감정노동자로서 ‘기능’하고 있는지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어릴 적 우리 엄마를 생각해보면 수긍이 가는 이론이다.


아침밥 먹기 싫다고 엄마한테 짜증 부린 일, 스파게티에 야채를 다져넣었다고 화를 냈던 일, 수능시험 전날 영어듣기평가가 갑자기 귀에 안들어온다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던 일, 시험 망쳤다고 엄마한테 짜증 부리고 취업 어렵다고 짜증 부렸던 것. 그걸 나 뿐 아닌 모든 가족이 엄마에게 행했었다는 점.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전업주부는 어느정도는 가족들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흡수하고 긍정적으로 전환해주는 ‘직종’임이 분명하다.


그런 전업주부가 서비스직에서 부당한 감정노동에 노출되었을 때, 그걸 스스로 분해시키고 가족들을 위한 역할을 계속한다는건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어려운 일임이 분명했다. 새삼 그걸 꿰뚫고 말했을 지역장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역시 사회에서 자기분야에 능통한 사람들은 존경할만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     


어쨌든 나는 합격통보를 받았다. 합격사실을 가족들에게 통보하면서 말한, 내가 처음 마음먹었던 기간은 ‘3개월’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짧지만, 어쨌든 당시의 내게는 무기력을 치유할 집중할만한 것이 필요했고, 그 기간은 길다기보다는 짧고 굵은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 기간동안 진상을 만나면 얼마나 만나겠냐, 커피 만드는 기초는 배울 수 있겠지, 짧고 굵게 일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얻고 주는 보람을 느끼자. 이 시간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일하면서 직접 부딪혀보자. 적성에 맞아서 본사직원까지 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들을 하며, 다소 안이하게, 나는 서비스직으로의 첫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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